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 4기를 수출한 것은 30년에 불과한 한국 원전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쾌거였다. 이를 계기로 최근에는 터키의 원전 수주를 사실상 확정지었다. 김종신(65)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세계 원자력발전 시장의 중심축이 한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의 집무실이 있는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10층의 복도는 어두웠고, 그의 집무실은 가만히 있어도 덥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는 전기 만드는 사람이 전기 귀한 줄 안다고 했다.

“원전 기술 자립 5% 부족…

 핵심기술 개발 더욱 박차”

어깨 너머 배운 기술로 자립 성공 … UAE 이어 터키에 수출

원전 산업 파급효과 엄청나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육성해야

“30여 년 전 원자력발전소를 수입했지만, 이제는 원전 플랜트 전체를 우리의 손으로 외국 땅에 세우게 됐습니다. 실로 가슴 벅찬 일이지요.”

김종신 사장은 지난해 UAE 원전 사업 수주는 30년에 불과한 한국 원전 역사의 쾌거였다며 세계를 놀라게 한 원전 수출과 그 성장의 원동력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건설과 운영 능력을 꼽았다.

“UAE 원전 수주전은 국가 대항전이었어요. 사업 수주를 위해 참여 국가들이 정치겳倂냅岵?면에서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으니까요. 프랑스가 수주할 확률이 가장 높았고, 미국, 일본이 그 뒤를 이었죠. 사실 우리가 수주할 확률은 10% 정도였어요. 사업을 수주했을 때 우리도 놀랄 정도였으니까요.”

그는 상품 자체의 품질이 좋았고, 이를 잘 보였으며, 고객을 감동시킨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기술력이 기반이 됐고, 사업 수주를 위한 준비가 철저했다는 얘기였다.

“한국은 원전 건설과 운영면에서 프랑스, 미국 등에 뒤지지 않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요. 그리고 한국전력 지하에 워룸을 만들어 정부와 관련 기업들이 통합팀을 구성해 UAE의 각종 요구에 빠르고 성의 있게 대응했어요. 마지막 순간에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선 것이 주효했지요.”

발전소 설비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용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인 원전 이용률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의 원전 이용률은 2008년 93.44%, 2009년에는 91.7%를 달성했다. 이는 세계 평균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원전 이용률이 10% 높다는 것은 1000MWe급의 한국 표준형 원전 2기를 1년 정도 더 발전해야 생산할 수 있는 전력을 추가비용 없이 얻는다는 말이다. 통상 2기의 원전을 건설하는 데 6조원의 건설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것이다.

원전 37년 경력 듣고 UAE 왕자 ‘Sir’라고 호칭

김 사장은 1972년 한국전력 입사 이래 파리사무소장과 원자력기술실장, 해외사업처장 등을 두루 역임하는 등 37년 동안 원전 분야에 종사해 왔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발전소를 건설할 당시에는 6년간 건설현장에서 일했으며, 고리 4호기 완공까지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UAE 원전 수주 이후 한국 원전을 둘러보기 위해 방문한 UAE의 왕자는 그가 원전 분야에 37년간 종사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를 ‘Sir’라고 호칭하며 깍듯하게 대했다고 한다.

“고리 1, 2호기를 건설할 때만 해도 발전기술을 비롯한 대부분의 고급기술들은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담당했습니다. 웨스팅하우스가 모든 발전시설을 건설하고 운전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턴키(Turn-key)방식의 사업이었어요. 우리는 그들이 머물 사택을 짓고 모래와 자갈 등을 운반하는 지극히 초보적인 인력만 제공했지요. 모래, 자갈, 시멘트 말고는 우리 것은 하나도 없을 정도였어요. 기술도 어깨 너머로 겨우 배웠어요. 중요한 순간에는 접근조차 못할 정도로 괄시를 받기도 했지요.”

원전을 건설하는 동안 기술은 계속 축적됐다. 어깨 너머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고리 1, 2호기 이후부터는 턴키방식으로 사업을 발주하지 않고, 사업자 주도 형식의 분할 발주를 했다.

“당시 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이 원전 건설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무리다.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나왔어요. 그렇지만, 보란 듯이 고리 3, 4호기의 건설을 깔끔하게 성공시켰고, 이후 ‘원전 10년 자립 프로그램’까지 짰어요. 그랬더니 세계 원자력 업계에서 ‘한국이 어느새 저 정도의 실력을 쌓았구나’하면서 놀랐지요. 현재 한국형 표준원전의 기술자립도는 95% 이상입니다. 특히 종합사업관리와 원전 연료 제조, 시공기술의 자립도는 100%에 달하고요.”

그는 ‘최고의 안전성’과 함께 건설공기의 단축, 가격 경쟁력 등을 한국형 원전의 강점으로 꼽았다. UAE에 수출하기로 한 ‘APR1400’ 모델의 경우, 최초 콘크리트 타설부터 상업운전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른 어느 나라 노형보다도 짧다. 미국이나 프랑스, 일본의 경우 우리보다 10개월에서 30개월 이상 더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우리가 건설공기를 크게 단축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은 미국 등 여러 선진국들이 지난 30여 년간 원전 건설을 중단한 반면 우리는 1980년대 이후 거의 매년 1기씩 원전을 건설하면서 노하우를 축적한 결과다. 또 우리나라는 기술 자립을 이뤄 건설 단가가 다른 나라보다 20% 이상 저렴하다. 또 원전을 지속적으로 건설하고 운영하면서, 설계나 기자재 제작, 건설, 연료 제조, 운영 및 유지보수 등의 경험을 보유한 우수한 고급 인력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것도 강점이다.

원전 수출로 국격 높여

UAE에 원전 4기를 수출하게 된 것은 향후 원전 시장 진출의 교두보 역할은 물론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원전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계기가 됐다. 거대한 세계 원전 시장의 중심축이 우리나라로 이동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원전 플랜트 수출은 경제적인 측면뿐 아니라 기술적, 외교적 측면에서도 효과가 아주 큽니다. 우선 수출 금액이 어마어마합니다. 이외에 운전에 직접 소요되는 원전연료나 유지보수에 필요한 예비품의 수출 등도 수반됩니다. 토목건설, 기기설계 및 제작에서부터 금융 부문에 이르기까지 국가 경제의 전반적인 분야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원전 수출과 관련해 고용효과 또한 엄청나다. 현지에 파견하게 될 원전 건설 인력과 부가적인 관련 산업의 인력 등 많은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원전 수출은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현재 세계적으로 원전 수출이 가능한 나라는 미국과 프랑스, 일본, 캐나다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오는 2030년 세계 원전 시장은 1200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오는 2030년까지 원전은 현재 전 세계에서 운영되고 있는 436기의 두 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통상 원전 1기의 건설금액이 3조~4조원이 넘는 점을 감안하면 금액으로는 1000조~1200조원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일단 UAE와의 원전 플랜트 수출이 성공해 물꼬를 텄기 때문에 앞으로 다른 나라와의 수출 상담에서도 좋은 효과를 거두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대략 200억달러로 추산되는 터키 원전도 수주를 앞두고 있습니다.”

터키에 수출할 예정인 원전은 지난해 말 UAE에 수출한 것과 같은 한국형 원전(APR1400)이다. 하지만 향후 해외 원전 사업은 녹록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UAE 원전 수주 이후 경쟁국들이 대형화하거나 연합전선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UAE 원전 수주 실패로 미국과 프랑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원전 수출을 전담할 독립회사를 설립했어요. 세계 원전 시장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우리를 막으려는 시도지요. 동시에 중국 등 후발 국가들이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어요. 더욱 치열해질 국제시장에서 미국이나 일본 등과 경쟁할 때는 경쟁하더라도, 협력할 때는 협력을 모색하는 등 신축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이제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어요.”

그는 원전 첫 수출을 계기로 향후 원자력발전 산업을 차세대 신성장 동력으로 확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전 산업은 고부가가치 기술집약적 사업으로 그 파급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 1기를 짓기 위해서는 원전 건설 업체는 물론이고 설계, 기자재, 시공업체를 비롯해 주요 납품업체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원전이 그만큼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원전 플랜트 수출은 단순한 매출 증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후 기술 지원 및 각종 기자재 공급 등을 감안하면 국부 창출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미국, 프랑스에 이어 3대 원전 수출 강국으로 성장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며 “그동안 원전 건설과 운영기술을 꾸준히 축적해 왔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원전 핵심기술 2012년까지 국산화

그동안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원전 기술 자립을 꾸준히 추진했다. 1984년 정부의 원전기술 자립계획에 따라 그동안 고리 1호기를 비롯하여, 영광 2호기까지 10기의 건설과 운영경험을 토대로 최신 설계기준을 적용해 우리나라 실정에 맞고 안전성을 향상시킨 최적의 원자로인 ‘한국 표준형 원전’을 개발했다.

그 결과 1995년에 준공된 영광 3, 4호기는 기술 자립뿐 아니라 외자 의존도를 17%까지 낮춘 우리 손으로 탄생시킨 한국형 원전의 효시다. 또 최초의 한국 표준형 원전으로 기록된 울진 3, 4호기는 원전의 두뇌에 해당되는 원자로 계통(NSSS: Nuclear Steam Supply System)을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후 2005년 준공된 울진 5, 6호기는 원전 제작뿐 아니라 설계까지 순수 국내 기술진이 수행, 국내 원자로 핵심설계 및 제작기술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 한국 표준형  원전을 수출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불과 30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단기간 내에 가장 적은 연구비로 원자력 기술 자립을 이룩한 한국의 표준형 원전에 세계가 놀랐어요. 원전기술이 상당부분 자립했지만 5%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독자 기술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죠.”

그가 5% 부족한 핵심기술로 꼽은 것은 원전계측 제어 시스템(MMIS)과 원전 설계 핵심코드, 냉각재 펌프(RCP) 등 세 가지다. 정부와 한수원 등은 원전기술의 선진화와 해외 진출을 위해 2012년까지 이들 핵심기술 개발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원자력발전소의 중앙제어실은 비행기의 조종실과 같은 역할을 한다. 원전의 모든 기능을 통제하는 곳이다. 원전계측 제어 시스템은 중앙제어실에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이 두 분야는 7월까지 국산화가 완료된다. 또 원전 설계 핵심코드 중 ‘원천기술의 척도’로 통하는 안전해석코드는 발전소가 요건에 맞게 설계됐는지 점검하는 기술이다. 이 역시  2012년 10월까지 개발이 완료된다. 노심설계코드는 원자로에서 우라늄 등 핵연료를 이상적인 상태로 태울 수 있도록 해주는데 최근 개발이 완료됐다.

냉각재 펌프(RCP)는 인체의 심장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원자력발전은 우라늄을 태워 얻은 열에너지로 증기를 만들어 그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냉각재 펌프는 이 과정에서 냉각재를 순환시켜주는 기능을 하는데 2012년 6월까지 자체 개발하기로 했다.

지난 5월 연임에 성공해 제5대 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제2의 도약을 위해 힘찬 시동을 걸었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일자리 창출을 통한 국가경제 활성화’를 내세웠다.

“일자리 창출을 통한 국가경제 활성화에 역점을 두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2012년까지 5000여 명의 원전 전문 인력을 확보키로 하는 방안을 확정했습니다. UAE 원전 건설과 원전 추가 수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국내 원전 건설을 차질 없이 수행하기 위해섭니다.”

한수원은 UAE 원전 수출을 비롯해 국내에서의 잇따른 신규 원전 건설로 오는 2015년까지 1700여 명, 2020년까지는 2500여 명의 원전 기술 인력이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원전 건설 인력을 적기 확보키 위한 차원에서 신규 인력 채용 및 양성계획을 마련,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원자력교육원 안에 있는 ‘원전기술인력 양성센터’와 영광, 월성, 울진훈련센터를 통해 올해 1000여 명의 원전 기술 인력을 양성, 원전 건설 및 발전소 현장 취업을 알선해 일자리 창출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앞장설 방침입니다. 원전 전문 기술 인력은 용접공과 배관공, 철근공 등 건설 분야 등에 600여 명, 원전 운영 분야에 400여 명을 양성할 계획입니다.”

김 사장은 “인력 채용 뒤 발전소에 투입하기까지는 최소 6개월에서 1년가량이 걸려 전문 인력 조달에 어려움이 따른다”며 “원전 전문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한수원은 현재 고리와 영광, 월성, 울진의 4개 원전본부에서 총 20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원자력발전량 기준으로는 세계 5위 수준으로, 국내 전력의 37% 정도를 공급하고 있다. 또 현재 건설 중인 원전은 모두 8기로, 오는 2030년이 되면 약 38기의 원전이 가동돼 전체 전력의 59%가량을 원자력발전이 담당하게 된다.

하지만 원자력의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안전성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우리나라의 원전 건설과 운영 수준은 세계 일류라고 잘라 말했다.

“발전소가 불시에 정지하는 건수인 원전의 불시정지의 경우 지난 2008년에 전체 가동 원전 20기에서 모두 7건이 발생했습니다. 호기당 0.35건에 불과하다는 얘깁니다. 이마저도 지난해에는 0.3건으로 줄어들었어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지요. 원전 이용률이 높고, 불시정지 건수가 이처럼 낮다는 것은 그만큼 고장이나 사고 없이 안전하게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김 사장은 사장 취임 이후 경영 선진화도 역점을 두고 추진했다. 그는 경영 선진화 작업의 일환으로 본사 조직을 축소 개편(16개 처겱?→ 12개 처겱?한 데 이어 각 처겱퓽?소규모팀을 통합해 작고 경쟁력 있는 조직으로 전환시켰다.

인사 발령에서도 기존 2직급을 1직급 보직에 발탁하는 서열 파괴 인사를 단행했다. 팀장급 인사에서는 서열과 직급에 관계없이 경쟁원리에 의한 헤드헌팅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팀 평가 등 성과관리를 강화함으로써 능력과 성과 중심의 인사를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다.

또 책임경영체제 정착과 경영 효율 향상을 위해 ‘사업부제’를 도입하고 본격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별 사업부 본부장들은 사장과 별도의 경영 계약을 맺고, 권한을 대폭 위임받아 자율 책임경영 활동을 전개하는 대신 경영 성과에 따른 책임도 지고 있다.

그는 최근 논의 중인 한국전력과의 통합문제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10년 전 전력 산업 민영화의 일환으로 한국전력에서 분리됐던 6개의 발전 자회사들이 한국전력으로의 통합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전력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발전 자회사 재통합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용역을 맡겨 둔 상태다. 그는 “10년 전과 상황은 달라졌지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며 “기관 이기주의를 떠나서 국가 발전에 유익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에둘러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