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를 경영하는 오너 기업인에게 어느 날 “내가 새로운 2대 주주”라며 누군가 나타나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경영에 참견을 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여기서 경영에 끼어든 누군가를 ‘펀드’로, 그리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부분을 ‘기업가치 향상을 위한 경영개선 요구’라는 말로 바꿔 본다면? 이처럼 펀드가 투자한 기업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을 일컬어 ‘펀드 행동주의’라고 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펀드 행동주의를 통해 상당한 수익률을 기록한 자산운용사가 있다. 바로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자산운용(이하 알리안츠운용)이다. 이원일 알리안츠운용 사장을 만나 펀드 행동주의 시행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자원을 제대로 쓰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나라의 오너 기업인들은 과욕을 부리는 경우가 많아요. 전망이 별로 없는 분야에 오너의 뜻이라는 이유로 사업을 시작했다가 피해가 생기면 엉뚱하게 다른 주주들이 피해를 입죠. 상장기업의 지배구조가 나쁘면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이 옵니다. 그런 사태를 방지하고 오너들을 견제하는 것이 바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펀드입니다.”

알리안츠운용의 이원일 사장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이른바 ‘지배구조 개선펀드’를 만난 것은 2002년의 일이다.

“미국에서 알리안츠운용 계열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을 하는데, 지배구조 개선펀드를 맡게 됐어요. 그때 보니까 미국에서는 아무리 잘 나가는 기업이라도 연·기금 펀드들이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면 기업이 이를 받아들이더군요. 미국 최대의 연·기금인 캘퍼스(CalPERS·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 등의 요구로 디즈니, 스프린트 등 내로라하는 미국 대기업들의 CEO가 바뀌는 것도 봤죠.”

적은 지분을 들고서도 오너십이 강한 한국의 기업 풍토에 익숙했던 그로서는 매우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 한국에서도 지배구조 개선펀드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기회는 곧 나타났다. 한국 알리안츠운용에 다시 돌아와 운용본부장(CIO)로 일하던 2003년, 국민연금이 선진국의 자금 운용 전략을 도입한다며 운용사들에 기업 지배구조 개선펀드에 대한 제안서를 받는 공개입찰을 했다. 그때 알리안츠운용의 제안서가 채택됐다. 이에 국민연금 자금으로 지배구조 개선 사모펀드를 운용하며 경험을 축적하고, 이어 2006년 8월에 같은 개념의 공모펀드도 출범시켜 회사의 간판펀드로 키웠다. ‘알리안츠 기업가치 향상 장기 증권투자신탁’이 그것이다.

이 펀드에는 펀드 환매 러시가 극심했던 2010년에도 연간 6000억원이 넘는 자금이 몰렸다. A형의 경우 연간 수익률은 33.20%를 기록했다. 설정 이후 절대수익률도 상당하다. 2010년 12월10일 기준으로 펀드의 절대 수익률은 133.42%, 벤치마크 대비 85.70%의 초과 수익률을 낸 상태다.

지배구조 개선 투자의 성공적인 사례로 이 사장은 FnC코오롱(2009년에 주식회사 코오롱에 합병)을 꼽았다. 당시 펀드가 FnC코오롱의 자사주를 매입하며 지불한 대금 65억원을 전액 차입금 상환에 사용하도록 설득해 부채비율을 개선시켰고, 수익이 낮은 사업에 대한 매각, 비용 절감 등도 주문했다.

“2005년에 FnC코오롱의 지분(자사주)을 8.79% 매입하면서 이 회사 경영진을 만났어요. 당시 FnC코오롱과 (주)코오롱은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었죠. 그래서 사업의 효율화를 위해 두 회사의 합병을 권했어요.”

이 같은 노력을 통해 2005년에 1주당 약 6000원에 매입했던 FnC코오롱의 주가는 기업가치가 개선되면서 꾸준히 상승했다. 이에 2007년께에 1주당 1만8000원 정도에 매각하며 상당한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그는 동아제약도 성공적인 투자사례로 들었다. 2007년 당시 동아제약에서는 오너인 강신호 회장과 아들인 강문석 부사장 간에 경영권을 둘러싸고 지분 대결이 벌어졌는데, 그때 알리안츠운용이 동아제약 지분의 2.7%를 보유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주주(펀드)들이 양쪽 중 어느 편에 설 것인지 밝히지 않고 조용히 주총 표결에 참여한다는 분위기여서 알리안츠의 지분 2.7%는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우리는 양측 모두에 지배구조 개선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어요. 주총 전에 아들인 강문석 부사장이 맞대결을 포기했고, 동아제약은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죠. 이후 동아제약의 지배구조가 많이 개선됐고, 주가도 다른 제약주보다 많이 올랐습니다.”

벤치마크를 훌쩍 뛰어넘는 알리안츠운용의 성과 뒤에는 어떤 노하우가 숨어있을까? 이 사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먼저 지배구조가 개선되면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주가수준)이 좋아질 만한 종목들을 내재가치 중심으로 발굴합니다. 그리고 분석대상 종목들 중에서 적당한 종목을 골라 지분을 매입하고, 그 기업들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를 하는 거죠.”

상장사 오너들의 자사 지분 평균 보유율은 35%쯤 된다고 한다. 일단 시가총액 3000억원 이하의 중소형주들 가운데, 오너 지분이 30% 이하인 종목을 찾는다. 그 중에서 현금, 토지 등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해 ROE(자기자본이익률)가 낮은 기업들 중에 가능성 있어 보이는 곳을 골라 투자 대상을 결정한 후, 5~15% 정도 지분을 확보한 다음 해당 기업과 접촉한다는 설명이다. 투자 방법을 말로 들으면 단순한 것 같지만 실제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으로 연결하는 과정은 간단치 않다.

“접촉을 해보면 처음엔 무시하는 곳이 대부분이에요. 펀드 자산 규모가 1000억원도 안 되던 초창기에는 무척 고생했죠.”

지배구조 개선 ‘조용히’ 진행해

지배구조 개선펀드를 시작했던 2000년대 중반, 당시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던 칼 아이칸이 SK, KT&G의 지분을 매입한 후 경영진을 압박해 이슈로 떠오른 일이 있었다. 기업에 대한 무차별 공격으로 인식되면서 여론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장은 같은 펀드 행동주의라도 방법 면에서는 다소 다른 길을 걸었다. 지배구조 개선 시도를 밖에 소문내지 않고 조용히 진행했던 것이다. 칼 아이칸이나 장하성 펀드 등 대개 펀드 행동주의자들이 언론을 활용해 동네방네 소문을 내며 기업을 압박해온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였다. 이 사장의 표현을 빌리면 ‘국가정보원처럼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 것인데, 이유가 뭐였을까?

“우선 이름난 장하성 교수가 관여하는 펀드와 한 분야에서 경쟁하는 게 별로 효과적이지 않을 것 같았어요. 또 경영권 분쟁이 소문나면 주가가 출렁이는데, 그러면 주식을 매매할 때 번거로워서 이를 피하기 위한 것도 있죠.”

그는 “우리의 목표는 오너들이 문제점을 깨닫고 주주 친화적인 경영을 통해 기업가치를 올리게 하자는 것”이라며 “굳이 투자한 기업을 적대시하며 공격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투자 대상 기업을 달래기 위해 개인적인 인맥까지 동원하기도 한다. 오너와 잘 아는 사람에게 “알리안츠운용 펀드는 적대적이지 않다”고 설명해 줄 것을 부탁하는 식이다. 반응이 없기에 무작정 기업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린 적도 있고, 주주총회에 가서 처음 안면을 틀 때도 있었다고.

대표가 직접 투자기업 오너와 ‘맞짱’

주식운용팀과 이 사장 간의 ‘환상의 역할 분담’도 알리안츠운용 펀드 행동주의가 성공한 요인 중 하나다. 주식운용팀에서 투자할 후보 기업들을 선별하면 이 사장이 함께 토론을 하면서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그리고 투자한 기업의 오너를 만나 지배구조 개선을 이끌어내는, 어찌 보면 껄끄러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이 사장이 직접 맡고 있다.

“오너들에게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려면 상당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저는 일선 펀드매니저 시절부터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상당한 노하우를 쌓았죠.”

대개 중소기업의 오너들은 수십 년 간 산전수전을 겪으며 회사를 반석에 올려놓았다. 그런 오너들에게 새파란 펀드매니저가 찾아가 경영에 훈수를 둔다면 아무래도 오너들이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 곤란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경륜이 쌓인 운용사 대표가 직접 오너를 만나 설득하는 것은 상당히 효과적인 전략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이 사장 개인 입장에서는 무척 스트레스가 큰 업무다. 그냥 내버려두라는 기업 오너들을 설득해야 하고, 때로는 문전박대도 당하기 일쑤니 말이다. 이 사장은 “스트레스가 많긴 하다”면서도 “그래서 꾸준히 운동을 하고, 직원들에게 숙제를 많이 내주거나 하며 스트레스를 풀려고 노력한다”고 싱긋 웃었다.

그는 3개월에 한번 분기 실적이 나올 때마다 투자한 기업의 오너들을 만나 경영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중소기업의 오너들은 대개 엔지니어 출신이라 자본시장의 이해도가 낮은 사람들이 많다. 몇 년 간 꾸준히 조언을 하다 보니 이제는 신뢰가 쌓이고 친해진 오너들도 꽤 늘었지만, 일부는 아직도 마음을 열지 않아 서먹하게 사무적인 얘기만 나누는 경우도 있단다.

이 사장은 “고민하는 기업 오너들이 정말 많다”고 했다.

첫째 고민은 기업 상속 문제라고 한다. 60세가 넘는 오너들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2세들이 회사를 물려받기 싫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둘째는 향후 기업의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이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들은 미래 사업 발굴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다. 지금은 잘 되지만 앞으로 몇 년 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고민을 토로하는 오너들에게 이 사장은 성의껏 조언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10여 년 간 M&A가 엄청나게 일어날 수 있다고 봐요. M&A가 활발해지면 주식시장이 지금보다 더 성장할 수 있죠. 현재 미국의 상장사 매출액 성장률이 미국 GDP(국내총생산)의 3~4배 이상으로 성장할 수 있던 배경에는 M&A 증가 영향이 상당하거든요.”

아닌 게 아니라 M&A는 주가를 밀어 올리는 주요 동력이고, 잘만 하면  M&A를 통해 기업도 역량을 키울 수 있다. 이 사장은 지금은 상장기업에서 오너경영이 80%가 넘지만 오너들의 고령화가 가속화되다 보면 이 같은 분위기가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미국 자본시장의 변화를 보면 우리 시장의 미래가 보이는데, 상속 문제 부각이나 M&A 증가 등은 이미 미국시장에서도 겪었던 과정”이라며 “그런 점에서 지배구조 개선펀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비교적 성공적으로 지배구조 개선펀드를 운용해왔지만 이 사장에게도 실패 사례는 있다. 펀드 운용 초창기에 아무리 두드려 봐도 꼼짝하지 않아 결국 투자했던 두 기업을 포기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장은 “이렇게 실패한다 해도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시도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오너들에게 ‘아, 나 혼자만의 회사가 아니구나, 주주중심 경영을 해야 하는구나’ 하는 자극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최대 연·기금 캘퍼스의 목표가 ‘사회적으로 믿을 만한 위협(Credible threat)’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주주 친화적이고,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는’ 위협이 되겠다는 거죠. 모든 지배구조 개선펀드들의 목표이자, 알리안츠운용 역시 추구하는 목표입니다.”

■ 이원일 사장 약력

1959년 8월 서울 출생

한국외대 경제학 학사 ∙ 서울대 경영학 석사 ∙ Rutgers University

경영학 박사. CFA

1993~1994년 대신증권 애널리스트

1994년 크레디리요네증권 리서치헤드

1996년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 리서치헤드

2000~2002년 하나알리안츠투신 운용본부장(CIO)

2002년 Nicholas Applegate Capital Mgt.

Emerging Market, San Diego, USA, 주식운용이사

2003~2005년 하나알리안츠투신 운용본부장

2005~現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