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오토바이헬멧 1위 홍진HJC는 한국의 대표적 강소기업으로 꼽힌다. 사업 30여년 만에 1000억원 고지를 밟아 덩치는 작지만 헬멧업종 점유율 세계 1위 회사다. 내수보다 수출 때 10% 가격을 더 비싸게 받을 만큼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날린다.
 난 9월5일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에 있는 홍진HJC 공장. 입구에 달린 ‘재정비, 재충전의 달’이란 현수막을 지나자 첫 눈에 들어오는 게 대형 오토바이헬멧 조형물이다. 홍완기(65) 홍진HJC 회장이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오토바이헬멧’이다. 높이 13.8m에 지름만 10m에 이른다. 방문객에겐 마치 오토바이헬멧시장 세계 1위 기업의 상징탑처럼 보인다.

 안내를 따라 사출부터 에어백, 도장, 조립라인까지 공장을 훑고 나니 ‘헬멧타운’에 온 느낌이다. 실제 외국인 바이어들은 이곳을 ‘헬멧밸리’로 부른다.  HJC 브랜드는 현재 연간 1000만개 소비 규모인 세계 오토바이헬멧시장에서 점유율이 20%에 달한다. 2위권으로 분류되는 이탈리아 놀란, 중국 베가, 일본 아라이, 쇼에이에 비하면 두 배 이상 격차를 벌여 놓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억달러에 달했다. 매출액 중 95% 이상이 수출액이다.

 홍 회장 집무실에 앉자 DJ(김대중 전 대통령) 앞에서 브리핑하는 홍 회장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때 세계 점유율 15%를 5년 내 20%로 올리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약속을 지켜 기쁘다”고 말한다.

 충남 논산 농촌마을에서 7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홍 회장은 어떻게 홍진HJC를 월드베스트기업으로 키워 놓았을까. 그의 성공 궤적을 추적해 봤다.



 #1 헬멧 팔려면 ‘스넬’(규격)부터 따라

 1971년 가죽의류 봉제공장으로 시작한 홍 회장이 오토바이헬멧에 손댄 건 1974년 ‘서울헬멧’을 인수하면서부터다. 사업 8년 만인 1982년 국내 1위에 오른 그는 “내수는 좁다”며 미국행을 선언했다.

 이때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미국시장 개척 특명을 받은 건 그의 바로 아래 동생인 홍수기 현 부회장. 홍 부회장은 “당시 우리 제품을 가져가면 현지 바이어들은 ‘플라스틱바가지’정도로 봤다”고 들려준다. 이른바 ‘DOT(미국연방교통성) 안전규격’이 없기 때문이었다.

 “사장님! 또 떨어졌습니다.”(홍수기)

 “이유가 뭐야?”(홍완기)

 “그걸 알려주지 않아요.”(홍수기)

 “합격 못 하면 입국할 생각하지도 마!”(홍완기)

 홍 부회장이 택한 방법은 일명 ‘마당쇠작전’. 시험관 집앞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새벽 쓸었던 것. 이렇게 해서 미국 진출 2년 만인 1984년 DOT규격을 땄지만 문제는 다른 데서 터져나왔다. 수출 물꼬는 텄는데 소비자들이 HJC 물건을 전혀 찾지 않았던 것. 원인을 파악해 보니 이번엔 ‘스넬 규격’이 없어서였다.

 스넬규격이란 미국의 자동차레이서였던 윌리엄 스넬이 1956년 경기 중 사망한 후 인명손실을 막기 위해 만든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규격 품질보증서다. 결국 1987년 5월 스넬을 취득하기까지 자격증 취득하는 데만 홍 회장은 꼬박 5년을 바쳐야 했다.



 #2 미국 헬멧 1위에 오르다

 미국 현지법인을 세운 것도 1987년이다. 말이 지사지, 사실 차고 한 칸에 전화기 한 대 놓고 시작하는 수준이었다.

 품질규격은 통과했지만, 이번엔 디자인이 문제였다. HJC는 여전히 미국인들에게는 낯선 ‘촌티패션’이었던 것. 이때도 미국 지사장이었던 홍 부회장이 활로를 뚫었다. 이른바 ‘도자기 전사기법’을 오토바이헬멧에 도입한 것. 지금은 흔히 ‘데칼’(전사지)로 불리는 이 기법은 초기 미국시장 공략의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는 게 홍 회장 평가다.

 시장 진입 초기 홍 회장은 두 가지 결단을 했다. 일단 가격전략이다. 당시 미국시장은 흡사 일본 제품의 전시장 같았다. 일본 아라이와 쇼에이가 미국 헬멧시장의 1, 2위를 다투었고, 이들의 공통점은 철저한 고가정책. 이 때문 에 홍 회장은 ‘중고가’라는 틈새에 전략을 맞췄다.

 또 한 가지는 제품전략. 보통 오토바이헬멧은 크기와 기능별로 ‘풀페이스’, ‘하프사이즈’, ‘오픈페이스’, ‘오프로드’ 등으로 나뉜다. 하프사이즈는 할리 데이비슨을 타는 라이더들이 쓰는 헬멧처럼 머리 윗부분만 보호하는 헬멧. 오프로드는 비포장도로용 헬멧이다. 이 중 풀페이스 시장이 가장 넓은 시장으로 일본 아라이와 쇼에이는 풀페이스만 집중 생산하는 전략을 썼다.

 홍 회장은 네 가지 모두를 취급키로 결정했다. 제품라인을 다양화해 고객을 흡수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실제 HJC는 1개 모델을 생산할 때도 크기, 색상, 데칼에 따라 288가지에 이르는 제품을 생산해 타사에 비해 제품군이 넓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값비싼 일제에 비해 저렴한 가격의 홍진HJC 제품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먹혀들기 시작했다. 다양한 제품군은 PU(파트 언리미티드) 등 미국 내 5대 오토바이 유통업체의 입맛을 맞춰 미국 전역 도매상에 HJC를 확장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폭발적 시장 반응에 대해 홍 회장은 “사업은 한순간인 것 같다”는 한마디로 당시를 회고했다.

 1992년 12월 미국 진출 10년 만에 HJC는 당시 미국 내 유명 전문지 <모터싸이클 인더스트리>가 선정한 ‘베스트셀링 헬멧’에 올랐다. 그때 시장 점유율은 50%에 육박했다. 그는 “디자인, 안전성, 가격의 3박자가 들어맞은 결과”라며, “일본을 이겼다는 점에서 그때 감격은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3 막내 동생 ‘을기’를 잃다

 1987년 스넬규격 취득 후 10% 남짓하던 미국 시장점유율이 치솟고 있던 1996년, 홍 회장은 “사업 후 가장 마음 아팠던 기억”이라며 일화 하나를 들려준다.

 그 해 1월29일 캐나다 록키 서드 밸리. 홍 회장과 둘째동생인 홍 부회장은 당시 개발을 끝마친 신제품 ‘스노우모빌헬멧’(Snow mobile helmet)과 ‘채터박스’(Chatter Box)를 시운전하며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 했다.

 난데없이 한 직원이 탄 스노우모빌이 한쪽 소나무를 들이받고는 그대로 눈밭에 꼬꾸라지는 게 아닌가. 놀란 그들이 어떻게 손 쓸 겨를도 없이 그 직원은 이내 사망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비운의 주인공은 당시 해외영업부 과장을 맡고 있던 홍을기 과장. 홍 회장의 7형제 중 막내동생이었다. 1991년 7월 홍수로 공장 뒤 둑이 무너졌을 때의 고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참담한 기분이었다.

“귀국 비행기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수씨와 어린 조카, 어머니 얼굴만 떠올랐죠. 무슨 말씀을 어떻게 드려야 할지… 사업 때문에 동생을 잃었으니 말입니다.”

 당시 스노우모빌과 채터박스 프로젝트는 홍 회장에게 ‘을기의 생명과 바꾼 프로젝트’였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신제품으로 세계를 석권해야 을기도 편히 눈 감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곧 현실로 나타났다. HJC 스노우모빌은 세계 스노우모빌헬멧시장의 70%를 점유하는 효자상품이 됐다(스노우모빌헬멧이란 헬멧 통풍구 안에 열선을 장착, 입김이 헬멧의 유리 부분에 서리지 않게 하여 시야가 가리지 않게 만든 헬멧이다. 채터박스란 오토바이 여행자들을 겨냥한 제품으로 마이크와 스피커를 헬멧 외부에 장착, 이동 중 여행자 간 대화도 가능한 제품을 말한다).



 #4 OEM 유혹을 뿌리치다

 홍 회장은 “사업하며 가장 잘 한 것 두 가지를 꼽으라면 OEM 유혹을 뿌리친 것과 연구개발에 투자비를 아끼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결과론이다. 1990년대 초 미국시장에서 한창 브랜드를 알려나갈 때쯤 찾아온 OEM 기회는 사실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OEM 제의를 해온 사람은 당시 미국 내 헬멧 판매상 중 최대로 꼽히는 ‘로키사이클’사의 빅터 영 사장이었다. 특히 로키사이클은 사업 초창기 홍 회장이 찾아갔을 때 문전박대했던 바로 그 회사. 그는 협상을 위해 홍진HJC 용인공장까지 찾아왔다. 그가 내놓은 OEM 보따리 규모는 무려 50만달러. 당시 홍 회장에겐 파격적인 거액이었다.

 “우리 상표를 붙여 주시오. 당장 50만달러를 주겠소.”

 그가 이틀 밤을 고민하며 내놓은 답변은 ‘노(No)’. 당장은 좋겠지만 미국공략 때 직원들과 함께 표어로 쓴 ‘우리의 힘으로 세계 제일을!’이란 목표가 멀어질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어렵더라도 내 브랜드로 하겠다는 집념 어린 선택이었다.

 그는 요즘도 “OEM을 뿌리친 건 정말 잘한 일이야”라고 말한다. 특히 그는 2002년 자신이 용인공장 옆에 세운 ‘홍진연구소’를 자랑스러워한다. 홍진HJC 10월호 사보에 쓴 ‘변화와 혁신으로 미래를 창조하자’란 칼럼에 보면, “홍진연구소는 헬멧연구소로는 세계 최고다”라고 표현한 대목을 보면 알 수 있다.

 홍진HJC 직원들에 따르면 “홍 회장은 연구원들에게는 특별대접을 한다”고 한다. 이따금씩 연구소로 삼겹살을 한 보따리 사들고 찾아가기도 하고, 월급도 더 준다는 얘기다.

 연구소 인력은 모두 45명. 전체 300명 직원 중 15%가 연구개발 인력인 셈이다. 중소기업치고는 연구원 인력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홍 회장은 평소 “세상에 투자 없는 결과는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실제 그는 매년 매출액 대비 10%를 연구개발비로 쓸 만큼 기술개발에 애착이 많다. 미국시장 개척 초기 때 DOT규격과 스넬규격을 딸 수 있었던 것도 공대 출신(한양대 공업경영학과)답게 ‘품질제일주의’에 바짝 신경써 온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5 세계 1위에 오르다

 HJC가 미국 1위에 오르기 직전 해인 1991년, 홍 회장은 창립 20주년 기념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 100억원이던 매출을 10년 안에 1000억원으로 올리자. 그리고 세계 시장점유율 3위에 올라서자.”

 그가 선포한 도전은 마침내 현실이 됐다. 매출액 1000억원 달성은 2년 늦은 2003년(1022억원)에 이뤘지만, 11년 만에 세계 빅3가 아닌 세계 1위에 오른 것이다.

 비결을 물어봤더니 답변이 참 단순하다. “우리는 작은 가능성이 있다면 도전을 했고, 멈추지 않고 추진해 왔습니다.”

 미국시장 1위의 비결이 스넬규격 획득과 중고가 틈새시장 공략에 있었다면, 세계 1위의 원동력은 효자상품 ‘사이맥스’ 덕분으로 요약할 수 있다.

 1999년 8월 홍 회장은 신개념 헬멧 개발에 착수한다. 턱보호대가 없는 오픈페이스 헬멧과 일체형의 풀페이스 헬멧의 장점을 결합한 이른바 ‘기능형 헬멧’이 그것이다. 과거 이탈리아 등 헬멧 선진업체들이 만들었다가 싸늘한 시장 반응에 자취를 감췄던 아이템이다.

 그는 “성공하면 대박”이란 믿음으로 도전했다. 훗날 턱보호대 기술로 한국을 비롯, 미국·캐나다 특허를 취득한 이 제품이 빛을 본 건 개발착수 10개월 만인 2000년 6월 즈음이다. 시장 반응은 대단했다. 연간 20만개가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세계 1위 달성에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당시 820만개 시장이던 2001년 헬멧 분야에서 HJC는 모두 120만개를 공급, 시장점유율 14.64%로 1위에 올라섰다.

 9·11테러 후 시장이 축소됐던 2002년(13.16%)을 빼면, HJC는 2003년(15.69%)에 이어 지난해에는 세계 878만개 시장에서 194만개를 차지, 22.1% 점유율로 시장 지배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는 92년 이후 13년 연속 시장 1위를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지난해 12월 미국 <모터사이클 인더스트리>가 헬멧도매상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HJC의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가장 많이 취급하는 브랜드가 무엇이냐’는 항목에서 HJC는 77%로, 쇼에이의 49%를 크게 앞서고 있다. 특히 가장 잘 팔리는 오프로드 헬멧 브랜드를 묻는 항목에선 56%로 풀머(17%)와 베가(8%)를 압도하고 있다.



 #6 새로운 도전과 위기

 ‘승풍파랑(乘風破浪)’.

 홍 회장 집무실에 달린 이 휘호는 ‘바람을 타고 거센 물결을 헤쳐가라’는 뜻으로, 그가 힘들  때마다 수백번씩 되뇌었던 문구다. 그는 요즘 “세계 일등을 넘어 세계 일류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미국에선 확실한 1위이지만 세계 최대시장인 유럽선 점유율이 아직 낮다.

 올해 세계 오토바이헬멧 시장규모는 약 1000만개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유럽이 350만개, 미국이 250만개, 일본이 120만개로 3대 시장이 72%에 달한다. 홍진HJC가 수출하는 세계 50여개국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전체 매출액의 73%를 미국을 비롯한 북미시장에서 얻고 있다. 반면 세계 최대시장이라는 유럽 비중은 아직 17%밖에 되지 않는다.

 세계 일류가 되기 위한 도전은 유럽공략과 동의어인 셈이다. 초기 미국공략의 선봉장이었던 홍수기 부회장이 이번에도 총대를 멨다. 미국 지사장이던 그는 올해 초 이미 유럽 지사가 있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 떠난 상태다.

 홍 회장은 요즘 또 다른 근심거리가 생겼다. 연초부터 계속된 가파른 원화가치 상승 탓이다. 90% 이상 수출하는 회사 특성상 환율 변화는 수익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실제 HJC는 IMF때 환율 덕에 막대한 환차익을 본 회사였다. 그랬던 게 최근엔 부메랑이 되어 ‘악재’가 되고 있는 셈. 그는 “옛날 호시절이 행운 탓이라면 이젠 실력으로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그는 요즘도 60대 나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토바이를 탄다고 한다. 모든 제품개발에 관여하는 그가 직접 만든 제품을 실험해 보기 위해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제도판을 만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8년 전인 1997년 1월 중국에 공장을 설립, 비용절감을 위한 대비책도 마련해 뒀다. HJC는 올해 목표량인 220만개 중 120만개를 중국에서 생산, 국내 용인공장(100만개) 생산량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날로 격화되는 시장 분위기도 넘어야 할 산이다. 여기엔 저가시장을 공략하는 중국이 변수다. 홍 회장은 “1위가 된 후 우리 신제품이 나오면 시중에 카피제품만 500여종이 돈다”고 말한다. HJC가 도전해 왔듯이, 이젠 ‘베가’를 필두로 한 중국업체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국내 라이벌들도 ‘HJC 잡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스콜피온브랜드를 앞세운 기도산업과 KBC 등이 대표적이다. 홍 회장은 “내수시장은 연간 15만개 규모로 일본의 10분 1 수준이라 큰 신경을 쓰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인지 이미 내수시장에선 이들 3사가 3대 3대 3의 삼각구도를 형성 중이다.

 그는 요즘 직원들에게 ‘비전 2011’을 강조한다.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란다. 그래서 나온 게 ‘제3의 창업정신’이다. 헬멧만 갖고는 향후 1등을 유지해도 매출액 2000억원을 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오토레이싱 헬멧, 유아용 두형모, 목보호대, 승마모 등 HJC의 4개 신규사업 아이디어도 이렇게 나왔다. 특히 오토바이메이커 ‘효성기계’를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연 비전 2011에 실린 대로 HJC가 ‘오토바이헬멧사’의 이미지를 뛰어넘어 2011년 매출액 5000억원대 중견그룹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홍완기 회장은 인터뷰를 끝내며 “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한다”며 의지를 내비쳤다. 악수를 하는 홍 회장 손목의 힘은 65세보다 훨씬 젊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