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이박사의 신동막걸리
영업시간 12:00~23:30
대표메뉴 반반막걸리와 육전, 배추전

경유1 │락희옥 마포본점
영업시간 11:00~23:00
대표메뉴 보쌈과 얼음동동 김치말이국수

경유2 │곰탕‧수육 전문
영업시간 10:00~21:00 일요일 휴무
대표메뉴 담백하고 깔끔한 국물의 곰탕

도착 │신석초 국물떡볶이
영업시간 월~목·토요일 11:30~, 일요일 10:30~재료 소진시 마감 금요일 휴무
대표메뉴 가위로 잘게 쪼아먹는 국물떡볶이


태풍이 몰아치나 폭우가 쏟아지나 나의 음주욕은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 이맘때면 장맛비를 흠뻑 맞아가며 저벅저벅 주점으로 기어들어 간다. 목마른 자가 우물물을 길어 마시듯 막걸리 한 사발을 게 눈 감추듯 비운다. 장마철의 눅눅함을 한 방에 쓸어 넘기는 이 맛이야말로 여름의 별미 아니겠는가. 그 맛에 취해 주력(酒力)이 한껏 뻗쳐 연거푸 마시고 또 마신다. 

아침에 눈을 뜨니 남편이 눈을 흘긴다. 걸어오면 10분이면 될 거리를, 길바닥에서 춤추는 걸 말리느라 1시간이 걸렸다나 뭐라나. 금주를 약속한다. 허나 결심하진 않는다. 해장의 맛이라는 게 또 있지 않은가. 다시 그곳으로 간다. 

마포음식문화거리를 조금 벗어나 있는 신석초등학교로 향한다. 초등학교 정문을 중심으로 왼쪽 둘레길 아파트 상가 한쪽에 위치한 작은 식당 ‘곰탕·수육 전문’. 입구에서부터 구수한 곰탕 냄새가 진동한다. 콧속으로 맛이 스민다. 한시라도 빨리 먹어야 한다. 위급하다. 과음으로 사정없이 할퀴어진 위장을 구원해야 한다. 

메뉴는 간판에 보이는 것이 전부다. 곰탕은 보통에 내포(內包)가 추가된 ‘특’ 한 그릇을 시킨다. 주문을 하자마자 세 사람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금세 곰탕 한 그릇을 낸다. 곰탕과 김치, 곱게 썬 대파가 상 위에 오른다. 유기 탕기에 담긴 곰탕의 맑은 국물 속에 양지·차돌·업진살·양이 소복이 쌓여 있다. 숟가락을 들어 그 더미를 풀어헤치지 않고 가만히 국물 한 숟가락을 맛본다. 재료를 귀찮게 하지 않는 맛이다. 해치지 않는 맛이다. 

결정이 분명한 소금을 풀어 넣어 간을 맞추고 대파를 한 주먹 쏟아 넣는다. 토렴해 고깃국물을 잔뜩 머금은 밥에 고기 한 점을 얹어 먹고, 김치로 뜨거운 입안을 식히고 기름기를 개운하게 쓸어내린다. 양지와 사골은 물론 우삼겹까지 넣어 고은 육수는 감칠맛이 좋지만 거드름을 피우거나 군짓을 하지 않는다. 나의 내장에 깊숙이 스며 해장을 보우할 뿐. 무엇보다 미지근하지 않아 좋다. 모름지기 탕국물을 삼키면 땀이 솟아야 하지 않은가. 뜨끈한 국물로 위장 샤워를 하니 이마와 콧잔등에 술땀이 흐른다. 국물 한 그릇을 추가해 사우나까지 마치니 그제야 집 나갔던 정신이 돌아온 것 같다. 술을 끊겠다 결심하지 않길 잘했다. 

“곰탕보다 맛있는 음식은 많아도 저를 행복하게 하는 음식은 곰탕뿐이더라고요.” 김정길 곰탕·수육 전문 사장은 서울 유명 곰탕 전문점을 드나들며 창업을 결심하고, 8개월간 해당 전문점 사장을 조르고 졸라 주방에 취업했다. 수개월간 곰탕을 끓이고 어깨너머로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워 나왔지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서야 김 사장만의 한 그릇을 완성할 수 있었다. 노력과 정성이 통한 걸까.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장안의 미식가들에게 곰탕의 신예로 불리며 인기를 얻었다. 

‘곰탕·수육 전문’의 곰탕. 보통 사이즈에 내포를 추가했다. 사진 김하늘
‘곰탕·수육 전문’의 곰탕. 보통 사이즈에 내포를 추가했다. 사진 김하늘

식사 때가 지났지만 식당은 여전히 바삐 돌아간다. 곰탕 한술을 후후 불어가며 아이에게 먹이는 엄마, 교복 입은 아들의 곰탕 그릇에 별말 없이 대파를 듬뿍 얹어주는 아버지, 손주가 감기에 걸렸다며 포장을 부탁하는 할머니, 두런두런 반주를 즐기는 동네 어르신들까지. 제대로 끓인 곰탕 한 그릇에 반한 손님들 중 대부분이 재방문을 하고 단골로 자리 잡는다. 

요즘은 먼 곳에서도 찾는 손님들이 늘고 있다. 곰탕집은 많지만 제대로 끓인 곰탕은 찾기 힘들다. 전문점이라 하지만 집에서 끓인 소고기 뭇국보다 못한 곳이 허다하다. 김 사장은 아직도 매일 국물 맛이 다르다고 말한다. 계절에 따라 채소맛이 다르듯, 같은 구입처에서 일정한 등급의 소고기와 사골을 받지만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며, 매일같이 곰탕 연구를 거듭한다. “오늘보다 내일 더 맛있으면 좋겠어요.” 그의 한결같은 노력이 고스란히 우러난 한 그릇은 계속 맛있을 예정이다.


40년째 한자리, 신석초 국물떡볶이

땀을 쭉 빼고 나와 건너편 아이스크림 할인점으로 향한다. 500원짜리 하드를 하나 사서 빙빙 돌려 녹여 먹는다. 사르르 녹아내리는 단맛을 삼키면 뻔뻔하게도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다. 떡볶이. 그것도 국물떡볶이. 분명 곰탕 한 그릇을 해치우고 나왔건만 숙취의 빈자리엔 허기가 들어앉은 걸까. 신석초등학교 후문으로 향한다. 학교 담벼락 벽화가 시작되는 그쯤, 분식집이 하나 있다. 간판도 없고 이름도 없다. 동네에서는 ‘신석초등학교 국물떡볶이’로 통한다. 

신석초등학교 후문에서 맛볼 수 있는 국물떡볶이. 사진 김하늘
신석초등학교 후문에서 맛볼 수 있는 국물떡볶이. 사진 김하늘

오전 11시가 되면 파란 가게문이 반쯤 열리는데, 문틈으로 얼굴을 들이밀면 피부가 고운 주인 할머니가 반가운 인사로 맞이한다. 처음 가면 처음 왔냐고, 또 가면 또 왔냐고 말이다. 

같은 자리에서 장사한 지 벌써 40년, 책가방을 메고 오던 아이들은 벌써 그 또래 아이의 엄마가 돼 다시 이곳을 찾는다. 한자리에서 눈에 익은 얼굴들을 가족같이 맞이하다 새로운 손님이 찾아오면 단번에 알아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분식집은 국물떡볶이 하나만 판다. 달지도, 맵지도, 달고 맵지도 않다. 단맛이 싫어 설탕을 안 넣다시피하고, 국물을 듬뿍 퍼 주던 것이 ‘평양냉면 같은 떡볶이’라는 별칭까지 얻게 됐다. 처음 먹으면 맛이 없다고 느낄지 몰라도, 어느새 그 슴슴한 매력에 중독되고 마는 것이다. 널찍한 가정용 식탁 위에 떡볶이 한 그릇과 숟가락 그리고 가위가 쟁반에 받쳐 나온다. 가위로 밀떡을 한입 크기로 잘라 빨갛고 묽은 국물과 함께 떠먹다가, 계란을 으깨듯 쪼개 국물에 풀어 먹으면 여느 해장국 부럽지 않다.

술잔을 들어올릴 주력(酒力)이 남아 있다면, 그 힘이 다할 때까지 잔을 비우고 또 비워야 한다. 숙취에 아파도 괴로워 말자. No Pain, No Gain.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는 법. 먹고 마시고 취하고 해장하는 음주 어드벤처가 여기 있다. 입장권은 없다. 오직 자유이용권만 있을 뿐.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