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출신의 프랑스 작가 밀란 쿤데라. 사진 위키피디아
체코 출신의 프랑스 작가 밀란 쿤데라. 사진 위키피디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이재룡 옮김|민음사
1만5000원|520쪽

체코 출신의 세계적 작가 밀란 쿤데라(89)의 장편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한국어판이 최근 100만부 판매를 돌파했다고 한다. 쿤데라가 1984년 프랑스에서 펴낸 이 소설이 1988년 국내에 소개된 지 30년 만에 놀라운 기록을 수립했다. 제목에 붙은 단어 ‘존재’가 암시하듯이 다분히 철학적 사유가 담긴 소설로, 추천 도서로 숱하게 언급됐다. 제목에 ‘가벼움’이란 꼬리표가 달린 덕분인지 수많은 독자들이 부담 없이 읽어왔다. 어쩌면 ‘참을 수 없는’이란 수식어가 꾸밈없는 호소력을 발휘했는지도 모른다.

쿤데라 소설을 독점으로 내고 있는 민음사는 100만부 돌파 기념으로 새 양장본을 냈다. 최초의 한국어판은 처음엔 체코어로 쓴 원작의 독일어 번역본을 옮긴 것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에 귀화한 작가가 원해서 1999년 프랑스어판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최근 나온 100만부 기념 양장본은 작가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로 표지를 새롭게 꾸몄다.


한 번 뿐인 인생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 소설이 한국 문학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1990년대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 한국 소설가들 중 상당수가 이 책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고 한다. 해외 작가들 사이에서도 참을 수 없이 위대한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책에는 개인과 역사를 지배하는 가벼움과 무거움을 바탕으로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성찰하는 관념의 유희가 벌어지는가 하면 사랑과 섹스를 질펀하게 담은 관능의 서사도 펼쳐진다. 에세이와 스토리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인간 실존의 유형을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나눠 대비시키거나 교차시키면서 주제를 제시했다가 변주(變奏)하거나 반복하는 플롯을 전개하기 때문에 흡인력이 강하다. 적절하게 인간 사회에 대한 냉소적 농담도 구사해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쿤데라는 철학자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와 독일 속담 ‘한 번은 없는 것이다’를 대비시킴으로써 존재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제시한다. 역사에서 한 번 일어난 일이 영원히 되풀이된다는 것은 인간을 영원회귀의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고, 그것을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면 막중한 책임을 떠안는 삶의 태도를 의미하기 때문에 인간은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 없고, 현생과 비교해서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다”는 쿤데라의 입장에서 보면 한 번뿐인 인생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것이다. 쿤데라는 인간이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오가며 방황하는 존재라고 본다.

이 소설의 주인공 토마시는 화려한 여성 편력을 누리면서 그것을 ‘에로틱한 우정’이라고 감쌌다. 작가는 토마시 같은 플레이보이를 두 유형으로 나눴다. 원래 독일어판에 기초한 우리말 번역본은 동일한 유형의 여성들을 좋아하는 ‘서정적 바람둥이’와 각기 다른 유형의 여성들을 쫓아다니는 ‘서사적 바람둥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프랑스어판에 따른 현재의 번역본은 ‘낭만적 호색한’과 ‘바람둥이형 호색한’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작가가 정본으로 인정하는 프랑스어판 그대로 옮긴 것이다. 남성 독자들은 각자 취향에 따라 어느 쪽인지 생각해봄직하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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