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마크 저커버그를 연기한 제시 아이젠버그. 사진 소니픽쳐스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마크 저커버그를 연기한 제시 아이젠버그. 사진 소니픽쳐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와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 둘은 미국을 넘어서 세계적인 정보기술(IT) 생태계를 일궈낸 인물이라는 것 말고도 여러 공통점이 있다.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이 확고하고 대학을 중퇴한 것도 공통점이다. 물론 천문학적인 수준의 돈을 벌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천재적인 이야기꾼인 아론 소킨의 레이더망에 잡혔다는 점이다.


최고 각본가 아론 소킨이 영화화

미국 최고의 각본가 중 한 명인 아론 소킨은 ‘어 퓨 굿맨’으로 영화계에 처음 발을 들였다. 이후 ‘맬리스’ ‘대통령의 연인’ 같은 작품을 성공시켰고, 미국 최고의 정치드라마로 손꼽히는 ‘웨스트 윙’의 제작과 각본을 도맡기도 했다.

아론 소킨은 2010년대 들어 실존 인물을 영화화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이끈 빌리 빈 단장의 이야기로 ‘머니볼’을 만들었고, 얼마 전 개봉한 ‘몰리스 게임’은 실존 인물이자 포커 세계의 여왕으로 불리는 몰리 블룸의 회고록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잡스와 저커버그가 있다. 아론 소킨은 2010년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창업기를 영화화한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2015년에는 잡스의 일생을 그린 ‘스티브 잡스’를 내놨다. 두 영화는 작품성과 흥행에서 모두 작지 않은 성공을 거뒀다.

아론 소킨의 영화는 실존 인물을 다루지만 전통적인 전기영화와는 결이 다르다. 전기영화는 보통 한 인물의 일생을 따라가며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 인물의 성공과 실패, 삶과 죽음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이 영화에 자기만의 색을 입히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아론 소킨은 달랐다. 그는 영화를 만들기 전에 세상을 떠난 잡스뿐만 아니라 저커버그의 삶을 다룬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자신의 붓을 들어 과감하게 색을 칠했다. 이런 방식이 이따금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영화적인 재미가 극대화되고 극 중 인물의 표정이 생생해지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때로는 이런 극적인 효과가 실존 인물의 추락과 대비되면서 더욱 흥미진진한 분석을 가능하게도 한다.

“캐릭터와 실존하는 인간의 차이는 건물을 그린 드로잉과 실제 건물의 차이다. 실제 건물은 주거를 위해 기능해야 하지만 건물 그림은 전기가 들어오고 수도가 나올 필요가 없다. 아름다우면 된다.”

아론 소킨이 어느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영화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설명하기 위한 말이었겠지만, 이 말은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2018년의 페이스북 그리고 저커버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에게 아론 소킨이 그린 2010년의 저커버그는 그의 말마따나 건물을 그린 드로잉처럼 그저 아름답기만 해서 지금의 모습과는 격차가 너무나 크다.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 속 복숭아밭처럼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는 어떤 이상향처럼 보일 정도다.

복숭아밭은 그림 안에만 있어도 되지만, 저커버그와 페이스북은 ‘소셜 네트워크’ 안에만 머물 수가 없었다. 저커버그도, 페이스북도 전기와 수도가 연결된 현실 세계를 살고 있고, 아론 소킨이 그려낸 아름다운 드로잉은 애초에 현실이라는 먹물에 더럽혀질 수밖에 없는 신세였는지도 모르겠다.

‘소셜 네트워크’ 속 저커버그는 번뜩이는 재치와 아이디어 그리고 실행력으로 뭉친 천재다. 물론 영화에서도 저커버그는 재수덩어리로 그려진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저커버그는 여자친구에게 차인다. 여자친구가 다니는 대학이 수준이 낮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으니 차이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래 놓고는 자신의 블로그에 여자친구에 대한 험담을 아무렇게나 적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그런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일에서만큼은 누구도 저커버그를 따라잡을 수 없다. 저커버그는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과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저커버그와 함께 사업을 시작한 왈도나 저커버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접근했던 윙클보스 형제에게는 없는 것. 자신만의 신념 그리고 그걸 구현할 수 있는 재능이 저커버그에게는 있었다. 바로 그 신념과 재능이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이용하는 세계 최대 소셜 미디어 페이스북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이나 다름없다. 영화는 그 대장정에 나서는 저커버그의 대학생 때 모습을 때로는 활기차게, 때로는 진지하게 그려낸다.

아마도 영화가 나온 2010년까지만 해도 저커버그의 실제 모습도 영화 속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고, 페이스북도 저커버그도 그때와는 사뭇 달라졌다. 지난해부터 페이스북은 온갖 스캔들의 중심에 섰다.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에 페이스북이 이용됐다는 뉴스에서부터 페이스북이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폭로까지 터져나왔다. 당연하게도 이 모든 스캔들은 페이스북과 저커버그가 자초한 일이었다. 그들은 개인정보를 지키기보다는 자신들의 사업을 확장하는 데 집중했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아이디어 도용문제로 법정 공방을 벌이는 장면(왼쪽)과 마크 저커버그 CEO가 지난 4월 10일(현지시각)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모습. 사진 소니픽쳐스, 블룸버그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아이디어 도용문제로 법정 공방을 벌이는 장면(왼쪽)과 마크 저커버그 CEO가 지난 4월 10일(현지시각)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모습. 사진 소니픽쳐스, 블룸버그

현실과 오버랩되는 영화

영화 속에서 청바지에 후드티 차림으로 하버드대 캠퍼스를 뛰어다니던 저커버그는 미국 의회에서 열린 청문회에 검은색 정장을 입고 참석해 굳게 입을 다물고 앉아 있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페이스북이 자신들도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고 전했는데, 어쩌면 페이스북이 만들어낸 괴물은 저커버그 그 자신일지도 모른다. 아론 소킨이 그렸던 재능과 신념으로 가득 차 있는 아름다운 청년은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괴물이 돼버렸다.

‘소셜 네트워크’의 마지막 장면은 지금에 와서 보면 어쩐지 의미심장하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저커버그는 자신의 변호사와 짧은 대화를 나눈다. 변호사가 자신의 식사 제안을 거절하자 저커버그는 변명하듯 말한다. “나는 나쁜 놈이 아니에요.”

변호사는 그런 말이 저커버그의 입에서 나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이렇게 답한다. “당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그저 그렇게 되려고 애썼을 뿐이죠.”

저커버그는 텅 빈 회의실에 혼자 남는다. 그 순간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계속해서 자신을 나쁜 놈이 아니라고 다짐했을까. 아니면 어차피 세상이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는데 나쁜 놈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했을까. 영화의 한 장면이지만 어쩐지 실제로 저런 일이 있었을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이 영화엔 이 술

새뮤얼 애덤스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맥주를 마신다. 펍에서 마시기도 하고 기숙사 방에서 마시기도 하고. 그들의 손에서 맥주가 떠날 순간이 없다. 이 영화를 볼 때도 맥주 한 잔이 간절해진다. 그리고 기왕이면 하버드대가 배경이니 미국의 보스턴을 대표하는 맥주인 ‘새뮤얼 애덤스’와 함께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버드대 출신인 짐 코흐 보스턴비어컴퍼니 회장이 만든 새뮤얼 애덤스는 일반적인 라거 맥주와는 맛이 다르다. 맥주 향은 진하고 무게감이 있다. 좀 쓰다고 느낄 정도다. 하지만 뭐 어떤가. 영화 속에서 맹활약하는 저커버그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생각하면 속이 쓰린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종현 조선비즈 금융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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