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공 두 달여 만인 지난 7월 공사가 중단된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조감도. 사진 부산광역시청
착공 두 달여 만인 지난 7월 공사가 중단된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조감도. 사진 부산광역시청

국제박람회기구(BIE·Bureau International des Expositions)가 주관하는 세계 엑스포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인프라를 확충하고, 개최국 문화 자원의 역량을 일신하는 초대형 국가 이벤트다. 20세기 첫 엑스포였던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와 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는 모두 하계올림픽의 부대행사로 개최됐다.

국제적인 엑스포는 주최국의 문화 역량을 세계에 알리는 무대로서 큰 역할을 해 왔다.

2017년 엑스포를 유치한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가수들을 주축으로 한 초호화판 오페라 ‘아이다’를 제작해 자국의 문화 역량을 과시했다. 2020년 두바이 엑스포의 핵심 공연들은 2016년 개장한 두바이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릴 예정이다.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가 그의 음악 세계에 큰 영향을 준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전통 음악 ‘가믈란’을 처음 접한 건 1889년 파리 박람회에서였다. 핀란드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는 1900년 헬싱키 필하모닉과 파리 박람회에 참가해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현재 최고의 주목을 받는 현대 작곡가 페테르 외트뵈시는 1970년 오사카 엑스포에 슈톡하우젠 앙상블 단원으로 참가해 일본 전통문화에 매료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열린 엑스포와 클래식 공연의 연결고리는 느슨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노태우 정부는 1964년 도쿄 올림픽과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의 연쇄 성공을 모델 삼아 1993년 대전 엑스포 개최를 추진했다. 1993년 대전 엑스포 메인 공연장으로 쓰인 가설무대에선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의 개막 연주가 있었지만, 대회 직후 철거됐고, 엑스포 아트홀은 유명무실해졌다. 2012년 여수 엑스포에 맞춰 개관한 예울마루는 2016년 GS칼텍스의 기부 체납이 완료됐고 연간 운영비의 62%를 GS칼텍스가 분담하는 중이지만, 여수시는 연간 45억원가량의 운영비 조달이 버겁기만 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으로 이미지를 쇄신한 중국은 2010년 상하이 엑스포,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연달아 개최하면서 클래식 공연 관련 인프라를 집중적으로 확충했다.


독특한 외관으로 효자 관광 상품이 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사진 론 글럭맨
독특한 외관으로 효자 관광 상품이 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사진 론 글럭맨

中, 상하이 엑스포 이후 공연 인프라 확충

베이징 국가대극원(2007년 완공)과 광저우 오페라하우스(2010) 등 클래식 공연 관련 주요 시설이 이 시기에 지어졌다. 대부분의 중국 오페라하우스는 단순 대관이 아닌 프로덕션 하우스를 겸하고 있다. 상하이 동방예술중심(2004)과 상하이그랜드시어터(1998)는 상하이 엑스포 당시 클래식 공연의 메인 공연장이었다. 2010년 방한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과 팝페라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는 모두 상하이를 거쳐 서울로 향했다.

중국은 2022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2019년 BIE 공인 엑스포를 유치했다. 사실상 문화적 프레올림픽을 치르는 셈이다. 이에 맞춰 유럽과 미국 명문 오케스트라, 메이저 오페라단이 앞다퉈 베이징 투어를 타진 중이다. 2015년 완공된 하얼빈 오페라하우스나 2019년 개교할 톈진 줄리아드 음악원 분원은 베이징과 상하이 밖에서도 양질의 클래식 공연 문화를 활짝 꽃피울 전진기지로 주목받는다.

국내에서는 최근 부산시가 2030년 BIE 공인 엑스포 개최를 추진 중이다. 2020년과 2028년 하계올림픽 개최를 꿈꿨지만 연달아 경쟁에서 밀린 뒤 방향을 돌린 것이다. 하지만 야심 차게 추진 중이던 부산 오페라하우스 건설이 최근 중단되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부산시는 허남식 시장 재임 시절이던 2008년, 북항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기로 했다. 당시 신격호 롯데 회장은 허 전 시장과 신정택 전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을 함께 만났다. 신 회장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같은 세계적인 건축물을 짓자’는 부산시 측의 요청에 선뜻 1000억원을 기부했다.

그런데 착공 두 달여 만인 올해 7월 24일 부산시는 오페라하우스 공사 중단을 결정했다. 이와 함께 지난 4월 시작해 오는 12월까지 실시 예정이던 ‘오페라하우스 관리 운영 및 재정 효율화 방안 등 검토 용역’도 중단됐다. 롯데그룹의 기부금 1000억원을 제외한 1500억원 정도를 부산시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고, 연간 운영비가 250억원 정도 들 것으로 추정되는 등 재정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오페라하우스 건립 문제를 시민 공론화 과정을 통해 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오페라하우스 건립과 관련해 부산시는 2005년 APEC 행사를 위해 누리마루 지구를 정비했던 경험을 반추할 필요가 있다. 조개껍질을 닮은 오페라하우스의 건축미와 하버 브리지의 경관이 어우러져 연간 200만 관광객이 방문하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사례와 누리마루 개발의 경험을 부산시는 참고할 만하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형편없는 음향 시설로 비난받지만, 독특한 외관으로 관광객 몰이를 하며 호주 경제에 효자 상품이 됐다.

오페라하우스 건립 추진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재원 마련이란 건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관광 자원으로서 오페라하우스의 잠재적 효용에 대한 논의가 배제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부산시가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결정한다면, 국제적 인지도 제고와 초기 안정화 작업을 위해 엑스포와 같은 대형 이벤트와의 협업은 필수다. 그렇다고 2030 엑스포 도전이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올해 11월 발표될 2025년 엑스포 유치전에서 오사카가 승리한다면 같은 아시아에 속한 우리나라 부산이 2030 엑스포를 개최하게 될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더구나 벌써부터 오사카 개최를 예상하고 2025년 오페라단 투어 제안을 준비하는 기획사가 부지기수다. 여기에 더해 우리 정부가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 분산 개최를 추진한다면, 이 역시 부산 엑스포 유치에는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 한정호
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