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소아의 친구였던 포르투갈 화가 알마다 네그레이로스가 그린 페소아의 초상화. 중절모와 콧수염, 동그란 안경은 페소아의 트레이드마크다. 사진 민음사
페소아의 친구였던 포르투갈 화가 알마다 네그레이로스가 그린 페소아의 초상화. 중절모와 콧수염, 동그란 안경은 페소아의 트레이드마크다. 사진 민음사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김한민 옮김|민음사
1만2000원|268쪽

포르투갈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1888~ 1935)가 요즘 한국에서 나름 열혈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2012년 페소아 산문집 ‘불안의 서’가 발췌 번역되면서 불기 시작한 페소아 바람은 문단을 중심으로 확산했다. ‘불안의 서’ 첫 번역본은 포르투갈어가 아닌 이탈리아어와 영어 번역본 중 일부를 중역한 것이었다. 그러다 문인들이 즐겨 읽으니까, 소설가 배수아가 독일어본을 우리말로 완역했다. 곧이어 포르투갈어 원본이 ‘불안의 책’이란 제목으로 온전하게 번역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됐다.

최근 페소아 시집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과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가 나란히 출간됐다. 번역가 김한민은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페소아 문학에 심취한 나머지 포르투갈 유학까지 떠나 페소아 연구로 석사학위까지 땄다. 그는 리스본 체류 경험을 토대로 페소아의 삶과 문학뿐 아니라 문학 기행 코스도 안내한 책 ‘페소아’를 지난 여름 출간한 바 있다.

이번에 나온 시집 중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은 페소아의 시 세계에 첫발을 디디기에 좋은 길라잡이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페소아는 본명 이외에도 100여개 이명(異名)으로 시를 비롯해 소설, 희곡, 비평, 에세이 또는 짧은 메모를 남겼다. 단순하게 필명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분신(分身)을 양산했다. “하나로 묶일 수 있는 자아나 개성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각각의 새로운 사회환경에 맞도록 새롭게 생성되는 외면이 있을 뿐”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다중인격이론을 예술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시인은 진짜 감각들의 모험가”

시집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은 알베르투 카이에루 이름으로 발표한 시를 모았다. 수록작 중 ‘양 떼를 지키는 사람’은 페소아가 유난히 ‘직감(直感)을 예찬한 시인’이었다는 느낌을 안겨준다. 이야기 형식으로 꾸며진 이 시에서 화자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데에도 충분한 형이상학이 있다”고 외친다. 시라는 게 생각에 앞서 느낌을 통해 촉발된다는 건 당연한 얘기다. 페소아는 더 나아가서 “사물 내면의 의미는 그것들에 내면의 의미 따위는 없다는 것뿐”이라며 개념적 사고의 틀을 거부한다. 그런 측면 때문에 역설적으로 페소아는 철학자들이 주목하는 시인이라고 한다.

페소아는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라며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이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그는 상상력을 통해 외롭지 않게 지냈다. 시 ‘양 떼를 지키는 사람’은 천국에서 탈출한 예수가 시인의 마을에서 아이로 환생했다고 전한다. 어린 예수는 시심(詩心)을 일깨운다. “그는 내 영혼 안에서 잠을 잔다/ 그리고 이따금 밤중에 깨어나/ 내 꿈들을 가지고 논다”라는 것이다. 시인의 바람은 죽은 뒤 “내가 다시 깨어나거든, 내게 이야기를 들려줘/ 내가 다시 잠들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갖고 놀도록 너의 꿈들을 줘”라는 것.

그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우주와 자연을 느끼자고 권한다. 시인이야말로 “진짜 감각들의 모험가”라고 자처하면서 “나는 이 우주에 새로운 우주를 가져온다/ 왜냐하면 나는 우주에 스스로를 가져오기 때문에”라고 큰소리친다. 페소아는 고독하게 살면서도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자연 전체를 자신의 놀이터로 삼았기에 외롭지 않은 시인이었으리라. 그의 시집도 독자가 신나게 뛰어놀 놀이터처럼 흥미로운 이야기책처럼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