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한마리
영업 시간 매일 12:00~, 토요일 17:00~, 브레이크타임 14:00~17:00, 일요일 휴무
대표 메뉴 강력한 암모니아 냄새를 풍기는 홍어회

너랑나랑호프
영업 시간 매일 17:00~03:00, 매월 둘째 주 월요일 휴무
대표 메뉴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고소한 육전

행진
영업 시간 17:30~04:30
대표 메뉴 신선한 삼겹살을 급냉시킨 냉동삼겹살과 부산에서 올라온 대선소주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7명의 사람들이 망원동에 모였다.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 마케터, 인테리어 디자이너, 피아니스트, 음악평론가 등 그 직업군도 다양하다. 술자리에서 한 번 봤거나 처음 본 사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한끼를 먹더라도 허투루 먹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과음과 과식으로 부단히 단련된 혀와 불어난 내장지방을 훈장처럼 여기는 그들에게서 나는 왠지 모를 결연함을 느꼈다. 결국 이겨야 하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 스스로를 훈육하는, UFC 경기를 앞둔 격투기 선수들 같았다. 우리는 1차, 2차 그리고 3차까지 거듭했다. 술기운이 오를수록 흥에 사무치고 정으로 범벅됐다. 그렇게 한참을 먹고 마시며 시월의 마지막 밤을 탕진했다.


‘홍어한마리’의 삭힌 홍어회. 사진 김하늘
‘홍어한마리’의 삭힌 홍어회. 사진 김하늘

외로워 말고 지하로 와! ‘홍어한마리’

“홍어를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 처음 보는 J의 쓸쓸한 한마디에, 나는 무조건 그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두 H.O.T의 캔디를 부를 때, 나 홀로 댐 양키스(Damn Yankees)의 하이 이노프(High Enough)를 들으며 포효했던 그 고독과 비슷할 것이기에 더더욱. 이처럼 고독한 취향은 듣는 것 뿐만 아니라 맡는 것, 냄새에도 통한다. 가히 변태를 자처한다. 땀 흘린 남자의 겨드랑이 냄새, 그의 입에서 나는 소주 냄새, 그와 함께 걷는 길에서 나는 하수구 냄새 따위에 오르가즘을 느낀다. 그렇다고 사내의 팔을 들어올리거나 아구를 벌리거나 맨홀뚜껑을 찾아 다니진 않는다. 단지 삭힌 홍어를 먹을 뿐.

성산초등학교 사거리, 흡혈귀가 빨아들인 누군가의 혈처럼 새빨간 간판에 왠지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간다. 지하에서부터 넘쳐 올라오는 강력한 암모니아 냄새에 숨이 꼴깍 넘어간다. 땅 밑으로 감추고 묻어도 소용없다. 냄새의 근원지에 가까워질수록 쿰쿰한 냄새의 농도는 짙어진다. 식당 안은 홍어에 취한 사람들의 거나한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주문도 받기 전에 상이 채워진다. 꼬막, 갓김치, 어리굴젓, 다시마 등 일곱 가지 찬들과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물처럼 술이 셀프인 것은 술을 물처럼 마시게 되기 때문이리라.

취기와 흥이 오를 때쯤, 넓은 접시에 빈틈 없이 깔린 홍어회가 상에 오른다. 일곱 개의 젓가락 끝이 안달이 난다. 푹 삭혀 견실하고 탄력 넘치는 홍어의 붉은 살점과 아가미, 코 등을 부위별로 집어 삼킨다. “온다. 온다. 크아아!” 마치 마약이라도 흡입하는 듯 거친 들숨과 날숨을 몰아 쉰다. 탁주 한 잔으로 그 독한 알싸함을 야무지게 휘감아 넘긴다. 질펀하게 묵은 김치와 푹 삶은 돼지 고기에 홍어를 쉼 없이 싸 먹으며, 술병 또한 끝 없이 비운다.

“기가 막히네!” S는 장황한 감탄사를 내뿜으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일관되게 가게 지붕이 떠나가라 가가대소(呵呵大笑)한다. 왼손엔 소주잔을, 오른손엔 막걸리잔을 들고 소주엔 소주로, 막걸리엔 막걸리로 번갈아 가며 잔을 부딪힌다. 그의 주력(酒力)을 북돋는 것은 홍어회뿐만이 아니다. 회가 지루해질 때 즈음, 머릿수대로 나오는 갈빗대만한 제주 갈치 구이, 좀처럼 먹기 힘든 무늬오징어 숙회 등이 시기 적절하게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홍어회가 다 사라지기 전에 나오는 홍어애탕이 피날레다. 먹는 법은 이렇다. 펄펄 끓여 나온 애탕 뚝배기에 홍어회를 5초 담궈 살짝 익혀 먹는 것이다. 홍어도 사람처럼 열을 받으면 그 성질을 부풀리는데, 마지막 코스에 걸맞게 폭죽처럼 터지는 그 맛에 몽롱하게 취하고 만다.


갓김치와 육전 ‘너랑나랑호프’

호프집의 동의어를 치킨집으로 알고 있다면, 경기도 오산이다. 치킨도 있지만 베스트셀러는 따로 있다. 본 적 없는 생경한 광경이 펼쳐진다. 치킨 무 대신 고추씨가 박힌 푸릇푸릇한 갓김치와 파김치가, 치킨 대신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노란 육전이 테이블마다 빠짐 없이 놓여있다. 넓다란 사각 접시 위에 한 무더기 쌓여있는 김치의 선명한 초록색, 붉은색의 대비는 식욕을 때리고 또 때린다. 따끈하고 부드럽고 고소한 육전이 너그럽게 감싸 안는다.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육전은 세 장씩 두 번에 나뉘어 나오는데, 개구리가 혀로 파리를 잡아먹듯 앞다투어 낚아채 먹느라 바쁘다. 떡볶이, 가자미튀김, 표고튀김…. 전투력이 최고조에 오른 선수들처럼 먹고 또 마셔도 끄떡없다. 그렇게 몇 병을 비운 걸까. S는 시종일관 양손으로 건배를 청하며 말한다. “기ㄱㅏ 맠히네!”


‘행진’에서 마지막에 꼭 맛봐야 할 볶음밥. 사진 김하늘
‘행진’에서 마지막에 꼭 맛봐야 할 볶음밥. 사진 김하늘

냉동삼겹살 앞으로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 알루미늄 섀시문을 열고 들어가 그야말로 옛날식 불판 앞에 둘러 앉았다. 도기다시 바닥에 발을 구르며 박자를 맞춰 노래를 불렀다. 빠르게 지고 있는 가을밤이 아쉬운 들국화처럼 계절의 소매 끝을 붙잡고 그렇게 부르고 또 불렀다. 저만치 ‘리(Lee) 청바지’에 ‘휠라’ 운동화를 신고 링 귀걸이로 멋을 낸 저 소녀는 나인가, 아닌가. 목이 터져라 부르는 노래에 쿨하게 웃음지으며 비트를 챙기는 저들은 힙스터인가, 아닌가. 아버지가 시바스리갈을 따는 날이면 엄마가 오징어와 아몬드 초콜릿을 담아오던 그 묵직한 파카 크리스털 접시가 오른다.

달걀말이, 오뎅볶음, 조개젓 등 갖가지 밑반찬들에 젓가락은 행진한다. 양은 쟁반 위에 가지런히 펼쳐 오른 얇은 냉동 삼겹살은 마치 시베리아에 핀 한 송이의 붉은 돼지꽃같구나. 한 떨기, 한 떨기를 구워 ‘대선소주’ 한 잔과 삼켜 보낸다. 끝도 없이 모자란 배를 채우기 위해 볶음밥을 시킨다. 고추장과 김치, 참기름을 넣어 비빈 밥 위에 써니 사이드 업이 살포시 앉아있다. 파절이를 얹어 마구 볶는다. 밥알을 문대고 눌린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까지 왔나. 아직 탕진할 것이 남았나. 답하라, 친구여! “기ㄱㅏ 막ㅎ… ”

기 막힌 밤이었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