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의 대표적인 ‘인증샷’ 명소인 석실(石室) 성심성당. 사진 이용성 차장
광저우의 대표적인 ‘인증샷’ 명소인 석실(石室) 성심성당. 사진 이용성 차장

광저우(廣州)는 베이징, 상하이, 선전과 함께 중국의 4대 ‘1선 도시’를 이룬다. 그런데도 수도 베이징과 최대 경제도시 상하이는 물론 화웨이와 텐센트 등의 본사가 있는 중국 정보통신기술(ICT)의 메카 선전에 가려 최근 몇 년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지난달 말 갑작스럽게 결정된 중국 경제 관련 취재 일정을 짜면서 상하이에 이은 목적지로 선전과 광저우를 두고 고민하다가 광저우로 결정한 것도 선전보다는 그나마 참신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출장에서 돌아온 지 불과 사흘 뒤에 광저우 여행 기사를 쓰게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것도 자원해서 말이다. 그만큼 처음 찾은 광저우에는 상하이와 선전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광저우와 함께 광둥성의 양대 중심 도시로 성장한 선전에는 4년여 전 현지에 본사를 둔 ICT 기업에 근무하면서 여러 차례 다녀왔다. 도심 속 숲을 이룬 초고층 빌딩들이 만들어 내는 화려한 야경도 볼 만했고, 두세 명만 모이면 스마트폰 한 대를 뚝딱 만들어낸다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상가 화창베이(華强北)의 떠들썩함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여행지로는 어딘지 허전함이 남았다.

허전함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는 이번 광저우 일정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인구 3만 명의 작은 어촌에서 첨단 도시로 상전벽해(桑田碧海)에 가까운 변신을 한 선전에서 접하기 힘든 역사와 전통, 독특한 문화의 숨결을 광저우에선 느낄 수 있다. 박물관이나 민속촌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곳곳이 살아 숨 쉰다.

광저우는 2000년 역사를 지닌 동양 최고(最古) 무역도시이자 동서양을 잇는 해상 실크로드의 중요 출발점이었다. 청나라 때는 대외에 개방된 유일한 항구도시로 남아 ‘황제의 남쪽 보물창고’로 불릴 만큼 번영을 누리기도 했다. 19세기엔 무역량이 상하이의 세 배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 세계 화교의 약 3분의 2는 광저우에서 퍼져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일찌감치 무역도시로 성장한 까닭에 해외 진출이 쉬웠기 때문이다.

광저우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는 광저우 타워(Canton Tower)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맞춰 완공한 높이 610m의 광저우 타워는 타원형 통의 가운데 부분이 꽈배기 모양으로 뒤틀린 독특한 외형에, 7000여 개의 LED 조명으로 장식됐다. 여기에 인근 주강(珠江)을 따라 오가는 유람선과 강변에 늘어선 마천루의 조명이 어우러져 상하이 와이탄(外灘)이 부럽지 않은 멋진 야경을 선사한다.


광저우 타워가 보이는 주강의 야경. 사진 이용성 차장
광저우 타워가 보이는 주강의 야경. 사진 이용성 차장

광저우의 명소, 웨슈산

하지만 번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조금만 걷다 보면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된 거리와 마주하게 된다. 광저우는 중국 대도시 중 구시가지가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으로 손꼽힌다. 도시 북쪽 기슭에는 명나라 시대부터 이어 내려온 오랜 시가지도 있다. 푸른 잎이 무성한(광저우는 11월에도 최저기온이 20도 안팎이다) 가로수길을 따라 난 골목을 걸으며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것 없을 ‘보통 중국인’의 살아가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는 것도 여행의 맛을 더한다.

광저우에서 으뜸가는 명소는 크고 작은 6개 산봉우리로 이뤄진 웨슈산이다. 1929년 국민당 정부가 이곳에 3개의 인공호수를 만들고 공원을 조성했다. 이곳에는 광저우의 상징인 다섯 마리 양을 형상화한 오양석상과 ‘중국 건국의 아버지’ 쑨원(孫文)의 유언이 새겨진 중산기념비, 명나라 때 바다와 강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지어졌다는 진해루, 48개의 거대한 붉은 사암 덩어리가 장관을 이루는 롄화산 고대 채석장과 도교 사원들이 모여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이라고 믿는다면, 하이주광창(해주광장) 인근에 있는 석실(石室) 성심성당도 빼놓을 수 없다. 화강암으로 건축한 웅장한 고딕 양식의 로마 가톨릭 성당으로 1863년 짓기 시작해 25년 뒤인 1888년에 완공했다. 건물 자체도 웅장하고 아름답지만, 마카오 골목 어딘가를 연상케 하는 주변 건물과 균형도 조화롭다.

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세계적인 완구 쇼핑 거리인 이더루(一德路)가 있다. 명품 쇼핑을 원한다면 티엔허 중심가에 있는 최고급 쇼핑몰 타이쿠후이 등이 있지만, 중국에서 누릴 수 있는 독특한 쇼핑 경험을 원한다면 이더루가 제격이다.

이더루는 세계 최대 도매시장인 저장성 이우(義烏)시장과 자주 비교되는 곳이다. 이더루의 중심은 우리나라 전자상가나 테크노마트와 구조가 비슷한 완링광창(One link Square)이다. 각종 피규어와 레고블록 등 온갖 종류의 완구와 액세서리는 물론 드론과 블루투스 마이크 등 다양한 제품을 국내에서 상상하기 힘든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진품과 ‘짝퉁’의 구분이 어렵긴 하지만 구분 자체가 큰 의미가 없는 제품들(특히 완구류 중에는)도 많다.

전자제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신아주국제전자도매상가’와 ‘따두스(大都市) 신발 도매시장’도 하이주광창 인근에 모여 있다.

유럽풍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사멘다오(沙面島)도 광저우에서 손꼽히는 관광명소다. 사멘다오는 주강에서 쓸려 온 모래를 쌓아서 만든 인공섬으로, 동서 900m, 남북 300m로 아담하다. 19세기 중엽 난징조약과 톈진조약에 따라 프랑스와 영국의 조계지가 되면서 각국 영사관·성당·교회·은행이 들어서기 시작해, 청나라 말기에는 150여 채의 유럽풍 건물이 세워졌다. 지금은 국가 건축물 약 10여 채가 보존돼 있어 웨딩 촬영지로 인기다.


여행수첩

광저우 여행 정보

광저우는 홍콩과 함께 ‘광둥요리’의 본고장으로 유명하다. ‘다리 네 개 달린 것 중에서는 책상, 하늘을 나는 것 중에서는 비행기 빼고는 무엇이든 다 먹는다’고 할 만큼 식자재가 다채롭다. 독특한 식자재가 부담스럽다면 대표적인 광저우 요리인 딤섬(디엔신·點心)을 먹으면 된다. 딤섬은 광저우 대표 음식으로, 웬만한 딤섬 전문식당에만 가도 면류와 만두류가 수십에서 수백 가지에 이를 만큼 선택의 폭이 넓다. 가격도 저렴해 입맛대로 골라 먹기 좋다.

주강의 멋진 야경을 감상하며 식사나 맥주를 즐기기 원한다면 주강파티(珠江琶醍)가 제격이다. 광저우 타워 인근에서 트램으로 연결되는 주강파티는 맥주 공장을 활용해 조성한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다. 강변을 따라 두 개 층으로 나눠진 공간에는 분위기 좋은 바와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다.

인천~광저우 구간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중국동방항공, 중국남방항공 등이 매일 직항편을 운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