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지난해 말 지문으로 도어를 열고 시동을 걸 수 있는 스마트 지문 인증 출입·시동 시스템을 공개했다. 사진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말 지문으로 도어를 열고 시동을 걸 수 있는 스마트 지문 인증 출입·시동 시스템을 공개했다. 사진 현대자동차

20년 전만 해도 대부분 승용차는 키박스에 열쇠를 꽂고 돌려야 시동이 걸렸다. 난 그때 2002년형 현대자동차 베르나를 탔는데, 스마트키가 아니어서 도어를 열 때도 손잡이에 있는 구멍에 열쇠를 꽂고 돌려야 했다. 그러다 시동 버튼이 달린 차를 처음 탔을 때 미래 자동차를 탄 것처럼 기분이 우쭐했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시동 버튼을 누르면 엔진이 깨어나면서 ‘부르릉’ 시동이 걸리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어 몇 번씩 버튼을 눌러보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버튼을 눌러 시동을 끄는 게 익숙지 않아 시동을 끄지 않고 차에서 내린 적도 몇 번 있었다. 한 번은 시동을 끄지도 않고 차에서 내린 채 문을 닫고 한 시간 남짓 주차장에 세워둔 적도 있었다. 요즘 같으면 공회전 제한 위반으로 과태료를 물었겠지만 그땐 다행히(?) 그런 법이 없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런 시동 버튼도 사라지게 될지 모르겠다.


테슬라 모델에는 시동 버튼이 아예 없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시동이 걸리고, 변속기를 P에 두면 시동이 꺼진다. 사진 테슬라
테슬라 모델에는 시동 버튼이 아예 없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시동이 걸리고, 변속기를 P에 두면 시동이 꺼진다. 사진 테슬라

얼굴, 정맥 인식해 시동 걸 수 있어

현대차가 지난해 말 스마트 지문 인증 출입·시동 시스템을 공개했다. 지문으로 도어를 열고 시동을 거는 방식인데, 방법은 간단하다. 시동 버튼에 있는 지문 센서에 손가락을 대고 지문을 등록하면 된다. 그다음 차에서 내려 도어 손잡이에 달린 지문 센서에 등록한 손가락의 지문을 대면 열쇠가 없어도 문이 철거덕 열린다. 시동을 걸 때도 시동 버튼을 누르지 않고 센서에 지문을 대기만 하면 된다. 여러 명의 지문을 등록할 수 있는데 내 지문을 대면 내가 설정한 운전석 시트 위치와 룸미러나 사이드미러 각도도 알아서 조정한다. 센서 면에 닿았는지 닿지 않았는지를 인지해 파악하는 정전용량방식이라 손가락을 대야만 인증이 가능하다는 게 이 시스템을 개발한 현대차 연구원의 설명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유리잔 등에 있는 지문을 테이프 등에 붙여 인증하는 건 어렵다는 말이다. 현대차는 올 상반기 중국에 출시할 신형 싼타페에 이 시스템을 우선 탑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대차는 지난해 투싼 페이스리프트(부분 변경) 모델에 홈투카 서비스를 처음으로 적용하기도 했다. 지금은 블루링크 3.0을 품은 2018년형 이후 모델에 이 기능이 적용됐는데, 집에 있는 인공지능 스피커에 시동을 걸라고 말하고 보안 코드를 얘기하면 얼마 후 스스로 시동을 건다. 시동을 거는 것 말고도 도어를 잠그거나 비상등을 켜거나 온도를 설정하는 것도 스피커로 명령할 수 있다. 손대지 않고 말로 시동을 걸 수 있는 거다. 단, 국내에서 인공지능 스피커는 SK텔레콤의 ‘누구’와 KT의 ‘기가지니’만 가능하다.

중국의 전기차 스타트업 기업 리프모터는 지문에서 한술 더 떠 운전자의 정맥과 안면을 인식하는 자동차를 공개했다. 2도어 쿠페 링파오 S01은 곳곳에 각종 생체열쇠 시스템을 적용했는데, 도어에 손가락을 대면 정맥을 인식해 문이 열리고, 시동을 걸 때는 센터패시아에 달린 모니터가 안면을 인식해 시동을 건다. 아이폰 X처럼 모니터를 보기만 해도 시동이 걸린다니, 이 신기한 전기차는 길이×너비×높이(4075×1760×1380㎜)가 기아차 K3보다 조금 작은데, 배터리 용량에 따라 두 가지 모델이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2019년형 E클래스에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시동을 걸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메르세데스 미 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 다운받은 후 로그인한 다음 화면 가운데에 있는 둥근 전원 버튼을 누르면 전원 버튼이 다시 한 번 더 나오는데 이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으면 보안코드를 입력하라는 말이 뜬다. 그 말에 따라 보안코드를 입력하면 잠시 후 시동이 걸린다. 이전 E클래스는 앱으로 도어를 열고 잠그는 것만 가능했지만 2019년형 모델부터 시동을 거는 게 추가됐다. 시동 버튼을 누르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시동을 걸 수 있게 된 거다. 스마트폰으로 건 시동은 최대 10분까지 유지된다. 시동을 거는 것뿐 아니라 끄는 것도 가능한데, 시동이 켜진 상태에서 전원 버튼을 길게 누르면 시동이 꺼진다. 사실 스마트폰으로 시동을 걸 수 있는 차는 E클래스만이 아니다. 현대차는 블루링크 애플리케이션으로, 기아차는 UVO 애플리케이션으로 시동을 걸거나 끄는 것은 물론 도어를 여닫고 실내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투싼, 아이오닉스 등에 인공지능 스피커로 차량을 제어할 수 있는 홈투카 서비스를 적용했다. 사진 현대자동차
현대차는 지난해 투싼, 아이오닉스 등에 인공지능 스피커로 차량을 제어할 수 있는 홈투카 서비스를 적용했다. 사진 현대자동차

시동 버튼 없는 테슬라 모델

테슬라 모델에는 시동 버튼이 아예 없다. 실내를 샅샅이 뒤져도 버튼을 찾을 수 없다. 태블릿처럼 생긴 커다란 디스플레이에도 시동 관련 메뉴는 없다. 그럼 시동을 어떻게 거냐고? 그냥 가속 페달을 밟으면 자동으로 시동이 걸린다. 모델 S는 물론 모델 X도 마찬가지다. 시동을 끌 때는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멈춘 후 변속기를 ‘P’에 두면 시동이 자동으로 꺼진다. 모델 는 여기에 스스로 도어를 여는 기능까지 추가됐다. 스마트키를 지닌 채로 차에 가까이 가면 두 팔을 위로 들어 올리는 것처럼 열리는 팰컨 윙(falcon wing) 도어가 스르륵 위로 올라간다. 그 덕에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고도 차에 탈 수 있다. 센서가 옆 공간을 인식해 옆 차가 가깝게 주차돼 있거나 벽에 가까우면 도어를 좁게 펼치므로 옆 차나 벽에 도어가 부딪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살펴보니 자동차 시동을 거는 방법이 꽤나 다양하다. 개인적으로는 안면 인식이나 지문 인식보다 그냥 가속 페달을 밟는 것으로 시동이 걸리는 테슬라 방식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인 듯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자동차에서 시동 버튼이 사라지게 될까? 하긴,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시동 버튼이 필요 없어지긴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