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홍콩 아트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톰 모리스 연출의 연극 ‘터칭 더 보이드’의 한 장면. 사진 홍콩 아트 페스티벌
올해 홍콩 아트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톰 모리스 연출의 연극 ‘터칭 더 보이드’의 한 장면. 사진 홍콩 아트 페스티벌

홍콩은 1997년 중국에 반환되면서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에 따라 자치를 약속받았다. 그러나 2010년대 광둥·홍콩·마카오를 아우르는 웨강아오 다완취(粤港澳大湾区) 계획에 따라 경제권은 점차 중국 남부에 흡수되고 있다. 광둥성 선전의 경제 규모는 지난해 홍콩을 추월했다. 홍콩~광저우 간 고속철도와 홍콩과 마카오, 광둥성 주하이를 잇는 총길이 55㎞의 강주아오 대교 개통으로 2047년 예정된 중국으로의 완전한 편입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무역항으로서 중요성은 줄었지만, 홍콩은 여전히 세계와 대륙을 잇는 관문이다. 뉴욕·시드니·함부르크가 그렇듯 홍콩도 베이(Bay) 지역의 특성상 앞으로도 국제 교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올해로 47회째인 홍콩 아트 페스티벌은 역사와 규모에서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 공연 축제다. 올해는 2월 21일부터 약 한 달간 1700여 명의 예술가가 행사 참여를 위해 홍콩을 찾았다. 문자 그대로 ‘향기로운 항구(香港)’ 홍콩의 문화적 가치를 증명하는 중요한 행사다.

홍콩 아트 페스티벌이 반세기 가깝게 명맥을 이어 온 건 홍콩에 기반을 둔 기업들 덕택이다. 2019년 축제 예산은 1억3600만홍콩달러(약 196억원)로 후원 기부가 33%, 티켓 판매가 28%, 홍콩 문화부 관광국(LCSD) 보조금이 13%다. 홍콩 특별행정구와 축제 사무국이 공연마다 지정한 개별 공연 스폰서가 기타 수입으로 잡힌다. 홍콩 토착 기업의 후원이 이벤트 운영 자금의 핵심이다.

2019년 행사 후원금 기부 순위에서는 물류 기업 케리(嘉里), 부동산 재벌 선 훙 카이(新鴻基), 영국계 종합상사 자딘 매더슨(怡和), 호텔 기업 코즈웨이 코너(銅鑼閣), 캐세이퍼시픽 항공의 모기업 스와이어(Swire)그룹 등이 상위권을 형성했다. 홍콩 아트 페스티벌이 아니면 좀처럼 예술에 돈을 쓰지 않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경마장 운영으로 홍콩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납부해온 홍콩 자키클럽(HKJC)도 올해 폐막 공연인 함부르크 발레단 공연을 개별 후원했다. 호화 주택 거래로 부를 이룬 부동산 그룹 신허(信和)도 자사 이름을 ‘시리즈’에 붙이며 축제에 참여했다. 영국 부동산에 직접 투자 중인 중국공상은행(ICBC)은 경쟁사 HSBC가 지난해 11월 홍콩 커뮤니티 페스티벌을 후원한 것에 자극받아 뒤늦게 축제 지원에 합류했다. 마치 후원 규모를 기준으로 홍콩의 경제 맹주가 누구인지 가리는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양상이다. 상대적으로 다국적 기업의 참여는 저조하다.

홍콩 아트 페스티벌에는 오페라, 전통극, 클래식, 재즈-월드뮤직, 발레-현대무용, 연극 등 다양한 장르가 포함된다. 사무국의 오랜 설득으로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라이프치히 오퍼, 볼쇼이 오페라, 마린스키 오페라가 몸값을 낮춰 홍콩을 찾았다. 바르톨리, 샤이, 조성진, 두다멜, 요요마, 네트렙코, 틸레만이 축제를 통해 홍콩 무대에 섰다. 런던 심포니,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빈 필하모닉도 내한 공연을 전후해 홍콩을 들렀다. 바비 맥퍼린, 유수 은두르, 에스페란자 스팰딩,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핑크 마티니의 아시아 투어도 홍콩~서울~도쿄를 돌며 멋진 무대를 선보였다. 경제성을 이유로 내한하지 못한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와 함부르크 발레, 뉴욕 시티 발레, 파리 오페라 발레도 홍콩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홍콩 아트 페스티벌은 장르를 불문하고 새로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데 역점을 둔다. 세계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쉬는 홍콩 반환을 앞둔 주민의 불안을 다룬, ‘유리 청소부(Window Washer)’를 홍콩이 반환되던 1997년 열린 홍콩 아트 페스티벌 무대를 통해 선보이기도 했다. 바우쉬는 한 도시에 오래 머물면서 현지에서 받은 영감으로 창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런던 ‘올드 빅’ 극장, 영국 극단 ‘닐 스트리트’, 뉴욕 아트센터 ‘BAM’과는 공동 작업을 통해 연극 ‘리처드 3세’와 ‘템페스트’를 공동 제작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와는 소설 ‘홍루몽’ 원작의 영어 오페라 ‘붉은 누각의 꿈(Dream of the Red Chamber)’을 함께 만들기도 했다.

올해 홍콩 아트 페스티벌은 영국군의 복합사법지구에서 복합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신한 타이퀀(Tai Kwun)을 공식 무대로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축제 공식 프로그램으로 예술가 워크숍과 댄스배틀도 함께 열렸다. 지난 1월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곳을 방문해 타이퀀을 성공적인 도시 재생 사례로 치켜세웠다.


중국 전통 등불을 형상화한 시취센터의 외관. 사진 시취센터
중국 전통 등불을 형상화한 시취센터의 외관. 사진 시취센터

홍콩 고유의 문화 유산을 승화

홍콩 아트 페스티벌이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서구 예술을 홍콩 시민이 어떻게 수용했는지를 보여 준다면, 1998년 시작해 최근까지 이어진 홍콩 서구룡 문화지구 조성 사업의 핵심은 예술 인프라를 통해 중화민족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서구룡 문화지구 프로젝트는 약 300억홍콩달러(약 4조3000억원)를 투자해 17개 공연, 전시, 관광 시설을 세우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아트센터 조성 사업이다. 지난 1월 중국 희곡을 뜻하는 시취(Xiqu·중국어로 ‘희곡’을 뜻함)센터가 홍콩 중심부 침사추이에 건립됐고 3월까지 개관 축제가 계속됐다.

시취센터는 중국 전통 등불에서 영감을 얻은 외관과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다. 서구 극예술 대신 홍콩 고유의 문화유산을 관광 상품으로 승화하고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티 하우스를 겸한 극장 안에서 차와 딤섬을 들면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서구룡 지구의 갤러리에선 최신 서양식 현대 예술작품이 주를 이루지만, 시취센터에 들어서는 순간 홍콩 주민과 대륙 주민이 다를 것이 없다는 점을 강요받는다. 홍콩의 젊은층에게 1997년의 중국 반환만 기억하지 말고, 애초에 홍콩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점을 상기하라는 권유다.

홍콩 아트 페스티벌에는 지난 세기 외세로부터 받은 상처와 중국에 우호적인 홍콩인의 새로운 정체성이 혼재돼 있다. 그러나 2014년 ‘우산 시위’로 대표되는 홍콩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홍콩 특별행정구의 방침은 시취센터의 운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시진핑이 실현하려는 ‘21세기 중국의 꿈’이 홍콩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지켜볼 일이다.


▒ 한정호
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