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정역 성서(Authorized Version)’는 국내에서 흔히 ‘킹 제임스 성서(King James Bible)’를 가리킨다. 개신교의 정전(正典)으로 꼽히는 성서다.
‘흠정역 성서(Authorized Version)’는 국내에서 흔히 ‘킹 제임스 성서(King James Bible)’를 가리킨다. 개신교의 정전(正典)으로 꼽히는 성서다.

흠정역 성서와 영미문화
박영배 지음|지식산업사|368쪽|1만9000원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2018년 10월 4일 중국을 비난하는 연설을 했다. 요즘 날로 심화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을 예고한 경고성 발언이었다. “중국 공산당이 미국에서 훔친 기술을 이용해 대규모로 쟁기를 칼로 바꿔 놓고 있다(And using that stolen technology, the Chinese Communist Party is turning plowshares into swords on a massive scale)”고 했다.

박영배(74) 국민대 영문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펴낸 ‘흠정역 성서와 영미문화’를 통해 이 연설에서 사용된 표현 ‘turning plowshares into swords’의 뿌리가 영어 성서에 있다고 풀이했다. 박 교수는 1611년 영국에서 나온 ‘흠정역 성서’를 펼쳤다. “무리가 그 칼을 쳐서 쟁기를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할 것이다(They shall beat their swords into plowshares, and their spears into pruning hooks; nation shall not lift up a sword against nation, neither shall they learn war any more).”

박 교수는 ‘미가서 Book of Micah’ 4장 3절에 나온 ‘칼을 쟁기로(swords into plowshares)’라는 구절을 지적하며, 미국 정치인이 전쟁 공포에서 벗어난 미래의 평화를 강조할 때 사용하는 수사학의 사례라고 설명했다. 펜스 부통령은 그 구절을 패러디해서 중국이 ‘쟁기를 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는 데 사용했다. 성서에 기반한 영어를 쓰는 청중에게 중국의 안보 위협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한 것이다.

박영배 교수의 책 ‘흠정역 성서와 영미문화’는 이처럼 영어로 성서를 읽으면서 영미문화의 기원과 현대적 변형을 조명한다. 흠정역 성서(Authorized Version)는 ‘킹 제임스 성서(King James Bible)’로, 개신교의 정전(正典)으로 꼽히는 성서다. 셰익스피어의 영어가 이 성서에 바탕을 둔 것이다. 박 교수는 영문학자로서 지금껏 원문을 음미하면서 거둔 연구 성과를 이번에 일반 독자를 위한 책으로 펴냈다.

박 교수의 해설은 창세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담(Adam)의 이름을 히브리어와 연관 지어 풀이했다. “아담이라는 이름에서 A를 빼고 D-A-M만 남겼을 때 히브리어 ‘담’은 ‘피(blood)’라는 뜻이 된다. 또한 아담이라는 이름에 A-H를 붙였을 때는 ‘아다마’ 즉 ‘땅(Land)’이라는 뜻이 된다”는 것.

창세기에서 아담이 탄생한 뒤 “내가 그를 위해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며 이브를 창조한 신의 말씀은 “I will make him an help meet”라고 영역됐는데, ‘돕는 배필(help meet)’이 현대 영어에선 배우자(helpmate)로 한 글자가 바뀌었다. 배우자 외에도 조력자 또는 동료를 뜻하기도 한다.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먹은 뒤 수치심을 깨달아 나뭇잎으로 치부를 가린 장면은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고 한다. 여기에 등장한 ‘무화과 나뭇잎(fig leaf)’은 현대 영어에서 ‘당황하거나 수치스러운 것을 가리는 덮개’로 자주 쓰인다.

박 교수는 “이 표현이 비유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라며 “협상 과정에서 실제로 상대방을 속이려는 계략이 숨어 있는 경우 그 제안은 ‘무화과잎’으로 표현된다”라고 덧붙였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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