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가 비디 그라프트와 라이프패션브랜드 뮤트뮤즈의 협업 전시회 ‘아트 오브 옐로우’가 열리는 전시관 전경.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전시가 열리는 동네도 서울에서 가장 ‘핫’하고 ‘힙’한 곳이다. 사진 이미혜
독일 작가 비디 그라프트와 라이프패션브랜드 뮤트뮤즈의 협업 전시회 ‘아트 오브 옐로우’가 열리는 전시관 전경.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전시가 열리는 동네도 서울에서 가장 ‘핫’하고 ‘힙’한 곳이다. 사진 이미혜

한동안 전시 준비로 성수동 갈비 골목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젊은층을 타깃으로 한 가방 브랜드의 팝업 전시장을 만들면서 관찰한 이 동네는 성수동에 유명세를 안겨준 공장 골목과는 또 다른 풍경을 갖고 있다.

뚝섬역과 서울숲(한화 갤러리아 포레), 성수 현대 아파트를 꼭짓점으로 잇는 이 삼각지대는 요즘 서울에서 제일 인기다. 대낮부터 지글대는 돼지갈비 냄새를 따라 걷다 보면 쉴 새 없이 카페와 맛집들이 펼쳐진다. 배우 배용준도 투자했다는 센터 커피, 2층 가정집을 카페로 개조한 장미맨숀, 아포가토에 와플을 얹어주는 그레이트 커피 등 인스타그램에 하루에도 수백 번 태그되는 카페들이 즐비하고, 줄 서서 들어가는 인기 식당도 많다.

아담한 마당과 처마 지붕이 인상적인 한식 레스토랑 할머니의 레시피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고, TV에 출연한 유명 셰프의 레스토랑도 새로 생겼다. 뚝섬역 사거리를 기준으로 갈비 골목 건너편엔 블루보틀도 있다. 요즘도 블루보틀 건물 앞에 각지에서 온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대림창고를 중심으로 한 성수역 사거리가 창고나 공장을 개조한 대형 건물 위주라면, 뚝섬역 서울숲길은 분위기가 다르다. 이쪽은 공원 인근의 가정집을 상업시설로 고쳐 각 지점별 이동 거리가 짧고 골목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게 특징이다. 덕분에 평일에도 유동인구가 끊이지 않는다.

지금 이 골목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는 ‘아트 오브 옐로우(The Art of Yellow)’다. 스튜디오 파런테즈의 라이프 패션 브랜드 뮤트뮤즈(MUTEMUSE)는 암스테르담에서 거주 중인 독일 작가 비디 그라프트(B.D Graft)와 두 달간의 일정으로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본격적인 전시 기획을 위해 뮤트뮤즈 측을 만났을 때에는 이미 작가와 전시 장소 선정이 끝난 후였다. 전시 오픈까지 준비 시간이 다소 촉박했지만 합류를 결심한 건 이 동네와 작가의 이력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새 단장을 마치고 다음 임차인을 기다리던 건물은 내외장 공사를 막 끝낸 상태라 어수선했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이면도로에 위치해 공간 디자인만 잘한다면 충분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1층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윈도 갤러리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작가는 또 어떤가. 비디 그라프트의 옐로 콜라주 작업들은 전통적인 화랑보다 SNS에서 더 인기다. 화랑의 시대는 이제 저문 것일까. 화랑과 화상을 대신해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이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건 인스타그램이다. 현재 비디 그라프트의 인스타그램(@b.d.graft) 팔로어 수는 8만이다. 곱슬머리와 미소가 인상적인 이 88년생 작가는 몇 달 전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를 통해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로부터 제품 협업을 제안받기도 했다.

잠시 버질 아블로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오프 화이트의 수장이자 루이뷔통 남성복 패션 디자이너로, LVMH가 영입한 최초의 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빨간색 케이블 타이 하나가 달리자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한 나이키 운동화가 바로 그의 작품이다. 카니예 웨스트 같은 팝스타들과 호형호제하며 디제잉을 하고, 중고 매장에서 산 40달러짜리 폴로 티셔츠에 ‘PYREX’ ‘23’ 같은 문자를 커다랗게 프린트해 비싸게 판매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거리의 트렌드를 누구보다 빠르게 캐치해내는 인물인 그가 비디 그라프트를 선택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비디 그라프트의 작품이 프린트된 오프 화이트 제품들은 올여름이 가기 전에 공개될 예정이다.


작가 비디 그라프트는 유명 미술가의 작품 사진 위에 자신의 생각대로 노란색의 이미지를 덧입힌다. 사진 뮤트뮤즈
작가 비디 그라프트는 유명 미술가의 작품 사진 위에 자신의 생각대로 노란색의 이미지를 덧입힌다. 사진 뮤트뮤즈

인스타존 갖춘 핫한 아티스트의 콜라주들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비디 그라프트의 작품은 사이즈가 크지 않다. 별도의 조명이나 장치 없이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쉽게 찍을 수 있는 크기다. 물론 이는 계산된 바가 아닌 우연의 일치처럼 보인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 방식에 대해 암스테르담의 헌책방에서 관심 가는 책들을 구입해 특정 페이지를 찢은 후 그 위에 수채화 물감으로 채색한 종이를 가위로 오려 붙이는 것이라고 했다.

버질 아블로가 모나리자의 이미지를 가져와 티셔츠에 프린트한 다음 그 아래에 ‘오프 화이트’라고 써넣은 것처럼 비디 그라프트는 알렉산더 칼더나 마티스 같은 유명 미술가의 작품 사진 위에 자신이 생각한 노란색의 이미지를 덧입힌다.

이번 전시의 오픈에 맞춰 한국을 찾은 비디 그라프트는 “콜라주 작업은 음악 샘플링이나 리믹싱 과정과도 흡사하며, 결국 오늘날 우리가 SNS를 통해 삶을 향유하고 서로 리포스팅하는 모습과도 같다”고 말했다. 전시장을 찾은 인스타그래머들은 현장에서 작가의 작품을 찍어 자신의 계정에 열심히 포스팅하고 있다.

사실 전시 공간을 디자인할 때부터 이 점을 염두에 두기도 했다. 작가의 옐로 패턴을 전시장이라는 3차원 공간으로 옮겨와 관람객이 직접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전시 동선을 구성하고 가벽 등의 설치물을 디자인한 것이다. 작품을 벽에 걸 때도 ‘인스타그램 존’을 운운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촬영할 때 스마트폰 카메라에 뜨는 정사각형 프레임 안에 어떤 풍경이 들어오는지를 말하는 용어다.

6월 1일부터 시작된 전시는 7월 31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놀랍게도 전시된 작품의 대다수가 이미 팔렸다. 뮤트뮤즈에서 제작한 기념 굿즈들도 반응이 좋다. 이제 굿즈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듯하다. 전시는 물론 영화나 방송, 음악, 책, 커피, 공간, 어떤 종류의 콘텐츠라도 굿즈가 빠지지 않는다. 소셜 네트워크 시대의 오프라인 마케팅은 이전의 홍보 마케팅 방식과는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시 준비 기간 내내 골목을 다니면서 다음 프로젝트 장소를 미리 점찍어 두었다. 이혼 소송 중인 야구 선수가 임대를 놓았다는 미스테리한 주택, 목욕탕처럼 지붕에 굴뚝이 있는 건물을 레스토랑으로 개조 중이라는 공사 현장, 빨간 벽돌로 지어진 작고 오래된 건물들과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앞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확실히 재미있는 동네다. 새로운 볼거리를 찾아 골목을 걷는 이들은 여유를 갖고 주변을 관찰하며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는다. 바로 이 ‘찍는다’는 행위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느냐가 언젠가부터 행사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 듯하다.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사은품을 준다고 자신의 SNS에 해시태그를 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집을 비워둔 채 방치한 상태가 아니라면 자신의 집 대문 앞에 아무렇게나 전단지가 붙는 걸 환영할 사람은 없다. 장소가 정해졌다면 다음은 이야기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행인의 발걸음을 멈춰 세울 만한, 혹은 찾아오게 할 만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경험할 수 있을까.


▒ 이미혜
패션·미술 칼럼니스트, 문화기획자, 보그코리아 컨트리뷰팅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