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의 ‘소멸의 방’. 새하얀 방에 동그란 스티커를 붙일수록 하얀 방은 점들로 가득 차 사라진다. 이 과정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사진 이미혜
일본 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의 ‘소멸의 방’. 새하얀 방에 동그란 스티커를 붙일수록 하얀 방은 점들로 가득 차 사라진다. 이 과정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사진 이미혜

방송인 장성규는 요즘 유튜브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다. ‘세상의 모든 잡(Job)을 리뷰한다’는 주제로 녹즙 배달부터 키즈카페, 놀이공원 아르바이트까지 구독자가 원하면 무조건 달려간다. 2019년판 ‘체험 삶의 현장’이랄까. 장성규의 유튜브 채널 ‘워크맨’은 개설한 지 한 달 만에 구독자 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 웬만한 개그맨보다 더 웃긴 장성규의 원맨쇼와 제작진의 센스 있는 편집이 인기의 이유다. 최고령 아이돌 god의 맏형 박준형은 ‘와썹맨’이라는 채널에 등장한다. 전국의 유명 명소와 맛집을 찾아다니며 정보를 공유하는 콘셉트인데 줄거리는 언뜻 평범해보이지만 박준형은 엄청난 매력을 보여준다. 두 채널은 모 종합편성채널의 디지털팀 ‘스튜디오 룰루랄라’가 인터넷 예능 프로그램으로 제작하면서 등장했다. 스튜디오 룰루랄라는 2017년 7월 설립됐다. ‘디지털 세대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크로스 미디어 스튜디오가 되자’는 목표로 3~5분 분량의 짧은 영상을 페이스북 등에 올리며 기틀을 다졌다. 현재는 약 50여 개의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확실히 시대는 바뀌었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에서 호응을 얻었을 때만 해도 유튜브는 그들만의 세계였다. 지금은 어떤가. 나이와 성별, 학력, 사회·경제적 배경을 불문하고 누구나 1인 방송국을 만들 수 있다. 최근 유튜브 채널 ‘보람튜브’를 운영하는 가족이 서울 청담동 건물을 95억원에 샀다는 사실이 화제를 모았다. 여섯 살짜리 아이가 강남의 건물주가 되고 유튜브 덕분에 칠순이 넘어 인생 2막을 시작하는 할머니도 있다. 손녀와 함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코리아 그랜드마(Korea Grandma)’의 박막례씨가 그 주인공이다.

때로는 서울 변두리의 작은 지하 스튜디오에서 월드 스타가 탄생하기도 한다. 리아 킴이 그런 경우다. 최근 에세이집 ‘나의 까만 단발머리’를 출간한 안무가 리아 킴은 세계적인 유튜브 스타다. 가수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 ‘가시나’, 아이돌 트와이스의 ‘TT’ 안무를 탄생시킨 그의 인기는 K팝(K-pop) 스타 못지않다. 무명 시절부터 춤 동영상을 꾸준히 제작해 싸이월드와 블로그에 선보인 덕분이다. 리아 킴이 이끄는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1MILLON Dance Studio)’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1700만 명. 세계 최다 구독자를 보유한 댄스 스튜디오답게 다이아몬드 버튼도 받았다. 이는 유튜브가 구독자 1000만 명을 넘긴 유튜버에게 주는 플레이 버튼 모양의 트로피다. 국내에서는 싸이·방탄소년단·빅뱅·블랙핑크 등이 받았다.

유튜브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기존 미디어는 물론 각 분야 전문가들도 유행처럼 채널을 개설하고 있다. 미술계는 어떨까. 구글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온라인에서 구현한다. 구글은 비영리 온라인 전시 플랫폼인 ‘구글 아트 앤드 컬처(Google Arts & Culture)’를 8년 전에 오픈했다. 구글은 80여 개국 1800개 이상의 파트너와 제휴해 7000개의 전시를 온라인으로 선보인다. 360도로 촬영할 수 있는 초고해상도 카메라로 촬영한 작품들은 실제로 전시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구글은 또 ‘아트 앤드 컬처’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다. 이 채널의 구독자 수는 12만 명으로 추상미술의 선구자 칸딘스키와 래퍼 카니예 웨스트의 공통점을 비롯해 미국 뉴욕의 사이보그 예술가 닐 하비슨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룬다.


마르셀 뒤샹의 ‘초상’. 국립현대미술관이 유튜브에 올린 마르셀 뒤샹 회고전 소개 영상은조회 수 22만 회를 기록했다. 사진 이미혜
마르셀 뒤샹의 ‘초상’. 국립현대미술관이 유튜브에 올린 마르셀 뒤샹 회고전 소개 영상은조회 수 22만 회를 기록했다. 사진 이미혜

국내 미술관들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온라인에 마련된 또 하나의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3년부터 유튜브를 시작했고 지난해부터 전시 소개, 작가 인터뷰 등 미술 관련 콘텐츠를 올렸다. 새로운 전시가 시작될 때마다 관람하는 장면을 생중계하기도 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10분 동안 한 작품을 집중적으로 설명하는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 ‘미술관 소장품 강좌’ 시리즈도 만들었다. 남다른 노력 덕분인지 마르셀 뒤샹 회고전을 소개하는 15초짜리 티저 영상의 조회 수는 22만 회를 기록했다. 인기를 모았던 서울시립미술관의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 티저 영상의 조회 수가 2만 회에도 못 미쳤던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기록이다.

대림미술관은 유튜브 채널에 감각적인 전시 소개 영상을 선보인다. 대림미술관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영상의 질에 비해 많은 편이 아니다. 대신 유명인들이 대림미술관 전시를 관람한 후기를 자신의 유튜브에 올리는 경우가 많다.

미술 관련 유튜브 중에선 가수 솔비의 ‘솔비 타임즈’ 구독자가 국립현대미술관, 대림미술관보다 많다. 화가로 활동 중인 솔비는 본인의 미술 작업이나 전시 영상을 올린다. 그 밖에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미디어 스타트업 ‘널위한문화예술’과 갤러리스트 캘리의 ‘캘리온레드바이브’도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올린다. 그러나 아직도 미술 관련 유튜브 영상 중 조회 수가 제일 높은 건 진중권이 출연한 수년 전의 미학 강의다.

그렇다고 미술 관련 콘텐츠가 다른 장르보다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 앞서 언급한 구글의 아트 앤드 컬처 외에도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은 수십만 명의 구독자를 이끌고 활동 중이다. 비행기를 타고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이나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을 찾지 않아도 된다. 유튜브만 있으면 서울에서도 세계적인 작가의 전시와 퍼포먼스를 거의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다. 일본 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가 새하얀 방을 알록달록한 점으로 가득 채우는 모습이나 이탈리아의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복원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유튜브 시대’의 큰 즐거움이다. 이제 사람들은 관람하거나 시청하는 대신 구독한다. 단 몇 초라도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콘텐츠가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구독할 준비가 돼 있다.


▒ 이미혜
패션·미술 칼럼니스트, 문화기획자, 보그코리아 컨트리뷰팅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