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 즐기는 요트투어. 사진 이우석
목포에서 즐기는 요트투어. 사진 이우석
목포 ‘모정명가’의 민어회. 사진 이우석
목포 ‘모정명가’의 민어회. 사진 이우석

올해 가을 ‘게미진 맛(깊은 맛을 뜻하는 전라도 방언)’을 원한다면 전라남도 목포로 가야 한다. 식욕의 계절에 딱 맞는 여행지가 바로 목포다. 남해와 서해를 모두 품은 너른 바다 위에는 금싸라기 같은 섬들이 한가득 뿌려졌다. 목포의 상징 유달산 뒤에는 나주평야를 비롯해서 영암, 무안, 해남, 진도까지 풍요로운 들판이 펼쳐진다. 황금 들판과 바다에서 나는 가을 제철 먹거리들이 밥상에 오른다. 가을의 문턱에 꼭 한 번 찾아갈 만한 여행지다.

그럴듯한 풍광은 가끔 우리를 배신한다. 장대비나 폭설, 짙은 안개 등 예상치 못한 날씨가 허탕을 치게 만든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은 늘 굳건하다. 추억에 남을 음식 하나만 건져도 그 여행은 성공적으로 평가받는다. 가족이, 연인이 당신의 선택에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한다.

목포는 예향(藝鄕)이다. 낭만적인 항구도시다. ‘게미진 맛’의 미향(味鄕)이기도 하다. 산지가 가까워 음식이 서울보다 푸짐하고 저렴하기도 하지만, 사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먹는 것에 투자할 줄 아는 미식가들의 고장이다. 덕분에 시내 곳곳에는 훌륭한 맛집이 수두룩하다.

최근 목포시는 ‘맛의 도시’임을 자체 선포하고 전주나 광주, 통영, 부산 등에 앞서 대한민국 대표 미향 자리를 선점했다. 도시의 으뜸 자랑거리로 맛을 꼽는다. 맛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목포 구미(九味)’를 정했다. 시민이 선정한 목포의 아홉 가지 맛이다. 이는 세발낙지, 홍어삼합, 민어회, 꽃게무침, 갈치조림, 병어회, 준치무침, 아귀탕(찜), 우럭간국이다.

상동에 있는 식당 ‘소도’에 갔다. 제철 생선요리를 내세우는 곳인데 요즘에는 덕자를 판다. 여름이 제철인 덕자는 병어와 닮았지만 지느러미 생김새가 다르고 크기도 훨씬 크다. 2~3㎏ 이상 나간다. 기름 많은 뱃살 부위는 회로 썰고, 등살은 칼칼하게 찜으로 낸다.

병어나 덕자나 비린내가 없고 살이 부드럽다. 덕자는 병어보다 커 씹는 맛이 차지고 고소하다. 목포식으로 먹자면 깻잎에 밥을 싸고 회를 한점 올려 마늘·고추·된장과 함께 먹는다. 덕자찜은 냄비에 등살을 올린 후 고구마순과 무, 감자를 넣고 칼칼한 양념에 보글보글 지져낸다. 하도 커서 냄비 밖으로 꼬리가 삐져나온다. 회든 찜이든 덕자란 녀석은 분명 밥도둑이다.

한정식집 ‘모정명가’에서도 다양한 제철 생선을 맛볼 수 있다. 특히 민어가 유명하다. 제철 민어를 맛봐야 비로소 가을을 맞이할 수 있다. 지우개만큼 두툼히 썰어낸 민어회가 수줍은 연분홍으로 차곡차곡 접시에 누워있다. 등푸른 생선에 비해 담백하지만 입에 한 보따리 넣고 씹을수록 감칠맛이 난다. 이게 바로 ‘게미진 맛’이다. 목포에서는 커다란 민어를 숙성시켜서 먹는다. 회를 뜨고 전을 부친다. 주안상을 차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마지막으로 탕으로 보글보글 끓여 밥을 마는데 옆에서 구수한 사투리가 들린다. “민어란 놈은 껍딱서부터 부레꺼정 버릴 거시 하나도 읎지라우.”

목포의 식문화는 손님 위주다. 대부분 편히 상을 받아들 수 있다. 김치도 찢어주고 굴비도 발라준다. 삼겹살도 직접 굽고 잘라야 하는 서울과는 다르다. 꽃게무침이 그렇다. 까기 귀찮은 생꽃게살을 죄다 발라 사발에 담아놓는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맛볼 수 있다. ‘장터본가’는 생꽃게살을 무쳐 놓은 대접에 밥을 비비는 게살비빔밥으로 유명하다.

일정이 아무리 바빠도 홍어를 뺄 수 없다. 어시장 홍어골목에는 홍어만 전문으로 파는 집들이 수두룩하다. 칠레나 아르헨티나 등 남미에서 수입한 홍어부터 값비싼 흑산도 홍어까지 주문에 맞춰 2~4주씩 삭혀서 판다. 삭힌 홍어는 살이 차지고 특유의 톡 쏘고 쿰쿰한 향이 매력 포인트다. 중독성이 있어 한 번 매료되면 그 맛을 잊기 어렵다. 잔칫상에 빠질 수 없는 메뉴라서 대부분의 목포 시내 한정식집에서 홍어를 낸다. ‘덕인집’이 잘한다고 소문났다.

계절과 상관없이 인기를 끄는 낙지지만 사실 낙지는 가을이 다가올수록 깊은 맛을 낸다. 낙지 역시 목포식으로 먹자면 탕탕이가 해답이다. 식칼로 탕탕 도마를 두드려 ‘조사버린(잘게 다진다는 뜻의 전라도 방언)’다고 해서 이름이 탕탕이다. 최근에는 한우 육회와 함께 즐긴다. 낙지를 즉석에서 다져 육회와 함께 놓으면, 낙지가 스멀스멀 알아서 비비니 딱히 버무리지 않아도 된다.

덕자가 서해 임자도 부근 명물이라면 졸복은 남해 생선이다. 여수 통영에서 즐겨 먹는다. 목포의 강한 흡인력이 졸복도 빨아들였다. 국제여객터미널 부근 ‘조선쫄복탕’은 지역 술꾼들의 든든한 후원자다. 전날 술자리가 뜨거울수록 아침 해장 졸복탕은 절실하다. 그래서 아침마다 문을 연다. 이른 시간에도 어죽처럼 졸복을 푹 고아 갖은 채소를 넣고 팔팔 끓인다. 국물이 구수하고 시원하다. 뜨겁고 걸쭉한 국물이지만 후룩 마시면 가슴이 탁 트이며 숙취가 단번에 날아간다. 건더기는 국물과 함께 마실 수 있다. 목포식으로 먹자면 식초를 조금 넣으면 된다. 졸복의 크기는 조금 큰 금붕어만 하지만, 복이라서 독도 들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닌 탓에 이 집 졸복탕의 맛이 더욱 빛난다.


목포의 명물 한우낙지탕탕이. 사진 이우석
목포의 명물 한우낙지탕탕이. 사진 이우석
목포 ‘하당먹거리’의 전복. 사진 이우석
목포 ‘하당먹거리’의 전복. 사진 이우석

문화유산 잘 보존된 박물관 도시

목포에는 우럭간국과 홍어애탕도 있어 사실 해장 걱정은 필요 없다. 꾸덕꾸덕 말린 우럭을 시원하게 끓여낸 우럭간국과 시원하고 구수한 홍어애탕은 목포 별미 중 별미다. 목포에 맛있는 식당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올해 목포시가 발행한 ‘으뜸맛집 100선’ 책을 참고할 만하다. 목포시내 4000여 개 음식점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 최종 100곳(최고맛집 11곳 등)을 선정했다.

뱃가죽이 늘어져 살을 당기니 눈이 크게 떠진다. 목포는 한국 근대사의 중심이다. 도시 자체가 박물관처럼 근대문화유산이 잘 보존됐다. 국도 1, 2호선의 시발점이 목포다. 아름다운 바다와 산, 그 안에 사는 이들의 여유로운 성격으로 국제슬로시티로도 지정됐다. 바다에서 요트를 즐기고, 올해 9월 새로 개통하는 해상케이블카를 타고 유달산에 올라 멀리 태평양을 바라볼 수 있다. 작은 항구도시 중앙에 치솟은 유달산은 해발고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근육질 암봉과 강한 기세로 시민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오고 있다. 유달산 아래로 이어진 삼학도 부근에는 자연사, 해양유물 등 다양한 테마 박물관이 있다.

tvN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촬영 장소인 목포근대역사관(사적 제289호)에는 일제강점기 목포항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당시 생활상과 변천사를 영상물 등으로 만날 수 있다. 인근 구도심에는 여전히 일본식 가옥이 많이 남아있다. 카페나 빵집 등으로 활용되고 있어 관광객이 쉬어가기 좋다. 주섬주섬 간식거리를 챙겨 들고 거닐면 바로 시간여행이 가능하다.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전 여행기자협회 회장, 16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

이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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