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식당
영업시간 11:00~20:30(일요일 휴무)
대표 메뉴 고기쌈밥

옥경이네 건생선
영업시간 13:00~23:00(첫째, 셋째 월요일 휴무)
대표 메뉴 반건조 갑오징어 구이, 민어찜

재구네 닭발
영업시간 00:00~24:00(휴무 없음)
대표 메뉴 닭발, 돼지갈비


가을이 기색한다. 푸른 하늘이 열린다. 여름의 그림자가 흘러간다. 더위에 굴복했던 시름을 다가오는 바람에 띄운다. 연필이 있으면 좋겠다. 지우개가 있으면 좋겠다. 간명했던 계절이 지났다. 마치 은밀한 명령어가 스미듯, 어느새 여름은 뜨거웠던 그날들의 그물을 걷는다. 냉국수로 씻을 더위는 사라졌지만, 계절이 담긴 푸른 채소 밥상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늘 고프다. 신당역을 나서 퇴계로 중앙시장으로 간다.


1│한나식당

한나식당은 10년 넘게 푸성귀 한 바구니에 갖가지 나물 반찬, 구수한 청국장 한 뚝배기와 보리밥 한 사발을 한 상 가득 내어준다. 2000년대 웰빙 바람이 불던 그때, 닭과 돼지 내장을 팔던 중앙시장에도 보리밥집이 하나둘 생겼다. 이 집도 그중 하나다. 하고 많은 쌈밥집 중에 이곳을 꼽는 이유는 이렇다. 앉자마자 양은 주전자에 숭늉을 낸다. 메뉴는 망설일 것 없이 고기쌈밥이다. 밥은 쌀과 보리 중에서 고르면 된다. 망설일 것 없이 보리밥이다.

곧이어 상이 차려진다. 보리밥 한 사발과 제육볶음 그리고 도라지, 고사리, 무생채, 취나물 등 여섯 가지 비빔 나물을 비롯해 열 가지가 넘는 반찬이 깔린다. 당귀, 케일, 다시마, 양배추 등 여덟 가지 쌈 한 바구니가 풍성하게 펼쳐진다. 감동할 대목은 더 있다. 개인마다 청국장 뚝배기가 놓인다는 것이다. 된장찌개 한 뚝배기를 여럿이서 나눠 먹는 게 아니라, 청국장 한 뚝배기를 내가 다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보리밥 한 사발에 비빔 나물을 한데 쏟아 넣고, 고추장과 청국장을 적당히 넣고 참기름을 빙 둘러 썩썩 비빈다. 그리고 갖가지 쌈에 비빔밥과 고기, 마늘 한 쪽을 얹어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 보리 낱알이 씹히며 채소가 수분을 내뿜는다. 가득 메워진 두 뺨이 줄어들면 뜨끈한 청국장을 한 숟갈 푹 퍼 입에 담는다. 어느새 찬이고 쌈이고 장이고 모두 비웠다. 물론 청국장도 말끔히 다 먹었다. 뚝배기가 식기도 전에.


옥경이네 건생선의 반건조 갑오징어 구이. 사진 김하늘
옥경이네 건생선의 반건조 갑오징어 구이. 사진 김하늘

2│옥경이네 건생선

바람을 맞았다. 바닷바람을 맞았다. 그것도 목포 바닷바람을 맞았다. 옥경이네 건생선 얘기다. 목포에 있는 시가와 친가에서 직접 생선을 잡아 일일이 해풍에 말린다. 장사가 잘돼 온 가족이 조업에 달려들었다. 광어와 우럭은 말할 것도 없고 민어와 갑오징어 등 서울에서 귀한 생물들을 다 잡아 올려 보낸다. 바닷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주인장은 허구한날 먹었던 것이 반건 생선이다. 친구의 제안으로 장삿거리를 찾다가, 고민할 것도 없이 반건조 생선 전문점을 열었다.

옥경이네 건생선은 운영 5년 차다. 장사 경력으로 치면 시장 안에서는 신참 축에 끼지만, 시장 안에서 유일하게 매일같이 줄을 세운다. 가게 안은 볼 빨간 사회 초년생부터 머리 희끗희끗한 중년 부부까지, 손님 연령대가 다양하다. 이따금씩 방송에 등장해서 그렇다.

하지만 뜨내기는 없다. 이곳에서 한 병 마신 사람은 있어도 한 병만 마신 사람은 없으며, 한 번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 밥도둑이자 술도둑이다. 정확히는 물밥(물에 만 밥)도둑이며 ‘소맥’도둑이다. 기본 찬으로 나물, 장아찌, 콩나물국 등이 깔린다. 먹는 것마다 명쾌한 ‘딱간’이며 국은 계절마다 바뀐다.

봄에는 쑥과 냉이된장국, 여름에는 냉콩나물국, 가을과 겨울에는 시금치와 생배추 된장국을 낸다. 메뉴는 반건 생선찜·구이·조림·탕이다. 생선 종류는 민어·병어·서대 등으로 다양하다. 비늘 달린 생선만 있는 건 아니다.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것은 반건조 갑오징어 구이다.

오징어가 오징어지, 별거 있나 싶다면 당장 중앙시장으로 향하라. 한 달에 1000마리 정도 팔리는 갑오징어는 이 집의 스테디셀러다. 호프 한 잔과 함께 씹어댔던 말라비틀어진 오징어와 확연히 다르다. 손가락 너비로 잘라 면면이 구운 반건조 갑오징어는 겉은 불에 닿아 꾸덕꾸덕하지만 그 안은 탱탱하다. 불향이 나는 오징어를 입에 넣고, 치아 끝으로 자르면 촉촉한 수분이 혓바닥으로 새어 나온다.

그 육즙에 정신이 번쩍 뜨이고 턱관절이 가열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갑오징어의 인기 비결은 소스에 있다. 간장과 마요네즈 조합에 깨소금과 고추 다진 것이 가득 올라간다. 여기에 감칠맛을 곱절로 배가시키는 ‘마약 소스’를 섞는데, 감칠맛이 혀를 척 감고 떨어지지 않는다.

민어찜을 시켰다. 찜기에 20분가량 찐 후 쪽파와 홍고추가 얹혔다. 속살은 볕에 태닝이라도 한 듯 구릿빛이 감돈다. 그 옆에는 미나리와 양배추가 한데 버무려져 나온다. 응축된 바다와 바람과 태양의 맛이 입맛을 끌어당기고 ‘소맥’을 끌어당긴다. 미나리 무침은 시큼하지 않으면서도 생선의 맛과 향을 느끼는 데 훼방 놓지 않는다. 그저 잘 어우러질 뿐이다. 공깃밥을 시켜 찬물을 말아 민어 살점을 얹어 먹는다. 시장통에서 느끼는 호사다. 이 가게는 곧 이전을 앞두고 있다. 기존 위치에서 열 발자국 거리다. 이전 후 이제껏 내지 못한 음식들을 낸다고 한다.


재구네 닭발의 매운 닭발. 사진 김하늘
재구네 닭발의 매운 닭발. 사진 김하늘

3│재구네 닭발

중앙시장을 나와 신당역을 가로질러 길을 건너면 또 하나의 먹자골목이 나온다. 가게 몇 칸을 얻고 또 얻으며 확장했다. 칸칸이 사람들로 꽉 찬 것도 모자라 길거리에 테이블을 깔고 노상에서 먹는 사람도 많다. 가을밤은 바람도 맛있으니, 그 맛을 안다면 노상에 자리 잡아야 한다. 시뻘건 닭발도 닭발이지만, 숯에 구워 접시에 내주는 돼지갈비도 좋다. 간장양념이 불에 그을려 단내를 풍기는 고기 한 점을 먹고 ‘소맥’을 한 잔 들이켠다. 수북이 쌓인 갈비가 줄어들면 3000원짜리 라면 한 그릇을 시킨다.

이 소리는 바람에 머리칼이 날리는 소리인가, 후루룩 면치기 하는 소리인가. 연거푸 잔을 비울수록 나는 무연히 사라지는 리듬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연필이 필요하다, 한 병 더, 지우개가 필요하다. 이미 필름은 끊겼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라이스앤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