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어스 노이브로너가 개발한 비둘기 사진법으로 찍은 사진 묶음인 ‘비둘기 사진가’. 독일 약제상이었던 노이브로너는 1907년 타이머 기능이 내장된 소형 사진기를 비둘기에게 달아 사진을 찍었다. 사진 김진영
율리어스 노이브로너가 개발한 비둘기 사진법으로 찍은 사진 묶음인 ‘비둘기 사진가’. 독일 약제상이었던 노이브로너는 1907년 타이머 기능이 내장된 소형 사진기를 비둘기에게 달아 사진을 찍었다. 사진 김진영

항공 사진 혹은 공중 사진은 비행기를 비롯해 공중을 나는 물체를 통해 찍은 사진을 일컫는다. 최초의 항공 사진은 18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프랑스 사진작가 겸 만화가 펠릭스 나다르(Félix Nadar)는 기구를 타고 60m 상공에서 내려다본 프랑스 파리를 찍었다. 1860년에는 미국 사진작가 제임스 월리스 블랙(James Wallace Black)이 열기구를 타고 미국 보스턴 상공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후에 많은 이가 인간이 직접 하늘에 가지 않고도 항공 사진을 찍는 방법을 실험했다. 카메라를 부착한 연을 날리기도 하고, 사람 없이 자동카메라만을 부착한 기구를 띄우기도 했다. 이런 방법은 비행하는 물체와 카메라를 연결해 작동시키는 것이 관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카메라가 날 수 있는 속도와 범위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중 1907년 독일 약제상 율리어스 노이브로너(Julius Neubronner)가 비행하는 물체가 아닌 비행하는 동물, 즉 비둘기와 카메라를 연결하는 것을 생각해냈다. 그가 비둘기 사진을 찍게 된 데에는 재미있는 배경이 있다. 그는 독일 크론베르크에서 약사의 아들로 태어나, 약국을 물려받았다. 약사였던 아버지는 비둘기 다리에 처방전과 처방약을 묶어 지역 의사들과 교신을 해왔던 터라, 훈련된 비둘기들을 가지고 있었다. 아들 노이브로너는 약국과 함께 이 비둘기도 물려받았다.

그는 스트랩을 이용해 비둘기의 몸에 카메라를 부착해서 사진 찍는 방법을 고안했다. 일단 비둘기가 카메라를 달고 날 수 있도록 카메라 부품을 최소화해 무게를 줄였다. 카메라는 미리 정한 간격으로 셔터가 자동으로 눌리도록 했다. 이를 이용해 비둘기가 하늘을 나는 동안 공중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는 비둘기 몸에 소형 카메라를 부착해 사진을 찍는 이 기술로 1908년 특허를 받았다. 비둘기 사진이 과학·군사·보도 등의 영역에서 활용되면서 그는 잠시 경제적 부(富)를 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래된 사진을 들여다볼 때는 그 당시 사람들의 시선에 무엇이 놀랍게 비쳤을지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에는 비행기가 보편적인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둘기가 하늘에서 찍은 사진은 인간의 지각에 놀라움을 선사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사람들은 비둘기가 찍은 사진을 사며 관심을 표했다. 노이브로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나 프랑스 파리의 국제 박람회에서 비둘기가 찍은 사진으로 만든 엽서를 판매했다. 비둘기가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모습을 사람들 앞에 선보이기도 했다.

노이브로너의 고향인 독일 크론베르크에 있는 ‘도시 기록 보관소’와 독일 베를린의 ‘기술박물관’은 비둘기가 찍은 사진 일부를 소장하고 있다. 사진집 ‘비둘기 사진가’는 두 곳에 보관돼 있던 사진 중 일부를 다뤘다. 이탈리아 출판사 로호프가 2017년 출간했고 이듬해 프랑스 아를 국제 사진 축제에서 ‘역사 부문상’을 수상했다.


비둘기가 날면서 찍은 사진. 인간의 의도가 담기지 않아 구도가 어지럽다. 사진 김진영
비둘기가 날면서 찍은 사진. 인간의 의도가 담기지 않아 구도가 어지럽다. 사진 김진영
비둘기 사진에 대한 당시 기사들. 사진 김진영
비둘기 사진에 대한 당시 기사들. 사진 김진영

‘비둘기 사진가(The Pigeon Photogra pher)’는 3가지 책자의 묶음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책자는 84장의 비둘기 사진들로 구성된 하드커버 사진집이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찍은 ‘버즈 아이 뷰(Birds' Eye View)’, 이른바 조감 사진(鳥瞰寫眞·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사진)이 담겨 있다. 그런데 비둘기가 찍은 조감 사진은 인간이 찍은 조감 사진과 사뭇 달라 보인다. 인간이 찍은 조감 사진에는 흔히 대지에 펼쳐진 스펙터클함이나 아름다움을 균형 잡힌 구도로 담아내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이와 달리 비둘기 사진에는 의도나 생각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비둘기는 날 뿐이고 카메라는 정해진 시점에 작동할 뿐이다. 그 결과 비둘기 사진에는 인간이라면 찍지 않았을 법한 어지럽고 거친 시선이 담겨 있다. 심지어 비둘기의 날개가 함께 찍힌 사진도 있다. 비둘기 사진은 비둘기의 비행 동선에 따라 인간의 의도가 극도로 배제돼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장면을 보여준다.

두 번째 책자는 당시 비둘기 사진에 대한 내용을 다룬 신문과 잡지를 수록한 48쪽짜리 스크랩 북이다. “비둘기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소식을 전하는 기사부터 “비둘기 스파이와 전쟁터에서 그의 사진”이라는 제목과 함께 소개된 ‘비둘기 사진가’ 소개 기사가 담겨 있다. 당시 언론은 비둘기 사진기의 설계 도면이나 외관 등 기술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한다. 또한 당시 사람들이 비둘기 사진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세 번째 책자는 ‘비둘기 사진가’를 기획한 스페인 사진작가 호안 폰트쿠베르타(Joan Fontcuberta)의 32쪽 분량의 에세이다. 에세이의 제목은 ‘드론화된 새, 새 같아진 드론’. 그는 20세기에 항공 사진이 미친 영향을 서술하면서 “노이브로너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독창성이 인간의 지각에 멈출 수 없는 드론화(dronification)를 촉발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지 말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드론화’란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뜻한다. 인간은 카메라를 통해 육안으로 쉽게 볼 수 없던 것을 끊임없이 ‘볼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자 했고, 이 욕망은 사진의 역사를 이끌어 온 원동력이기도 하다. 비둘기 사진 역시 그런 욕망과 노이브로너의 독창성이 만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노이브로너는 비둘기 사진으로 특허도 받고 박람회에서 비둘기 사진술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비둘기 사진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비둘기 사진 자체의 한계 때문이다. 비둘기는 연이나 기구보다 먼 곳을 빠르게 갈 수 있지만, 사람의 의도가 담긴 사진을 찍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군사 정찰용 등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그러나 비둘기는 사람이 원하는 지점을 찍지 않거나 경로를 이탈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행기가 발명된 것도 비둘기 사진의 인기를 낮춘 원인 중 하나다. 노이브로너가 비둘기 사진으로 특허를 받은 지 1년 뒤인 1909년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 회사를 설립했다. 여기다 1914년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과 함께 비행기 관련 기술은 놀랍게 발전했다. 이후 비둘기 대신 인간이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직접 사진을 찍으며 보다 쓸모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런데도 ‘비둘기 사진가’는 항공 사진 역사의 일부를 차지한 비둘기 사진을 의미 있게 조망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이브로너는 새를 이용해 조감 사진을 구현해 낸 최초의 인물로 평가받을 만하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