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가을 조수용은 말했다. 기술의 힘으로, 리얼 월드의 삶을 건강하게 바꿀 수 있다고.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카카오 공동대표 2년 차를 맞은 조수용은 그가 말했던 당시의 ‘밑그림’을 착실하게 실현하고 있다. 사진 남강호 기자
2016년 가을 조수용은 말했다. 기술의 힘으로, 리얼 월드의 삶을 건강하게 바꿀 수 있다고.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카카오 공동대표 2년 차를 맞은 조수용은 그가 말했던 당시의 ‘밑그림’을 착실하게 실현하고 있다. 사진 남강호 기자

조수용을 처음 만난 건 2016년 가을, 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카카오로 간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였다. 당시 나는 호텔, 잡지, 식당, 가방, 부동산 개발 등 손을 대는 것마다 히트시키는 그의 감각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애초에 크리에이티브 집단 JOH의 대표로 조수용을 조명하고자 했으나, 시기상 카카오를 향한 그의 계획과 그림까지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2003년부터 창립 멤버로 네이버 최연소 임원이었던 그는 사옥을 짓고 2010년 한창 잘나갈 때 나왔다. 이후 지독하게 아날로그적인 자기 사업에 집중했다. 광고 없는 브랜드 잡지 ‘매거진B’나 영종도의 네스트호텔 등은 그가 네이버 시절에 만든 초록 검색창이나 사옥 그린팩토리만큼이나 ‘조수용’이라는 이름에 가치를 더했다. 왜 조수용이 손을 대면, 온라인 세상에도 오프라인 세상에도 새 길이 생기는 걸까.

아날로그 대륙의 최고 시민권자이자 동시에 디지털 신대륙의 권력자인 조수용. 양 대륙에 다리를 걸치고도 버거운 기색이 전혀 없는 그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우리는 몇 세기 만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놀라운 혁신과 기회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기술의 힘으로 리얼 월드의 삶을 건강하게 바꿀 수 있다고.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카카오 공동대표 2년 차를 맞은 조수용은 그가 말했던 당시의 ‘밑그림’을 착실하게 실현하고 있었다. 신대륙을 정비하듯 플랫폼과 콘텐츠 투 트랙으로 디지털시티의 교통정리를 끝냈고, 온라인의 끝에 맞닿은 실제 세상과의 협업도 나날이 늘고 있다. 두 세계의 끝을 경험한 조수용의 삶이 비로소 화사하게 정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조수용을 만났다. 명상과 요가로 단련된 디지털밸리의 리더는 외모도 말투도 군더더기 없이 말끔했다. 엘리베이터도 직원들과 함께 한 줄로 서서 탄다.


조 대표는 “어머니의 겸손이 내 자아를 만들어줬다”고 했다. 사진 남강호 기자
조 대표는 “어머니의 겸손이 내 자아를 만들어줬다”고 했다. 사진 남강호 기자

최고경영자로 주로 무슨 일을 하나?
“이야기를 한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나?
“경영이라는 건 여럿이 같은 일을 이뤄가는 거다. 공감이 가장 중요하다. 동료, 파트너들에게 ‘이 일이 맞다’라고 느끼도록 서로를 설득하는 일이다. 어떤 상황을 나와 비슷하게 느끼도록, 시야의 각도가 비슷해지도록…, 자발적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정말 많은 대화를 한다.”

‘신뢰·충돌·헌신’이라는 카카오의 사훈이 참 좋더라. 신뢰에 기반해 충분히 논쟁하고 부딪히며 나온 결론에 대해 모두가 한 방향으로 헌신하자는 뜻이라고.
“사훈이 아니라 핵심 가치다. 김범수 의장이 가장 경계하는 게 자율성을 해치는 거다. 카카오톡 개편도 다 알아서 하라고 맡겨두는데, 문화가 경직되는 조짐이 보이면 바로 뭐라고 한다. 자율성이 없으면 카카오의 자유분방한 문화를 지킬 수 없다.”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책을 쓴 대니얼 코일을 인터뷰한 적 있다. 그가 말한 구글과 픽사의 기업 문화가 연상됐다. 창의성은 어떤 말이든 나눌 수 있는 안전한 분위기에서 나온다는 거다.
“동의한다. 물론 통제가 안 되고 제멋대로인 사람도 있다. 어찌 보면 회사가 수직계통이 확실해야 빨리 전진할 수 있는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충분히 대화를 나눈 후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헌신도가 높아진다. 100% 동의가 안 돼도 미련이 안 남는다.”

직원들이 카카오를 안전하고 계층이 없다고 느낄 거라고 확신하나?
“나는 ‘좋은 친구들’이 안전하고 계층이 없다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 그걸 전체 직원으로 확장하진 않는다. 우리가 고마워하는 친구들이 우선이다. 조직에는 좋은 정책을 악용하는 골칫덩이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선량하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기준으로 정책을 편다. 스스로 룰을 정하는 유연 근무제도 그렇게 나왔다.”

카카오 직원은 근무 시간표를 직접 짠다.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 사이, 한 달 동안 160시간만 일하면 된다. 오늘 12시간 근무하고, 내일 1시간만 일해도 된다. 출퇴근 시간도 따로 없다. 개인의 자율을 극대화한 시스템이다. 만약 고의로 자율 시스템을 악용하면? 해고에 가까운 중징계가 기다린다.

선량한 직원과 골칫덩이 직원을 어떻게 구분하나?
“딱 보면 안다(웃음). 회사의 오너가 누구를 CEO로 선임하는가가 그 기업의 컬처잖나. 그 컬처가 팀장과 리더를 선임하는 방식으로 내려온다. 능력, 열정,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꼼꼼하게 평가하는 시스템은 설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직감적으로 안다. 사람은 비슷한 사람을 알아보거든. 그래서 누가 승진하고 누가 회사를 떠나는가가 기업 문화의 전부다.”

공동대표인 조수용과 여민수는 어떤 성향의 사람들인가?
“의외로 인간적이다. 숫자를 쫓지만 숫자보다 의리나 우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너무 진지하기보다는 재밌는 걸 좋아하고 일에 너무 목매달지도 않는다. 가장 비슷한 건 사심이 없다는 거다.”

사심이 없다?
“의사 결정 상황에서 개인의 욕망을 앞세우지 않는다. 사심을 빼면 의견을 내는 데 자유롭다. 계열사가 많은 카카오식 경영에서 어느 한 회사가 ‘나의 이익’만 추구하려는 순간, 공동체엔 균열이 일어난다. 이때 누군가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해 관계의 수식에서 가장 먼저 ‘나를 빼면’ 사안은 심플해진다.”

당신이 생각하는 카카오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나는 카카오라는 정체성을 원래 있던 사업에서 얼마나 혁신이 일어났는가로 판단한다. 은행이나 택시 호출은 원래 있었던 거지만 그걸 어떻게 바꿨는지, 거기에 혁신의 유전자가 있는지 없는지로 카카오라는 이름을 붙인다.”

비단 은행이나 택시 호출뿐 아니라 사이버 세계에 길든 우리가 IT 경험으로 부동산, 제조업 등 이전 세대의 하드웨어 사업을 재해석하면서 폐쇄적인 사업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당신은 이런 역동적인 시대의 최전선을 살고 있다.
“행운이다. 역사상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기회라고 생각한다. 카카오는 상속으로 넘어온 대기업이 아니잖나. 다들 젊고 혁신을 이룰 수 있을 만큼 지분구조도 탄탄하다. 시장 기반은 메신저지만 자본과 사람과 전 국민의 삶에 다가갈 힘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뭘 하든 제대로 하자는 사명이 곧 정체성이 되는 거다.”

크고 작은 인수·합병도 많다. 기준이 있나?
“굵직한 건 오래전 ‘다음’, 최근 ‘멜론’ 정도다. 인수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회사 안에서 에너지가 큰 기업을 스핀 오프해서 키운 후 외부 투자를 유치하는 방식이다.”

큰 회사를 운영하면서 바뀐 생각이 있나?
“더 철이 든 것 같다. 한때 무서울 것 없이 펄떡펄떡 뛰던 때가 있었다. ‘왜 사람들이 이걸 안 하지?’ 의아해하면서. 에너지가 엄청났고, 거침없었고, 설치고 다녔고, 욕도 먹었다. 그래서 지금 나 같은 친구를 만나는 데 시간을 쏟는다. 그런데 또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두고 선택하라면 지금의 내가 좋다.”

당신의 힘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엔진은 무엇인가?
“내가 인정하는 사람이 나를 믿어줄 때, 계산이 없어진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불필요하게 머리 쓰지 않고, 오직 맞는 것만 생각한다. 네이버 시절엔 제일 중요한 사람이 이해진 의장이었다. 당시에도 디자인하던 미술 전공자에게 마케팅 전략 임원을 맡기는 건 파격이었다. 그런데 이해진 의장이 믿어준 거다. 그때 썼던 순수한 힘의 느낌이 있다. 그 힘의 여운으로 나와서 내 사업을 했다. JOH를 경영할 때도 내가 인정하는 동료에게 인정받는 것만큼 큰 기쁨이 없었다. 광고 없는 브랜드 잡지 ‘매거진B’도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동료가 ‘최고다!’ 해주면 그게 최고의 보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젊은이들에게 일을 시작할 때 너무 재지 말고 일단 해보라고 한다. 젊을 때 힘을 못 쓰면 영원히 못 쓴다. 한 번이라도 힘을 썼던 경험이 있으면 또 꿈을 꿀 수 있다.”

과거엔 잘나가는 디자이너, 브랜드 건축가,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핫한 스타 CEO…, 왜 당신이 하면 다 주목받고 잘 풀리는 걸까?
“나는 일할 때 사명감을 가장 앞에 세우는데, 그걸 비즈니스로 잘 풀었던 것 같다. 과거 프리챌에서 일할 때 디자인 파트장이면 그냥 예쁘게 하면 됐다. 그런데 나는 회사가 돈 버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물이 인터넷 홈페이지 최초의 배너 광고였다. 전 세계 어떤 포털에도 그런 광고 형태가 없었다. 중요한 건 매번 그런 파격적인 제안을 조직의 최고경영자가 받아준 거다. ‘오버하지 말라’고 누르지 않고 ‘이 친구가 말한 걸 의사결정에 반영하겠다’는 거다. 생각이 트인 CEO들이 혁신을 만든다. 네이버 초록 검색창이나 네스트호텔, D타워 설계도 다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는 유년기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성장기 내내 가난했다. 결핍이 낳은 건 우울이 아닌 자율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1년에 딱 한 번 옷을 사주셨다. 시험 보기 전날, 잘 보라고. 어머니는 모든 결정 권한을 어린 조수용에게 일임했다. 소년은 시장을 샅샅이 돌며 모든 제품을 다 비교한 후, 마지막 순간에 다 빼고 한 벌을 골랐다. 어머니는 딱 한 마디만 하셨다. “그 옷의 어떤 점이 제일 좋으니? 후회하지 않겠니?”

그게 큰 훈련이 돼서 당시 영등포 옷 가게 브랜드를 다 외우고 로고까지 그릴 정도였다. 그때부터 브랜드를 보는 직관이 생겼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책 한 권 허투루 사는 법이 없었다. 수많은 물건 중 최고로 좋은 하나를 골라내는 구체적인 안목, 습관의 힘이 자리 잡았다.

생각할수록 어머니께서 남다르신 분이다.
“내 유년 이야기의 중심 테마는 가난이 아니라 어머니다. 어머니의 겸손함이다. 가난해서 1년에 한 벌밖에 새 옷을 못 사면 보통 판단은 어른이 한다. ‘아이는 분명 이상한 걸 고를 테니, 부모가 구슬려서 필요한 걸 사줘야지.’ 그런데 어머니는 정반대의 생각을 하셨다. ‘1년에 한 번이니 네가 원하는 걸 사라.’ 그리고 내가 그런 결정을 하는 데 같이 시간을 쓰고 결과물을 인정해 주셨다. 그 경험이 내게 다른 자아를 만들어줬다. ‘네가 결정해. 네가 했으니 괜찮을 거야.’신뢰받은 경험은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선한 마음, 자기 신뢰, 잘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솟구친다. 말했듯이 나는 인생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 성장했다. 대기업의 리더가 된 지금은, 그 신뢰와 자율의 경험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