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디지털경제부 장관 세드리크 오(Cedric O·한국 이름 오영택·37).마크롱의 IT 브레인이자 최측근이다.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프랑스 디지털경제부 장관 세드리크 오(Cedric O·한국 이름 오영택·37).마크롱의 IT 브레인이자 최측근이다.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잿빛 슈트에 잉크색 슬림 타이를 맨 매력적인 젊은 정치인이 빠른 걸음으로 호텔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이 전도유망한 프랑스 정치가는 아버지의 나라이자, 자신의 애국심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 나라 정부 관료와 기업 리더를 만나기 위해 며칠째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인터뷰 시간에 맞춰 차에서 뛰다시피 왔지만, 숨을 고르는 잠깐 사이에도 다갈색 눈은 흔들림이 없이 맑고 표표했다.

세드리크 오(37) 프랑스 디지털경제부 장관. 올랑드 사회당 정부 시절, 뜻을 함께하는 젊은 마크롱과 함께 새로운 정당(현재 집권당인 앙마르슈)을 만들고, 그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청렴하고 성실한 최측근. 파리의 집무실엔 ‘처음부터 내 곁에 있어 줬고, 앞으로도 계속 나와 함께할 세드리크, 고맙다’라는 마크롱의 자필 메모가 붙어 있다. 그는 대통령의 정보기술(IT) 브레인이자 정권 교체와 세대교체를 동시에 이뤄낸 프랑스의 젊은 피로, 매일 늦게까지 야근하며 프랑스의 점진적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사실, 나는 세드리크 오를 만나기 전에 서울에서 그의 아버지 오영석 박사(카이스트 초빙교수)를 먼저 만났다. 화이트 슈트에 붉은 머플러를 하고 CICI 파티에 등장했던 그의 아버지 오영석은 튀는 비주얼만큼이나 독창적인 삶을 살았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미사일 개발을 연구하던 오 박사는 리옹에서 유학하면서 프랑스 여인과 결혼, 세드리크 오와 델핀 오 남매를 낳았다.

세드리크는 마크롱 내각의 디지털 경제부장관, 여동생 델핀은 프랑스 하원의원을 거쳐 현재 ‘UN 여성포럼’ 사무총장이다. 한국인 2세 남매의 성공은 프랑스 엘리트 공직 사회에서도 유명하다.


이제까지 프랑스 정부에서 장관직을 맡은 한국인 2세들은 입양아 출신이었다. 한국인은 그들의 성공에 열광했지만, 그들에게 프랑스는 관용 있는 열린 사회, 한국은 가난했던 미지의 모국으로 기억되더라. 당신은 어떤가.
“나는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프랑스인이다. 하지만 한국적인 인성을 갖고 있다. 내 아버지는 매우 강인하고 다정했고, 우리 남매는 명절엔 한복을 입었다. 내 아이들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줬다. 장관으로 임명됐을 때, 처음 머릿속에 떠오른 결정은 ‘한국을 방문하자’였다.”

이유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하실 테니까. 단언컨대 아버지가 한국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장관이 되지 못했을 거다. 나는 프랑스에서 한국 사내아이처럼 자랐다. 엄격한 한국식 교육을 받았다. 잘못을 하면 매도 맞았다(웃음). 성실성과 독립성이라는 가정교육의 바탕에, 분석력과 창의력이라는 프랑스식 교육이 결합해서 지금의 내가 됐다. 나는 좀 놀기 좋아하고 게을렀는데, 아버지는 규율을 강조했고 성적에도 신경을 많이 쓰셨다. 더불어 생명 있는 개체를 존중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는 지난 4월 디지털 보좌관에서 디지털경제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일종의 승진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당신의 어떤 점을 높이 평가했나.
“마크롱과 나는 지금의 여당을 함께 창당했다. 우린 서로를 잘 알고 그는 나의 충직성을 높이 평가한다. 자화자찬하는 것 같아 쑥스럽지만, 나는 일관성과 꾸준함이 강점이다. 더불어 디지털 정책은 효율성이 중요한데, 나는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추진력을 갖고 일한다.”

당신과 마크롱의 순수한 연합은 프랑스 정가에서 이미 유명하다. 어떻게 그런 관계로 발전했나.
“우린 2011년 올랑드의 대선 캠프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올랑드 정부의 경제재정부 장관으로, 나는 대통령 보좌관으로 일했다. 나는 2014년에 정계를 떠났다. 현장에서 본 기성 정치인의 모습에 실망했고 염증을 느꼈다. 다시 돌아와 마크롱과 손잡은 것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그의 인간적인 매력 덕분이다. 그랑제콜 파리공립경영대학원(HEC)의 학생회 멤버들과 마크롱 대선팀에서 다시 뭉쳤을 때, 우리 사이엔 무조건 ‘이겨야겠다’는 정치적 야망보다 세상을 향한 꿈이 있었고 즐거움이 넘쳤다. 이미 우리에겐 올랑드 팀원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경험이 있었고, 많은 친구가 정·재계에 진출해 있었다. 또 하나는 마크롱의 중도 정책이 내 지향과 일치했다. 나는 좌파 성향이지만 프랑스의 경제 개혁을 이끌면서, 중도우파와 협력을 희망하게 됐다. 가장 중요한 건 프랑스 정치를 혁신적으로 바꾸자는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했다는 거다.”

마크롱은 좌우를 넘어서는 ‘정치 운동’을 일으키며 중도에 깃발을 꽂았다. 경제는 보수, 평등과 이민과 종교 등 사회 현안에 대해선 진보 성향의 깃발이었다. 기성 정치에 염증을 느끼던 프랑스 국민은 세대교체에 동참했다. 마크롱 정부는 시민사회 활동가와 기업인, 교수, 전직 투우사 등 각계의 젊은 피를 정가에 영입했다. 세드리크는 현재 프랑스 여당 의원은 13명을 빼고 전부 초선의원이라고 했다. 자유·평등·박애의 깃발을 들었던 프랑스 정치는 지금 그 어떤 나라보다 젊고 활기차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오영석 박사(카이스트 초빙교수)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중부 도시 리옹에서 자란 세드리크 오. 경영학 분야 명문 그랑제콜 HEC를 나왔다.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오영석 박사(카이스트 초빙교수)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중부 도시 리옹에서 자란 세드리크 오. 경영학 분야 명문 그랑제콜 HEC를 나왔다.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당신이 생각하기에 현재 프랑스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인가.
“프랑스 사회는 전후 경제 체제를 이어받은 시스템이라 아직 많이 경직돼 있다. 중산층은 격변하는 세계화의 물결을 압력과 고통으로 느끼고 있다. 중산층이 이 변화의 혜택을 빨리 받도록 제도를 세팅하는 게 나의 핵심 과제다.”

디지털경제부 장관으로서 IT,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중소기업 등등 커버해야 할 분야가 많다. 어떤 것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고 있나.
“프랑스가 핵심 기술을 보유한 분야부터 추진한다. 가장 먼저 AI·양자·컴퓨팅·블록체인 기술을 포함해서 주요 핵심 기술에 연구 투자를 한다. 더불어서 스타트업 생태계도 적극적으로 키우고. 일단 그 두 가지를 위해 자금을 조달하고 인재를 모으고 있다. 투자가 관건이다. 프랑스 증시에 관련 시장을 설립하는 게 목표다. 이 레이스에서 뒤처지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중국의 거대 IT 기업에 대적할 기술 챔피언 기업을 만드는 건 ‘기술 주권’과 관련한 문제라고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마크 저커버그, 구글·삼성전자의 최고전략책임자 등을 마크롱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실행에 박차를 가했다. “삼성이 얼마 전 AI 전략혁신센터를 파리에 세웠고, 그 센터를 프랑스인이 이끌고 있다. 삼성은 인재를 키우는 선견지명이 있다.”

사실 한국의 IT 파트너가 프랑스가 될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듣고 보니 당신의 전임자였던 전 디지털경제부장관 플레르 펠르랭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단일 국가는 미·중의 테크 패권을 앞설 수 없지만, 유럽과 아시아의 스타트업 연합군이면 가능하다”고 말이다.
“맞다. 두 나라는 환경은 다르지만, 도전 과제는 같다. 미국과 중국 기업의 압력에서 기술 주권을 찾으려면 유럽과 아시아가 연합해야 한다. 한국은 5세대 이동통신(5G)과 배터리·마이크로프로세서 분야에서 월등하고, 프랑스는 AI와 항공우주·에너지 분야에서 한국이 없는 기술을 갖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서로 협력해서 상호 이익을 취해야 할 때다. 대기업과 벤처 투자자, 스타트업 리더들이 서로 만나야 한다.”

마크롱과 세드리크는 손발이 잘 맞았다. 마크롱은 얼마 전 2020년까지 AI 붐업을 위해 15억유로를 쏟아붓겠다고 공언했다. 현재 파리 13구 센강 근처에 있는 프랑스판 실리콘밸리, ‘스테이션 F(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에 그랑제콜 HEC를 나온 프랑스의 핵심 두뇌들이 모여들고 있다. 네이버 라인은 이 벤처 구역에 조인했고, 프랑스 투자자도 한국의 스타트업에 관심을 보이며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중이다.

당신이 보기에 한국 IT의 가장 큰 힘은 어디에 있나.
“실행력이다. 한국의 경제 생태계를 다 알진 못하지만, 놀라운 장점은 한 번 결정하면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거다. 일상에서, 경제에서, 디지털 분야에서 모두! 특히 한국은 5G 전략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전 세계에서 상용화를 이룬 첫 번째 국가이지 않나. 이번 방한에서 네이버 관계자를 만났는데, 정말 놀라운 기업이더라. 쏘카의 이재웅 대표도 한·불 클럽 만찬에서 만나 지혜를 나눴다.”

프랑스 청년들이 대기업보다 IT 스타트업에 더 열광한다던데, 사실인가.
“나는 프랑스 상경대를 대표하는 좋은 학교(HEC)를 나왔다(웃음). 2006년에만 해도 졸업 후 친구들은 다 골드만삭스나 맥킨지에 취업했다. 지금은 다르다. 그들은 실리콘밸리라는 샘플을 봤고 제2의 마크 저커버그를 꿈꾼다. 통계를 봐도 18~24세 프랑스 젊은이 50%가 대기업 취업보다 창업을 원한다. 그들이야말로 디지털 전쟁 시대 프랑스의 강력한 자원이다.”

프랑스에서 장관으로 산다는 건 당신에게 어떤 즐거움과 괴로움을 주나.
“가장 기쁜 건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 대통령 보좌관으로 일할 땐 어떤 정책을 제안하거나 조언했지만, 지금은 내 결정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어깨를 으쓱하며) 괴로운 건 그 과정이 매우 느리다는 점이다. 행정 결정 과정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느리다(웃음).”

지금까지 어떤 정책을 실행에 옮겼나.
“디지털 보좌관으로 2년 반 동안 고민했던 것들이다. 금융자본에 세제 감세를 결정했다. AI 국가 플랜을 수립했고, 해외의 다양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이민 정책을 완화했다. 하지만 마법 같은 정책은 어디에도 없다. 한 번에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금씩 변화를 일으켜서 그 혜택을 누리게 해야 한다.”

지금 프랑스 경제를 살렸다고 칭찬받는 마크롱 대통령의 핵심 정책 대부분이 오 장관과 합작품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국과 비교하면 프랑스 정치는 정말 젊다! 세드리크, 당신의 인생 플랜은 어디까지 세워져 있나.
“장관직을 완수한 후 더는 정치를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30대 중반이다. 아이들이 어리다. 정치는 나에게 직업이 아니라 지식인으로서 사회 참여다. 프랑스에선 앙가주망(engagement)이라고 한다. 각료 역할이 끝나면 사기업에서 일하면서 미국과 캐나다 등을 돌아볼 거다. 아이들에게 영어도 가르칠 겸 해서(웃음).”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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