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남서부 에어셔 해안에 자리 잡은 프레스트윅 골프클럽은 링크스의 둔덕을 그대로 살린 전형적인 링크스 코스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스코틀랜드 남서부 에어셔 해안에 자리 잡은 프레스트윅 골프클럽은 링크스의 둔덕을 그대로 살린 전형적인 링크스 코스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1860년 창설돼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디 오픈은 프레스트윅 골프클럽(Prestwick Golf Club)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디 오픈이 매년 여러 코스를 순회하며 열리지만 초창기 10여 년 동안은 프레스트윅에서만 개최됐다. 골프클럽에는 ‘디 오픈 발상지(The Birthplace of the Open)’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골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톰 모리스(1821~1908)가 혈기 왕성하고, 아이디어가 번뜩이던 서른 살 때 첫 번째로 만든 코스가 프레스트윅이다. 골프계에선 톰 모리스를 ‘올드 톰’이라 부른다. 그와 이름이 같은 아들은 ‘영 톰’이라 불러 구별한다.

현대 코스 설계에서 큰 획을 그은 피트 다이는 이 코스를 3년간 연구한 끝에 자신의 설계 철학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도 굄목을 벙커 벽 지지대로 사용하는 ‘굄목 벙커’가 모리스의 머리에서 나와 다이의 손길을 거쳐 하나의 양식으로 굳었다. 공략 지점이 보이지 않는 블라인드 홀도 ‘올드 톰’이 설계한 프레스트윅의 대표적 특징이다.

국내의 손꼽히는 코스 설계자 송호씨는 “프레스트윅의 전략적인 설계와 상상력은 지금도 많은 설계가에게 영감을 준다”며 “지금까지 전 세계 약 650개 코스를 돌아봤다. 1900년 이전에 만들어진 코스 중 단연 넘버 원은 프레스트윅이다”라고 말했다.

프레스트윅은 스코틀랜드 최대 도시인 글래스고에서 남쪽으로 약 50㎞ 떨어져 있다. 인구 1만5000명(2012년 기준)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도시다. 고대 영어로 프레스트(prest)는 성직자(priest), 윅(wic)은 농장(farm)을 뜻한다. ‘성직자의 농장’이라는 뜻으로 과거 이곳은 종교인들의 외딴 농장이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로버트 더 브루스(1274~1329) 왕은 한센병을 앓았는데 프레스트윅의 세인트 니니언 교회 우물물로 치료받았다고 한다. 그 우물은 현재도 교회 뒤편에 있다.

프레스트윅 링크스에 코스가 들어선 건 1851년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바닷가 링크스에서 주민들이 골프를 즐겼다고 한다. 초창기 57명의 열성 골퍼들이 ‘레드 라이언 술집(Red Lion Inn)’에서 정기 모임을 했는데 자신들의 골프 클럽을 결성해야겠다고 결정한 후 톰 모리스를 초빙했다.

세인트 앤드루스에서 당대 최고의 프로 골퍼이자 클럽 및 골프공 제작자였던 앨런 로버트슨 밑에서 일하던 올드 톰은 당시 새롭게 붐을 일으키기 시작한 구타페르카 공을 들여오는 문제로 로버트슨과 갈등을 일으키다 해고됐다.

프레스트윅은 초창기에는 12홀이었다. 1882년 18홀로 확장했다. 현재 6개의 그린과 3개 홀이 1851년 초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특이한 건 당시 1번 홀이 578야드였다는 점이다. 역사가들은 파6 홀로 추정하고 있다. 시작하는 홀은 파4로 만드는 게 보통인데 파6으로 만들었다는 건 설계자로서 첫발을 내디딘 톰 모리스의 파격이라 할 수 있다. 현재 1번 홀의 위치는 바뀌었지만 당시 자리에는 ‘1860년 10월 17일 디 오픈 첫 티샷을 날린 곳’이라는 표지가 서 있다. 톰 모리스 주니어(1851~75)는 1870년 디 오픈 때 아버지가 만든 이 홀에서 3타 만에 홀아웃을 하며 골프 역사상 최초로 앨버트로스(한 홀에서 3타를 줄인 것)를 기록했다.


1 프레스트윅은 디 오픈의 고향이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 2 1860년 10월 17일 디 오픈이 시작된 1번 홀.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 3 현재 1번 홀의 전경. 우측은 철길이어서 OB 구역이다. 클럽하우스 바로 앞에 있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 4 1870년까지 디 오픈 우승자에게 주던 챌린지 벨트와 1872년부터 수여하고 있는 클라레 저그.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1 프레스트윅은 디 오픈의 고향이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2 1860년 10월 17일 디 오픈이 시작된 1번 홀.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3 현재 1번 홀의 전경. 우측은 철길이어서 OB 구역이다. 클럽하우스 바로 앞에 있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4 1870년까지 디 오픈 우승자에게 주던 챌린지 벨트와 1872년부터 수여하고 있는 클라레 저그.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디 오픈은 프레스트윅 코스가 만들어지고 9년 후인 1860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스코틀랜드 최고의 골퍼로 여겨졌던 로버트슨이 1859년 죽자 그의 뒤를 이을 ‘챔피언 골퍼’를 뽑기로 하고 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대회를 알리는 초대장이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골프 클럽에 발송됐다. 첫해 8명의 프로 골퍼가 참가했다. 대회는 하루 36홀 일정이었다. 12개 홀을 세 번 돌았다. 우승자에게는 모로코산 가죽과 은으로 장식한 ‘챌린지 벨트’를 수여하기로 했다.

오픈 대회가 된 건 2회부터다. 10명의 프로 골퍼 외에 8명의 아마추어 골퍼가 참가했다. 아마추어 골퍼에게도 문호를 ‘오픈’한 것이다. 초창기 ‘더 챔피언십’으로 불렸던 대회 이름은 이후 ‘디 오픈 챔피언십’ 또는 줄여서 ‘디 오픈’으로 불리게 됐다. 머셀버러에서 온 장타자인 윌리 파크가 174타를 쳐 홈 코스의 톰 모리스를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프레스트윅은 1925년까지 디 오픈 순회 코스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당시 갤러리 통제가 문제가 됐다. 부지가 좁은 탓에 최종일 1만5000명의 관중이 몰리자 코스가 꽉 차면서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됐다. 공이 갤러리 사이로 들어가면서 방향이 바뀌기도 한 것이다. 이로 인해 프레스트윅에서 더는 디 오픈이 열리지 않고 있다. 코스 왼쪽으로는 바다, 오른쪽으로는 철도가 있는 데다 바로 근처에 프레스트윅 공항까지 있어 부지를 더 넓힐 수 없는 탓이다.

현재 철도를 따라 길게 이어진 1번 홀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프닝 홀이다. 조금이라도 슬라이스가 나면 공이 우측 아웃오브바운즈(OB) 구역인 철로로 넘어가는 데다 바로 뒤 클럽하우스에서 지켜보는 따가운 시선도 감내해야 한다. 과거 뚜껑이 없는 화물 객차가 지나갈 때 공을 우측으로 날렸다면 전 세계 최장타를 날렸을지도 모른다.

프레스트윅에는 블라인드 홀이 많다. 그래서 상상력이 필요하다. 5번 홀(파3)에서는 핀 위치에 따라 그린 앞 둔덕의 어느 한 지점을 겨냥해 샷을 날려야 한다. 초창기 2번이었던 홀이 지금은 17번 홀로 사용되고 있다. 두 번째 샷이 짧으면 그린 앞 ‘사하라 벙커’에 빠지게 된다. 가장 유명한 홀은 3번 홀(파5)이다. 길이 500야드에 우측으로 휘어지는 도그레그 홀이다. 티에서 230야드 지점에서 꺾이는데 그곳에 약 50야드 길이의 벙커가 방어막을 두르고 있다. 이 홀과 벙커의 이름이 ‘카디널(cardinal)’이다. 수많은 골퍼가 이 벙커에서 곤욕을 치렀다.

이제 프레스트윅에서 디 오픈이 다시 열리지 않지만 이곳 멤버들은 “여전히 도전 정신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수천 년에 걸쳐 자연이 쌓아 올린 둔덕을 그대로 활용한 디자인은 프레스트윅의 변치 않는 자산이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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