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렐리의 ‘사이버 타이어’는 트레드 안쪽에 100원짜리 동전만 한 센서를 품었는데 이 센서가 노면 정보를 수집해 운전자에게 알려준다. 사진 피렐리
피렐리의 ‘사이버 타이어’는 트레드 안쪽에 100원짜리 동전만 한 센서를 품었는데 이 센서가 노면 정보를 수집해 운전자에게 알려준다. 사진 피렐리

6년 전 이맘때 캐나다 퀘벡주의 한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캐나다에 가기 전만 해도 온 나라가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풍경을 예상했지만 포근한 기온 탓에 아침부터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산길은 완만했고 여유롭게 와인딩을 즐기기에 좋았다. 운전대를 잡은 다른 매체 기자와 옆자리에 앉은 난 이국적인 풍광에 연신 감탄하며 아이팟에 담아간 음악을 크게 틀었다. 노래가 절정에 치달을 즈음 난 감상에 젖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때였다. 차가 미끄러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 미끄러졌다. 정확히 두 바퀴였다. 우리가 탄 차는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후 두 바퀴를 돌고 갓길 옆 고랑으로 고꾸라졌다. 잠깐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안전벨트를 맨 덕에 크게 다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멀쩡했다. 정신이 돌아오니 아찔했다. 가드레일 너머는 천 길 낭떠러지였다. 만약 차가 가드레일을 넘어 아래로 떨어졌다면? 아아, 그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다. 그 후로 난 눈길 공포증이 생겼다.

모든 건 블랙 아이스 때문이었다. 눈이 쌓이지 않아 크게 미끄럽진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게 문제였다. 아침부터 내린 진눈깨비가 도로에 슬러시처럼 착착 쌓였으니 어쩌면 눈보다 더 미끄러웠을지 모른다. 최근 경남 합천의 한 국도에서 자동차 40여 대가 추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경찰은 블랙 아이스를 원인으로 추정했다. 새벽부터 내린 비가 도로에 살얼음을 만들어 사고를 유발했다는 거다. 블랙 아이스는 눈으로 식별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식별했을 땐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일단 차가 미끄러지면 네바퀴굴림이고, 10년 무사고 운전 실력이고 다 소용없다. 그냥 미끄러질 수밖에. 언론에서는 속도를 낮추고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얼마나 속도를 낮춰야 할까? 블랙 아이스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국도를 시속 40㎞ 이하로 달릴 수 있는 느긋한 운전자가 얼마나 될까?

피렐리가 지난해 11월 5G(5세대 이동통신) 네트워크로 도로 표면을 감시하는 똑똑한 타이어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사이버 타이어(Cyber Tyre)’라는 이름이 붙은 이 타이어는 트레드 안쪽에 100원짜리 동전만 한 센서를 품었는데 이 센서가 노면 정보를 수집해 운전자에게 알려준다. 예를 들어 움푹 파인 곳이나 물웅덩이를 발견하면 운전자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식이다. 단순히 경고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자동차 ECU(Electronic Control Unit·자동차의 두뇌)에 이 정보를 보내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노면 접지력에 비해 너무 강하게 밟더라도 구동 바퀴가 헛돌지 않도록 엔진의 힘을 제어하는 트랙션 컨트롤이나 서스펜션(충격흡수장치) 설정 등을 차가 조정하도록 지시한다. ECU는 즉각 트랙션 컨트롤이나 서스펜션 등을 조정해 위험한 상황을 피하도록 조치한다. 이 똑똑한 타이어는 내 차 운전자뿐 아니라 다른 차 운전자에게도 경고를 보낸다. ‘몇백 미터 앞에 돌이 떨어져 있으니 조심하세요’ 같은 경고 말이다. 이런 타이어라면 블랙 아이스도 미리 경고해주지 않을까? 적어도 ‘도로에 살얼음이 얼어 있으니 조심하세요’ 같은 경고는 하겠지?


‘카투엑스(Car2X)’는 차끼리 소통하는 시스템이다. 사진 폴크스바겐
‘카투엑스(Car2X)’는 차끼리 소통하는 시스템이다. 사진 폴크스바겐
국토교통부는 2021년 말까지 차와 소통하는 ‘V2X’를 구축할 계획이다. 사진 폴크스바겐
국토교통부는 2021년 말까지 차와 소통하는 ‘V2X’를 구축할 계획이다. 사진 폴크스바겐

안전 담보돼야 자율주행도

2021년 국내에 출시될 신형 골프는 폴크스바겐 모델 처음으로 ‘카투엑스(Car2X)’ 기능을 챙겼다. 카투엑스는 쉽게 말해 차끼리 소통하는 시스템이다. 신형 골프는 ITS-G5 방식의 카투엑스 시스템을 갖췄는데, 800m 이내에 있는 차에 공사 중이나 교통사고, 물웅덩이 같은 도로 정보를 운전자는 물론 다른 차에 알려줄 수 있다(단, 상대 차도 카투엑스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구급차나 소방차가 오는 것도 미리 전달받을 수 있다. 내 차에 이상이 생기면 이를 다른 차에 알려줄 수도 있다. 만약 경남 합천에서 사고를 당한 차들에 이 시스템이 있었다면 대형 사고까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국내에서 카투엑스는 상용화되지 않았다. 카투엑스는 차와 차, 차와 사람, 차와 다른 사물 간의 통신 시스템을 뜻하는 V2X(Vehicle to Everything)의 한 종류다. 반가운 건 폴크스바겐뿐 아니라 포드, GM, 메르세데스 벤츠 등 여러 자동차 회사가 V2X 시스템을 자신의 자동차에 넣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 중이라는 것이다. 포드는 2022년부터 미국에서 출시되는 새 모델 모두에 V2X 시스템을 기본으로 넣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이 V2X에 큰 관심을 보이는 궁극적인 이유는 자율주행 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것이지만 그 안에는 안전하고 쾌적한 운전 생활이라는 기본이 깔려 있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자율주행 세상도 올 수 없기 때문이다.

블랙 아이스를 없애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도로에 열선을 까는 것이지만 이건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그렇다고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운전자에게 무조건 조심하라고 하는 건 좀 무책임해 보인다. 책임을 운전자에게 떠넘기는 것 같기도 하다. V2X 기술이 블랙 아이스를 경고할 순 있지만 상용화까진 시간이 아직 남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도로 곳곳에 안내판 등을 설치해 운전자에게 지속적으로 상황을 알리는 거다. 국토교통부는 2021년 말까지 전국 고속도로에 V2X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내 차에 V2X가 없다면 소용없는 것 아닐까? 아무 정보도 받을 수 없을 테니까. 아, 1년 더 기다렸다가 골프를 사야 하나?

서인수 모터트렌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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