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 ‘펜디’의 2019년 가을·겨울 패션쇼에서 반반 패션을 입은 모델들이 워킹 중이다. 사진 펜디
명품 브랜드 ‘펜디’의 2019년 가을·겨울 패션쇼에서 반반 패션을 입은 모델들이 워킹 중이다. 사진 펜디

국내 한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MC부터 초대된 게스트까지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출연진이 ‘반반 패션(half and half fashion 또는 50·50 fashion)’을 입고 등장한 적이 있다. 반반 패션은 스웨트셔츠(땀을 발산하기 쉽게 만든 셔츠, 일명 맨투맨 티셔츠), 티셔츠, 재킷 등 상의의 종류는 다르지만 왼쪽과 오른쪽의 패턴, 컬러 또는 소재가 다르게 조합된 형태다. 몇 년 전 해외 컬렉션에서부터 눈에 띄었던 독특한 트렌드가 이젠 국내 트렌드로 정점을 이루고 있는 듯 보인다.

반반 패션은 두 개의 티셔츠를 붙여 놓은 ‘반반 티셔츠’의 스트리트 룩으로 시작됐다. 명품 브랜드의 트렌드를 이끌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럭셔리 스트리트 브랜드 ‘베트멍(Vetements)’ ‘오프화이트(Off-White)’ 등이 두 개의 옷을 붙여놓은 듯한 ‘반반 티셔츠’ ‘반반 스웨트셔츠’와 ‘반반 후디(모자가 달린 상의)’ 등을 선보이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데 뛰어난 젊은 디자이너들로부터 시작된 반반 패션은 곧 명품 브랜드의 하이 패션으로 이어졌다. 프라다, 버버리, 베르사체 등 명품 패션 브랜드는 셔츠, 재킷, 슈트, 트렌치코트도 반반 패션으로 디자인했다. 그중에서도 프라다의 ‘반반 셔츠’는 셀러브리티(유명인)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글로벌 트렌드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60년대 복고풍의 펑퍼짐한 셔츠는 프라다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아이템의 하나다. 여기에 프라다 특유의 그래픽 프린트를 반씩 붙여 베트멍과 같은 스트리트 브랜드와 또 다른 프라다만의 고급스러운 패션 해체주의를 결합한 반반 패션을 완성했다.


반반 패션, 요즘 세대 특성 반영

왜 지금 반반 패션일까? 반반 패션이 어떻게 패션 컬렉션의 쇼 의상이나 셀러브리티 룩으로만 멈추지 않고, 일상생활 룩으로까지 퍼져나갈 수 있었을까?

반반 패션은 ‘슬래시(slash·/) 아이덴티티(identity·정체성)’를 지닌 요즘 세대의 성향을 담고 있다. 슬래시 아이덴티티는 ‘멀티 아이덴티티’의 다른 말이다.

요즘 세대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직업과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콘텐츠 기획자/아티스트/디제이’ ‘프로그래머/1인 크리에이터/스니커즈 컬렉터’ 등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단어 사이사이에 슬래시를 넣어 자신을 소개한다. 전문직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자신의 취미나 부업을 본업 못지않게 여기며 멀티 플레이를 한다.

또한 반반 패션은 다양한 시대와 스타일을 하나로 콜라주(collage·여러 가지 문양을 혼합해 하나의 느낌으로 만드는 것)한 것을 신선하다고 여기는 이 세대의 감성을 대변한다. 프라다의 반반 셔츠는 지난 시즌에 선보인 프린트를 반반 이어 붙여 새로운 시즌의 의상으로 재탄생했다. 버버리도 브랜드의 심볼인 다양한 체크 프린트를 절반씩 섞은 셔츠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체크 하나하나는 대중에게 익숙한 버버리의 체크 프린트일지 몰라도 각각의 체크를 엇갈려 이어 붙여 새로운 체크 셔츠를 탄생시킨 것이다. 특히 반반 패션은 남성 패션에서 시작해 여성 패션에까지 영향을 줬다. 실제로 일반인이나 셀러브리티 사이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반반 패션에 더 열광적이다. 남성 패션은 여성 패션에 비해 화려한 장식이나 드라마틱한 실루엣 변화를 연출하기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반반 패션은 너무 과하지 않은 ‘패션 일탈’이자 ‘유니크 패션’ 트렌드의 하나로 자리 잡으면서 남성에게 더 사랑받고 있다.


한 남성이 프라다의 반반 셔츠를 입고 있다.
한 남성이 프라다의 반반 셔츠를 입고 있다.

세미 포멀 스타일로 확장

2019년 가을·겨울 시즌이 되면서 반반 패션은 스트리트 평상복에서 슈트, 코트 등 포멀이나 세미 포멀 스타일로 확장됐다. 펜디는 블랙과 캐멀의 포멀 재킷을 각각 반씩 이어 붙인 재킷, 가죽 재킷, 아우터 등을 선보였고, 오프화이트는 이중 여밈의 더블 브레스티드(상의 좌우 앞판을 겹쳐 잠그는 여밈 방식) 재킷과 싱글 재킷을 이어 붙인 슈트 등을 디자인했다. 오프화이트 스타일의 대담한 대비는 실제 생활에서 입기 어렵지만, 펜디가 제안한 몇몇 반반 패션은 데일리 룩이나 주말 룩으로 시도해볼 만하다. 특히 블랙과 짙은 초콜릿을 반반 이어 붙인 가죽 재킷, 블랙과 캐멀의 싱글 재킷을 이어 붙인 슈트는 컬러만 다를 뿐 디자인은 클래식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업무를 하는 남성이라면 신선한 세미 정장룩을 연출해줄 것이다.

반반 패션을 가장 즐기기 쉬운 접근법은 캐주얼 룩이다. 서로 다른 컬러나 프린트가 반반씩 매치된 셔츠나 티셔츠, 스웨트셔츠와 후디는 남자들의 늘 똑같은 캐주얼 룩에 신선한 변화를 선사해줄 수 있다. 게다가 반반 패션은 비싼 명품 브랜드 제품을 쇼핑할 필요 없이 리폼해서 입을 수 있어 매력적이다. 버리기는 아깝고 입기는 지겨운 셔츠나 티셔츠가 옷장 속에 잠들어 있다면, 반반 이어 붙여 새로운 패션 아이템으로 부활시킬 수 있다.

사실 반반 패션 트렌드의 수명은 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수많은 트렌드가 그래 왔듯 몇 년간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금세 익숙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냥 지나치기에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트렌드임엔 틀림없다. 재킷이나 아우터 안에 입는 티셔츠만이라도 반반 패션으로 스타일링하면 무미건조한 매일의 패션에 특별한 느낌표를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케이 노트(K_note)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