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옥해장국
메뉴 해장국
주소 서울 용산구 백범로 283
영업 시간 매일 오전 3시~오후 3시 연중 무휴


우리는 일상을 잃었다. 등굣길, 출근길, 일자리가 사라졌다. 고역의 상황을 겪는 기업들의 비명도 들린다. 답답하기만 한 마스크는 어느덧 괴로움의 눈물받이가 된다. 잃어버린 일상을 내던지고 싶다. 미덕처럼 여겨지는 사회적 거리 두기와 고립에서 벗어나고 싶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일으킨 정념의 방역이 필요하다.

난데없이 새벽 달리기를 시작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아무도 없는 마포대교를 달린다. 무엇이든 바짝 조이고 줄여야 하는 때, 새벽 달리기는 돈 한 푼 들지 않고 마스크 따위 필요 없다. 무엇보다 어둑한 잠에서 깨는 하늘의 표정이 불안의 음향을 말끔히 소거한다. 드디어 붉은 아침이 밝았다.

오전 6시. 한 시간을 뛰어 효창공원에 닿았다. 낮고 작고 허름한 가게 앞에 섰다. 이 안에서 조반을 함께하기로 한 이가 날 기다리고 있다. 가게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구수한 ‘소 냄새’가 진동한다. 마치 누런 소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진한 그 향은 새벽부터 내장을 출렁이며 달려온 이의 허기를 단박에 일깨운다.

이곳에서 만남을 청한 그가 어떤 사람이든 무턱대고 합당한 신뢰를 부여하기로 한다. 알루미늄 문을 흔쾌히 열어젖힌다. 몸의 마디마다에 금은보화를 걸고 핑크색 내복을 입은 사장님의 환대를 받는다. 놀란 눈을 껌뻑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청한다. 대중음악 평론가 김 작가다.

김 작가는 홍대 앞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홍대를 졸업하고 홍대를 비롯한 모든 공연장을 일일이 순회하며 뮤지션들과 호흡하는 ‘홍대 특산물’이자 찰지고 박력 있는 필력으로, 그의 글을 실은 매체보다 그러지 않은 곳을 꼽는 게 더 빠를 거라는 ‘글 납품 업자’다.

김 작가의 첫 저서 ‘악행일지’에서 작가 이석원은 그를 이렇게 말한다. “김 작가는 두 가지 면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대한민국 대중음악 평론가다. 첫째는 그의 글에서 드러나는 현장성이다. (중략) 두 번째는 바로 그 현장과 삶이라는 두 가지 원천 속에서 그의 글이 나온다는 점이다.” 또한 작가 허지웅은 그를 이렇게 말한다. “김 작가는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즐겁고 음탕한 사내다.” 그런 그가 여기 있다.

“여기가 바로 제 마지막 청춘을 낭비하던 곳입니다.” 해장국 두 그릇을 시키며 사나이의 심장을 나누는 듯한 말투로 그는 말했다. 그리고 그의 음탕한 작은 입술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10여 년 전, 그가 삼십 대 중반일 때였다. 만화가 김풍, 메가쇼킹 등 밤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리는 이들과 함께 허구한 날 부어라 마셔라 술 범벅이 되곤 했다.

두 손을 두 발로 쓰기 전에 갱생하고자 기어들어 가는 희망의 종착지. 해장의 의지를 불끈 다지며 술은 입에도 대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그 짙고 농후한 소국물을 한술 뜨자마자 ‘크라쓰’에 소주를 따르게 되는 갱생의 묘지. 세수하러 왔다가 때를 밀고 나가는 해장의 습식 사우나. 바로 이곳에서 그들의 마지막 청춘을 격정적으로 낭비했던 것이다.


한성옥해장국의 해장국. 사진 김하늘
한성옥해장국의 해장국. 사진 김하늘
한성옥해장국의 간판. 사진 김하늘
한성옥해장국의 간판. 사진 김하늘

해장국의 성지 용문동

‘해장국의 성지’ 용산구 용문동에는 알아주는 해장국집이 세 군데 있다. 평균 60세가 넘은 세 곳 모두 들어가는 재료는 소고기와 등뼈, 선지, 우거지 등 큰 차이는 없지만, 작은 차이는 있다. 기름지고도 묵직한 한성옥해장국의 해장국은 소주 따위로 무자비하게 할퀸 속을 숙취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구하며, 더욱더 가볍고 보다 시원한 창성옥의 해장국은 달걀프라이와 전략적 양해각서(MOU) 체결로 해장의 성과를 곱절로 끌어낸다. 안타깝지만 용문해장국은 술을 취급하지 않아 아직 가보지 않았음을 고백하며 거듭 반성한다.

“난 아침이 너무 싫었어요.” 그는 숟가락으로 흰쌀밥을 크게 떠 국에 말고 선지를 저벅저벅 자르며 말했다. 이미 커다란 소뼈에 붙은 살코기는 말끔하게 발라 먹은 뒤였다. 한 달에 100장이 넘는 원고를 쓰다 하얗게 밤을 지새우는 건 일상이다. 햇빛이 아닌 달빛으로 광합성을 한다. 어느 날은 모든 당을 끌어 쓰고 허기가 솟구쳐 잠들지 못하면, 새벽 일찍 열 거나 24시간 문을 닫지 않는 국밥집으로 속을 채우러 가곤 한다. 때마다 그곳은 그와 다르게, 하루의 시작을 위한 연료로써 국밥을 삼키는 이들로 점유되곤 했다.

국밥 한 그릇으로 기운을 내어 운전대를 잡는 사람, 국밥 한 그릇으로 기운을 북돋아 벽돌을 지는 사람 등, 김 작가는 아침이라는 장면 속에 역동적인 풍경을 지켜보는 아침의 관찰자였으며, 해가 뜨기 전에 잠들고 달이 중천에 뜨면 활동을 개시하는 아침의 과객이었다.

코로나19는 그의 일상 또한 앗아갔다. 그는 술과 음악에 물든 짙은 밤을 버리고 빛이 등장하는 아침을 그의 일상으로 들였다. 채 다 마르지 않은 그의 머리카락을 보니 아직 그에게 아침은 생경하고 버거운 듯하다. 시계를 곁눈질하며 국밥을 후루룩 삼킨다. 통근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그는 경기도에 있는 물류센터에서 단기 계약직 일을 시작했다. 8시간 내내 박스를 접거나 물건을 골라 담는 일이다. 자연이 없는 그곳엔 시간도 없다. 강연, 심사 등 그의 밥줄이 뚝 끊겨 생계가 위태로워졌기 때문에 작심하고 뛰어들었다. 그는 지금 말한다. “드디어 이제, 이제껏 미뤄왔던 두 번째 책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빠져 시간을 노래로 쟀어요. 초나 분 단위로 쪼갠 것이 아니라, 삶을 노래 한 곡이라는 자의적 단위로 살았던 거죠.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위기를 관통하면서 시간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잖아요. 그걸 음악이 전달해주는 여운의 단위로 펼치고 구기며 제멋대로 살아온 것 같아요. 환상적이었지만 경솔했죠. 하지만 후회하진 않아요.”

그는 새삼 풋풋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그의 주름에 굴절되어 온화한 빛을 띠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10년 전, 그의 청춘시대에 맛본 해장국의 맛과 지금의 맛이 다르다고. 스스로가 달라졌다는 증거라고. 그때는 당장을 즐기기 위해 내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다가오는 빛을 차단하며 살았지만, 지금은 주어진 것들을 즐기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대중음악 평론가 김 작가는 이전과는 또 다른 문장을 써 내려가고 있다. 그는 새로운 일상의 멜로디를 듣고 자신만의 원고지에 그만의 언어로 독백의 평론을 써 내려가고 있다. 끓일수록 점점 더 진해지고 깊어지고 있다. 이게 다 코로나19 덕분이다. 우리는 시간을 벌었다.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어둑한 잠에서 깨는 하늘이 설렌다. 기뻐하는 하늘의 벅찬 사운드를 높일 차례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라이스앤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