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소설 중에서 가장 희극적인 작품을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꼽겠다. 두말할 것도 없다. 무조건 이 책이다. 주인공의 마지막 한마디에 이어지는 진술 내용이 일단 그 증거다. 한번 들어보자. “이래 놓고서도 이 역설가의 ‘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결국 참지를 못해 계속하여 더 써나갔다. 하지만 우리 생각에도 여기서 그만 마쳐도 될 것 같다.” 이 진술자는 주인공의 말을 믿지 않는다. 믿지 않기만 한 게 아니다. 행위가 계속되고 있는데 보란 듯이 서술자가 막을 내려 버리는 상황. 당신은 본 적 있는가? 이건 마치 무대 위에서 배우가 연기를 이어 가고 있는데 연기는 이쯤 봐도 될 것 같다며 연출자가 막을 내려 버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내가 말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문을 닫는다. 그리고 아무도 닫힌 문을 다시 열려고 하지 않거나 문이 닫혔다는 사실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왜일까? 이유는 하나뿐이다. 그의 말은 정말로 더 들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전대미문의 ‘강제 종료 엔딩’에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을까? 그는 대관절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 문학사상 어느 페이지에서도 찾기 힘든 ‘강퇴’의 주인공이 된 걸까.

그는 한마디로 ‘지하 생활자’다. 반사회성 인격 장애와 정신분열 증상을 보이는 인물이다. 요즘은 지하 생활자라고 하면 가장 먼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우리의 지하 생활자는 그렇게 ‘계획이 있는’ 부류가 아니다. 계획이 있다면 순전히 엎어지기 위해 존재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는 죽 끓는 듯한 변덕을 탑재한 사람이니까. 소설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지하’라는 부제가 붙은 1부에서는 마흔 살이 된 지하 생활자가 자신이 왜 여기 지하실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독백 형식으로 서술한다. 그는 자신이 앓고 있는 병증과 함께 당시 유럽 사회를 풍미하고 있던 합리주의 사고, 즉 이성주의를 맹렬하게 비난한다. 하는 말을 듣고 있자면 자폐적인 지식의 느낌 그 자체다.

이어지는 2부의 제목은 ‘진눈깨비에 관하여’다. 여기서 지하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몇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지상에서 주변 사람과 얼마나 어울리지 못했는지, 친구들로부터 (그들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심한 모욕을 받았는지, 어느 창녀와 사랑 앞에서 느낀 수치심은 어떤 것이었는지, 일말의 의미로도 상승하지 않는, 그저 흩날리다 공중에서 사라져 버리는 진눈깨비 같은 이야기들을 마구 풀어놓는다. 반사회성 인격장애와 정신분열 증상을 보이는 지하  생활자라기보다는 차라리 TMI(too much information·너무 과한 정보)를 발사하는 TMT(too much talker·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에 가까워 보인다. 


극좌에서 극우로 전향한 기점이 된 작품

그는 왜 TMI를 남발하는 투 머치 토커가 되었을까.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기점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세계는 극좌에서 극우로 전향한다. 그사이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삶에서 잊을 수 없는, 아니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경험을 한다. 바로 수감 생활이다. 급진적인 좌파 지식인으로서의 활동이 그를 교도소라는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게 했으나 그가 감옥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은 그로 하여금 인간에 대해 연구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전 작품들이 몰입도 있고 잘 쓴 글이라면 유형 생활 이후 그가 써낸 작품은 드디어 철학적 깊이를 가지게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하로부터의 수기’가 지닌 의미는 그의 문학 인생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작중 인물인 ‘지하 인간’은 이후 체호프를 비롯해 많은 작가에 의해 내면이 있는 광인들, 요컨대 자기 파괴적이고 자아 분열적인 ‘작은 인간’의 한 원형이 된다. 이들 작은 인간은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고 자기 판단에 확신이 없으며 세상으로부터 차단당한다. 이제 더는 이렇게 지하에서 더 쓰고 싶지 않다는 진술이 한순간에 거부당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이 투 머치 토커의 변심을 지켜보는 게 재밌다. 우리는 자신이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 결코 재미를 느낄 수 없다. 희극은 모두가 알고 있는 진실을 비틀 때 발생하는 유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이 소설을 가장 희극적인 작품으로 꼽는다는 건, 내가 이 소설에, 소설의 주인공인 지하 인간에게 무던히도 공감한다는 뜻이다. 이성주의와 합리주의에 반기를 드는 그는 인간 관념의 무분별하고 비일관적이며 무규칙적인 특성을 보여 주고 평소 늘 일관성과 합리성을 가지려고 애쓰지만 번번이 좌절하고 마는 내 끝없는 후회들, 그러니까 진눈깨비처럼 별 볼 일 없는 내 특징들을 내가 지닌 열등한 특성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하나의 특성으로 바라보게 된다. 보편에 맞서 개인의 실존의 고독과 고통만을 앞세웠던 카뮈의 실존주의적 반항은 일찍이 도스토옙스키의 지하 인간이 보여 주는 자유로움에 자기 확신을 더한 결과물이 아닐까. 도스토옙스키에게 인간은 결심했으나 지키지 못하고 지키지 못할 결심을 또다시 반복하며 영원히 스스로를 배반하는 존재다. 그러나 그게 뭐 어떤가. 자신을 배반하는 인간이 자신을 확신하는 인간보다 이 세계의 균형과 조화에 더 이로운 존재인 것을.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젊은평론가상


Plus Point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년 10월 30일 모스크바 마린스키 빈민 병원 의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페테르부르크 공병학교를 졸업했지만 문학의 길을 택한 뒤 첫 소설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 톨스토이를 뛰어넘은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당대 러시아 문단의 총아가 됐다. 1849년부터 공상적 사회주의 경향을 띤 페트라셰프스키 모임에 출입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지만 극적인 순간에 사형 집행이 취소돼 유형을 떠나게 된다. 4년간의 감옥 생활과 4년간의 복무 이후 잡지 ‘시대’를 창간함과 동시에 그의 작품 세계에서 전환점이자 이정표가 된 작품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발표했으며 이를 기점으로 후기 대표작들이 이어졌다. 이어 지병인 간질병과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죄와 벌’ ‘백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등 심리적, 철학적, 윤리적, 종교적 문제의식으로 점철된 걸작들을 남겼다. 1881년 1월 28일, 폐동맥 파열로 사망했다. 오늘날 그의 문학은 내면 묘사가 치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