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규칙은 ‘코스는 있는 그대로’ ‘공은 놓인 그대로’ 플레이해야 한다고 분명히 못 박아 놓았다. 이에 따라 플레이어는 공이 지면에 놓인 상태(라이)나 스탠스 구역, 스윙 구역, 플레이 선, 구제구역 등을 개선해선 안 되며 이를 어길 경우 2벌타를 받게 된다. 잘 친 공이 디벗(divot·팬 자국)에 들어가도 그대로 쳐야 한다는 게 비합리적이라는 의견도 많지만, 이는 놓여 있는 공을 그대로 쳐야 한다는 골프의 기본 특성을 잘 반영하는 케이스다.
모래와 이슬, 물 등은 ‘루스 임페디먼트’에 포함 안 돼
하지만 지레짐작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그대로 쳐야 한다고 생각하면 손해를 볼 수 있다. 골프 규칙을 잘 이해하고 적절하게 적용하면 타수를 크게 잃을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루스 임페디먼트(loose impediment)’. 루스 임페디먼트란 “어딘가에 붙어있지 않은 자연물로서 돌멩이, 낙엽, 나뭇가지, 동물의 사체와 배설물, 뭉쳐진 흙덩어리”라고 정의하고 있다. 골프 코스에는 크게 자연물과 인공물이 있는데, 루스 임페디먼트는 자연물 중 어딘가에 붙어있지 않은(loose) 장애물(impediment)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페널티 없이 플레이어는 코스 안팎 어디에서나 루스 임페디먼트를 제거할 수 있다’는 골프 규칙을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가장 잘 활용했던 선수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다.
1999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피닉스오픈 최종 4라운드는 골프룰에 있어서 기억될 만한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이날 우즈는 파5 13번 홀에서 티샷을 당겨 쳤다. 공은 큰 돌덩이를 맞고 뒤에 멈췄다. 우즈는 이 돌이 루스 임페디먼트인지 판단을 요구했고, 경기위원은 “맞다”라고 판정했다. 그러자 우즈는 갤러리의 도움을 받아 돌덩이를 옮긴 뒤 플레이를 속개해 버디를 잡았다.
프로 대회에서 장독만 한 커다란 돌덩이를 루스 임페디먼트가 아니냐며 판정을 요구한 건 우즈가 사실상 처음이었다. 슈퍼스타 특혜 논란이 있긴 했지만, 이는 이후 많은 골퍼가 따라 할 수 있는 ‘판례’가 됐다.
올해 1월 유러피언(EPGA) 투어 사우디 인터내셔널 첫날에도 알바로 키로스(스페인)의 공이 바위 옆에 떨어졌다. 바위는 지면에 단단히 박혀 있지 않았기에 키로스는 자신의 캐디와 다른 선수 캐디와 힘을 합쳐 바위를 치운 후 샷을 했다.
이처럼 평소 골프 룰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 규칙의 도움을 받아 타수를 잃을 상황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의 앞뒤에 방해가 되는 돌멩이나 나뭇가지 등이 있다면 무턱대고 그냥 칠 게 아니라 말끔히 제거한 뒤 샷을 하면 ‘굿 샷’을 날릴 확률이 더 크다.
하지만, 바위를 치울 수 있다고 해서 공 주변의 흩어진(뭉쳐있지 않은) 흙이나 모래를 치우면 라이 개선으로 2벌타를 받는다. 모래와 흩어진 흙, 이슬과 서리, 물 등은 루스 임페디먼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루스 임페디먼트는 페널티 없이 코스 안팎 어디에서나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루스 임페디먼트를 제거하다 공을 움직이면 1벌타를 받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다만 퍼팅 그린에서는 공이 움직였더라도 벌타 없이 원래의 지점에 리플레이스하면 된다.
움직일 수 있는 인공 장애물은 벌타 없이 치울 수 있어
그럼 인공 장애물은 어떻게 처리할까. 움직일 수 있는 인공 장애물로부터 방해를 받는 경우에는 코스 안팎 어디에서든 그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다. 공이 벙커 옆에 있는 고무래에 걸려 정지해 있다면 벌타 없이 고무래를 치우고 칠 수 있다. 고무래를 제거하다 공이 움직이면 페널티 없이 볼을 리플레이스하면 된다. 고무래를 제거하기 전에 공을 먼저 집어 올리면 1벌타를 받으니 주의해야 한다. 고무래를 치워서 공이 움직일지 안 움직일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공을 리플레이스해야 하는지 드롭을 해야 하는지 기준은 공이 지면에 닿아 있는지 여부다. 앞 조에서 흘리고 간 수건 위에 공이 놓여있는 경우에는 지면에 닿아 있는 공이 아니기 때문에 먼저 공을 집어 올려도 페널티가 없다. 그 수건을 제거하고 원래의 공이 있었던 수직 아래 지면을 기준점으로 해서 홀에 가깝지 않게 한 클럽 길이 이내 드롭을 하면 구제가 완료된다.
움직일 수 없는 장애물인 경우에는 그 장애물을 피해 가장 가까운 완전한 구제 지점을 기준점으로 한 클럽 길이 이내 구제를 받을 수 있다. 카트도로와 스프링클러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런 구제 원리는 비정상적인 코스상태라 불리는 동물이 만든 구멍, 수리지, 일시적으로 고인 물, 움직일 수 없는 장애물 모두 동일 방법으로 구제 가능하다.
TV 중계 타워 등 임시 장애물은 플레이선까지 구제
골프 대회 중계방송을 보면 플레이선상에 TV 중계 타워가 걸릴 경우 구제를 받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특정 경기를 위하여 코스나 코스 바로 옆에 쉽게 움직일 수 없도록 고정시켜서 임시로 설치해놓은 이런 추가 구조물을 움직일 수 없는 임시 장애물(Te-mporary Immovable Obstructions)이라고 한다. 그랜드 스탠드나 텐트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움직일 수 없는 임시 장애물들은 물리적인 방해와 시선상의 방해가 있는 경우 로컬룰로 구제를 허용하고 있다. 플레이선까지 구제를 받기 때문에 완전한 구제 지점에서 한 클럽 더 옮긴 곳을 기준점으로 잡는다.
대한골프협회 룰 담당 구민석 과장은 “그린 주변 스프링클러는 움직일 수 없는 장애물이지만 로컬룰에 따라 퍼터로 플레이할 경우 플레이선 구제를 해주는 경우가 많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