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가운데)이 그의 명곡 ‘스릴러(Thriller)’ 뮤직비디오 촬영 중 댄서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IMDB
마이클 잭슨(가운데)이 그의 명곡 ‘스릴러(Thriller)’ 뮤직비디오 촬영 중 댄서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IMDB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자 대중음악의 역사를 통째로 바꾼 ‘스릴러(Thriller)’의 1982년 11월 30일 발매 이후 1년이 지나자 마이클 잭슨은 팝의 왕을 넘어 세계 대중문화의 지배자가 됐다. 앨범은 말 그대로 블록버스터 반열에 오르며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다시피 했고, 그가 착용한 선글라스와 흰 장갑, 어깨 장식은 하나의 기호로 자리 잡았다. 미국, 유럽, 일본뿐 아니라 한국의 어린 학생들마저 문워크를 따라 췄다. 흑인 음악가에 대한 모든 선입견이 박살 났다. 단언컨대 비틀스 이래 가장 강력한 신드롬이었다. 이 신드롬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1983년 11월 30일, 즉 앨범 발매 1년이 되던 날 다시 발매된 싱글 ‘스릴러’와 뮤직비디오였다. 이 앨범은 여전히 빌보드 상위권에 있었고 사실상 추가 홍보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은 이 노래에서 자신이 괴물로 변하는 뮤직비디오를 떠올렸다. 영화 ‘런던의 늑대 인간’의 감독 존 랜디스에게 직접 연락해서 협업을 약속했다. 하지만 음반사 사장은 잭슨의 제안을 거절했다. 발매 후 1년이나 됐으며 이미 대박을 터트린 앨범을 위해 추가 비용을 지출하기 싫었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타당한 결정이었지만, 잭슨의 감과 능력은 그 위에 있었다. 그는 직접 MTV, 쇼타임과 협상해서 방영권을 샀다. 자신의 새로운 뮤직비디오와 메이킹 필름을 60분간 틀기로 했고 광고주를 모았다.

모자라는 돈은 자비로 충당해서 80만달러(약 9억5000만원)의 예산을 마련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스릴러’의 비디오는 당신이 알고 있는 대로다. 이것은 뮤직비디오를 넘어 뮤지컬이자 단편 영화다. 제작 과정을 담은 VHS 테이프는 발매 첫 달에만 미국에서 50만 개 이상이 팔렸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뮤직비디오이자 아직도 가장 위대한 뮤직비디오 반열에 올라 있다.

1982년 11월 30일부터 1983년 11월 30일까지, 딱 1년 사이 팝은 단숨에 쥐라기에서 백악기로 전환하는 급의 대격변을 겪었다. 이 격변기의 티라노사우루스가 마이클 잭슨이었다. 2009년 6월 25일,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며 팝의 신전에 입성한 그에 관한 책은 국내 출간된 것만 해도 10여 종에 이른다. 자서전을 포함해 대부분 그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20세기의 마지막 20년을 잭슨과 함께했던, 이제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문워크 추는 법을 더듬을 사람에게 ‘마이클 잭슨 그의 인생과 음악’은 당신이 알았을, 그리고 대부분 몰랐을 모든 것이 담긴 책이다.

다른 책이 필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608쪽 분량에 잭슨5 시절부터 유작까지, 263곡과 41개의 뮤직비디오에 대한 집요하리만큼 자세한 해설이 담겨 있다. 평생을 잭슨의 팬이자 전문가로 살아온 두 저자(리사르 르코크, 프랑수와 알라르)는 잭슨의 생애 내내 따라다녔던 모든 가십과 추문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그의 음악 그리고 커리어만을 파고든다.

이 과정에서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를 함께 만든 라이오넬 리치, 그의 멘토 퀸시 존스, 마이클 잭슨의 재능을 세상에 알린 모타운 레코드의 베리 고디와의 일화들이 드러난다. 잭슨이 어떤 과정을 통해 1985년 비틀스의 퍼블리싱 권리를 획득하게 됐는지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잭슨을 통해 본 20세기 미시적인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에 소개한 ‘스릴러’ 이야기는 이 책에 담긴 정보와 이야기의 먼지 한 톨 분량도 되지 않는다.

‘마이클 잭슨 그의 인생과 음악’은 이 위대한 엔터테이너이자 아티스트의 우주를 온전히 그려낸, 귀한 천문도다.


커트 코베인 사후 음악계 공백 메운 브릿팝

영국 대중음악을 해부한 신간 ‘브릿팝(왼쪽)’, 마이클 잭슨의 음악에 집중한 신간 ‘마이클 잭슨 그의 인생과 음악’. 사진 안나푸르나·북피엔스
영국 대중음악을 해부한 신간 ‘브릿팝(왼쪽)’, 마이클 잭슨의 음악에 집중한 신간 ‘마이클 잭슨 그의 인생과 음악’. 사진 안나푸르나·북피엔스

너바나로부터 촉발된 1990년대 그런지(grunge) 혁명은 세계를 강타했지만 1994년 4월 5일 커트 코베인의 자살과 함께 너무 일찍 끝났다. 팝 음악계에는 거대한 공백이 발생했고 이 공백의 많은 부분을 영국 출신 밴드들이 메웠다. 오아시스, 블러, 펄프 같은 브릿팝 밴드들이 선봉이었다. ‘핫뮤직’ ‘서브’ 같은 음악 잡지의 등장으로 한국에도 많은 브릿팝 밴드가 소개됐다. 미국 밴드들보다 덜 과격하고 댄디했으며 스타일리시했던 그들은 록에 거부감이 있는 이들도 제법 포섭했다.

그들에 의해 팝과 록의 철벽같던 경계가 무너졌다. 대니 보일의 감독 데뷔작이자 브릿팝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영화 ‘트레인스포팅’은 한국 청년들이 영국 노동자 문화를 쿨하다고 인식하게 만든 결정타였다. 이 영화로 인해 주연 이완 맥그리거뿐만 아니라 슬리퍼, 언더월드, 펄프 등이 국내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브릿팝은 한국 음악의 흐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중반 홍대 앞에서 탄생한 인디 신의 초기 모습은 펑크와 모던 록으로 양분됐다. 델리 스파이스와 언니네 이발관 같은 스타를 배출한 모던 록 신은 영국의 브릿팝 신과 흡사했다. 많은 모던 록 뮤지션은 미국보다는 영국을 동경했으며 동시대 브릿팝 밴드들의 사운드를 참고하곤 했다. 브릿팝이 없었다면, 혹은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한국 음악계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지와 마찬가지로 너무 빨리 사그라든 펑크 붐이 인디의 시작이자 끝이었을지도 모른다. 1990년대 한국 대중문화를 이야기할 때 브릿팝은 무시할 수 없는 한 축이다. 음악 잡지 ‘핫뮤직’ 기자 출신으로 현재 서울 연남동에서 음악 술집 ‘데어 데어(영국 밴드 라디오 헤드의 곡명에서 따왔다)’를 운영하는 권범준도 그때 브릿팝이라는 비를 맞으며 자란 세대다.

라디오 헤드 해설서인 ‘라디오 헤드 OK Computer’에 이은 두 번째 저서 ‘브릿팝’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영국 밴드의 흐름을 총망라한, 한국에서는 처음 나온 영국 음악 서적이다. 이 책은 브릿팝 전반의 흐름을 다룬 총론과 주요 앨범 100장 이상을 소개한 각론으로 나뉜다.

보통 이런 구성은 주마간산이 되기 쉽지만, 저자 권범준은 당시 영국의 시대상과 여러 인문학적 레퍼런스를 통해 브릿팝이 가진 음악적, 사회적 특성을 짚고 뮤지션들이 가지고 있었던 욕망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드러낸다. 각각의 앨범 리뷰에서도 해당 작품이 브릿팝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정확히 짚어 낼 뿐 아니라 좌우와 선후의 인과관계를 들여다보며 통시적, 공시적 고찰을 이어나간다.

풍부한 지식과 인용, 분석 그리고 문장을 겸비하고 있어 한 번 잡으면 644쪽의 긴 여행을 멈출 수 없게 된다. 문화 인류학자 케이트 폭스의 명저 ‘영국인 발견’에서 읽고 싶었으나 다뤄지지 않았던 영국 대중문화의 배경을 이제야 짚게 된다. 여전히 좋아하는 밴드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잊고 있던 음악을 환기하게 된다.

몰랐던 밴드에 호기심이 생기면, 재빨리 음원 사이트에 들어가거나 잡지에서 본 브릿팝 음반을 사기 위해 신촌과 압구정의 유명 레코드 가게까지 가던 추억도 떠올린다. 권범준은 서문에서 미국 소설가 토니 모리슨의 말을 인용해서 집필 의도를 밝힌다. “당신이 정말로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 그런 책이 없다면 당신이 직접 써야 한다.” 영국 음악을 사랑했던 이가 읽고 싶었던 책이 드디어 나왔다.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 대중음악상 선정위원, MBC ‘나는 가수다’, 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 및 자문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