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유현준 홍익대 교수. 미국 하버드 대학원과 MIT대학원에서 건축설계 석사를 마쳤다. 인문적 입담으로 도시 공간을 계몽 중이다. 사진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건축가 유현준 홍익대 교수. 미국 하버드 대학원과 MIT대학원에서 건축설계 석사를 마쳤다. 인문적 입담으로 도시 공간을 계몽 중이다. 사진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철근콘크리트와 엘리베이터 기술로 주거가 대량공급되고 중산층이 탄생한 것처럼, 앞으로 3D 프린팅 기술과 자율주행 차량은 도시를 어떻게 바꿀지 모른다. 차를 소유하지 않으면 주차장이 실내 농장이 될 수도, 줄어든 차선에서 농사를 지을 수도 있다. 도시 속 공간을 어떻게 쓰느냐, 우리가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고 사회가 바뀐다.

구체적인 도시 비전을 듣기 위해 건축가 유현준(홍익대 교수)을 만났다. tvN 예능 ‘알쓸신잡 2’에서 최적의 게스트로 ‘싱싱한 지적 입담’을 자랑했던 유현준은 요즘 융합과 연결을 화두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공간 혁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드론 대신 도심 지하 터널을 뚫어 택배 물류 수송을 시도하고, 창의적 소셜믹스를 위해 기업타운을 구도심으로 옮겨야 한다는 등 아이디어가 차고 넘친다.


학교 건물 이야기하면서, 공간을 잘게 쪼개고 외부 공간을 내부에 들여야 한다고 했는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에 모든 건축에 해당하는 게 아닌가 한다.
“그렇다. 작은 군집, 다양한 외부 공간이 필수다. 학생들이 실내 공간에서 밖으로 안 나가도 자연과 만날 수 있게 테라스를 만들어야 한다. 교무실은 꼭대기로 올려야 하고. 통창 만들고 폴딩도어 만들면 쉽게 바깥 공기, 꽃냄새를 맡을 수 있다. 복도 양쪽에 교실 만들어 가운데 창문 크게 만들면, 학생들이 서로를 구경할 수 있다. 복도벽 위쪽에 창 작게 내서 감시하는 건 전형적인 ‘감옥’형 구조다. 창문이 갈수록 중요하다.”

창문은 서로 들여다보이니 정직, 투명, 개인이라는 시대정신과도 잘 맞는 재료다.
“예전부터 창문을 좋아했다. 문은 프라이버시다. 닫으면 깜깜이다. 창문은 누가 들어오지 못하지만, 커튼 치면 프라이버시가 보호되고 자기 주도적인 공간이 된다. 그래서 나는 교실과 교실 사이는 물론, 거실과 안방 사이에도 큰 창문을 내자고 한다.”

건축의 본질은 형태가 아니라 공간 구획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당신은 더 나아가 ‘건축은 정보’라고 설명해서 사고가 전환됐다.
“건축은 정보와 관계의 집합체다. 과거엔 건축을 시멘트나 유리 같은 물질로 이해했다. 나는 건축은 공간이고 공간은 머릿속에서 산출된 개념이라고 본다. 만화도 나는 스토리화된 공간이라고 이해한다. 인터넷도 공간 형태로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도시 건축도 수많은 정보가 연결된 신경망 형태로 볼 수 있다. 시청 광장만 봐도 잔디광장, 스케이트장, 시위, 축제 공간… 어떤 행위 정보를 담느냐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가지잖나.”

세상의 모든 것이 공간 언어로 설명된다는 게 신선하다.
“가령 ‘양식의 양식’이라는 음식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나는 국밥을 이렇게 읽었다. 여러 공간의 자투리 음식이 한 공간에 모여 압축된 게 국밥이구나. 국밥은 반찬을 깔 공간이 없어서 나온 음식이다. 쪽방에 작은 상을 놓고 여럿이 모여서 먹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간편식이다. 반면 키우고 재배하는 데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스테이크나 와인은 권력형 음식이다. 그 공간을 최고로 압축해서 하나의 플레이트로 담아내면서 가치가 올라가는 거다.”

차지하는 공간이 곧 존재 값이 된다는 해석이 놀라웠다. 지식과 상식, 싱싱한 수다를 쉬지 않고 융합하는 모습에서 연상되는 사람이 있었다. 이어령, 김용옥, 유홍준 교수를 일컬어 대한민국 3대 교육방송이라고 했는데, 유현준이 이제 그 대를 잇는구나 싶었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tvN 예능 ‘알쓸신잡 2’에서 관찰력과 추리력이 뛰어나 ‘셜록 현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진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tvN 예능 ‘알쓸신잡 2’에서 관찰력과 추리력이 뛰어나 ‘셜록 현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진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현대 건축사에는 전에 없던 자기 생각을 펼쳐낸 위대한 건축가들이 있다.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데어로에, 루이스 칸, 안도 다다오…그들이 빛과 콘크리트를 이해했던 방식을 얼마나 많이 참조하나.
“설계가 잘 안 풀리면 성경책 보듯 안도 다다오의 도면을 본다. 안도 다다오가 지은 ‘물의 교회’ ‘빛의 교회’ 같은 건축물의 도면을 보면 그와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왜 창문을 내고 벽을 냈는지, 그 마음이 읽힌달까. 르 코르뷔지에도 정말 똑똑한 건축가다. 아이젠만 같은 건축가는 해체주의를 현실 건축에 인용했다. 그러나 루이스 칸이나 안도 다다오를 생각하면 클래스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루이스 칸이 지은 건물은 해 지기 전에 빛이, 공간이 얼마나 충만하고 위대한지를 보여준다.”

빛과 자연을 담은 공간에 살고 싶지만, 사실 도시인은 고밀화된 공동주택에 산다. 도시가 발전할수록 점점 감염병에 취약한 환경이 됐다.
“이제까지 도시의 발전은 신경망을 늘리는 거였다. 1세기 로마의 상수도부터, 18세기 파리의 하수도, 20세기 대도시의 지하철과 항공망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시냅스 총량이 급증하면서 메가시티가 탄생했다. 하지만 그만큼 전염병 연결 고리도 치밀해졌다. 지난 100년간은 항생제와 백신이 감염병을 막았지만, 현재로서는 감당이 안 된다. 바이오 테크놀로지(BT)와 정보기술(IT)이 합쳐진 새로운 게놈지도가 도시 설계에 필요한 시점이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방역에 선방한 데는, 국민 60%가 아파트에 사는 도시 구조 덕이 컸다. 모여 살면 택배 효율이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물류가 해결되면서 자가 격리가 가능했던 거다. 미국 아마존도 우리 택배를 못 따라온다(웃음).”

최근엔 지하 물류 시티에 대해서 줄기차게 이야기하고 있다. 도심에 지하 터널을 뚫어서 택배 물류를 전부 지하로 통하게 한다는 게 현실성이 있는 주장인가.
“가능하다. 지하 물류는 조용하고 안 보인다. 깊은 터널을 뚫을 필요도 없다. 도로는 정부 땅이고 밑으로 파내면 문제없다. GTX도 지하 40m 파는데, 그것도 프라이버시를 보장한 깊이다. 기계가 뚫으면 터널은 금방  완성한다. 도요타 우븐 시티는 물론 실험 도시지만, 각각의 터널에서 엘리베이터 타고 집까지 배송할 수 있다. 새로 지은 공공건물은 장애인도 움직일 수 있게 설계돼 있으니 로봇 딜리버리도 가능하다. 따져보면 드론 택배야말로 황당한 발상이다. 밤 11시에 11층 아파트에서 치맥을 시킨다고 생각해보라. 드론이 배달하면 9층과 10층에서 난리가 날 거다. 소리, 냄새, 섹터를 상상하지 않았던 거다.”

지하 물류 시티로 자동화가 된다면, 일자리 유실 등의 문제가 또 생길 텐데.
“온라인 주문이 늘어나면서 이제 공중 드론이냐 지상이냐, 지하 택배냐를 선택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점점 더 많은 인구가 택배 기사로 고용되겠지. 국민 다수가 택배에 종사하는 게 과연 전체 행복을 높이는 길일까. 택배는 이제 기계에 맡기고 인간 중심의 더 섬세한 일자리를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지금 물류는 갈림길에 서 있다. 20세기 초에 수소 에너지를 쓸 기술이 있었지만, 인류는 화석연료를 선택했다. 단가가 좀 더 싸다는 이유로. 그 선택으로 지금 얼마나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나. 드론 택배 세상이 되면 소음 때문에 산책은 꿈도 못 꾼다. 심지어 그 작은 헬기(드론)는 에너지 효율도 높지 않다.”

주택 환경 문제로 넘어가 보자. 비대면 사회가 될수록 중요해지는 공간은 무엇인가.
“실내 생활이 길어질수록 발코니, 테라스의 가치가 소중해진다. 실내지만 바깥 공기도 쐬고 하늘과 자연도 만날 수 있다. 국토교통부에서 건폐율․용적률을 개정해서라도, 아파트 베란다 공간을 활성화해야 한다. 과거엔 방에서 이불 펴고 자고, 상 펴고 밥 먹었다. 잘살게 되니 침대를 들여왔다. 아파트가 3.3㎡(1평)당 3500만원이라고 하면, 침대가 6.6㎡, 7000만원의 공간을 차지한다. 침대가 공간을 차지하면 방이 좁아서 평소엔 거실로 나온다. 4인 가족이 앉아 TV를 보려면 소파도 필요하다. 침대 3개에 소파 1개가 잡아먹는 공간이 이미 23㎡다. 절대 공간이 부족하니 야외 공간인 베란다를 실내공간화하는 거다.”

실내가구도 구조조정이 예상되는군.
“가구는 점점 줄어들 거다. 거실 한쪽을 차지하는 큰 소파가 자랑으로 여겨지던 시절은 지났다. 4명이 모여 TV 볼 필요가 없으니, 소파는 점점 사라지겠지. 각 방의 침대가 1인 소파 기능을 하고, 그 형태도 접이식이 많아질 거다. 거실은 운동, 공부 등 다목적 공간으로 쓰고 오히려 부엌은 확장되어 라이프스타일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모든 게 다 바뀔 것 같은 코로나19 환경에도 바뀌지 않는 게 있다고 했다. “인류 역사상 과시욕, 관음증, 짝짓기 본능은 어떤 환경에서도 안 바뀌었다. 그중 최고는 과시욕이다.”

과시욕은 어떤 형태로 유지되고 있나.
“평범한 개인들의 공간 과시욕은 인터넷으로 간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가능한 한 여러 곳, 다른 공간의 사진을 찍어서 올린다. 스마트폰으로 리얼 월드와 가상 월드를 왔다 갔다 하며 인스타그램 공간의 영토를 계속 확장해간다. 예전엔 나의 재력을 뽐내기 위해 명품 가방을 들고 외제 차를 탔다면, 지금은 SNS에서 잦은 공간 이동을 보여준다. 비트로만 존재하는 세상에 머물다 보면 실제 몸으로 기억하는 공간감, 피지컬 스페이스도 중요해진다.”

일단 비즈니스 시각으로 보면 사이버 공간은 이미 영토 분할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이다. 목 좋은 플랫폼은 자릿세도 비싸고 너무 북적댄다.
“온라인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편집숍이 인기를 끌면, 온라인 쇼핑 공간에도 순식간에 같은 형태가 생기잖나. 생명체는 진화를 겪으며 원생동물에서 무척추동물, 척추동물로 점점 더 세분돼 왔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진화로 치면 아직 공룡도 안 나온 상태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네이버…공간끼리 서로 융합하고 붙으면서 더 혁신적이고 새로운 종이 계속 나올 것이다.”

정체성은 건축가인데, 인류학자처럼 빅 히스토리를 읽는 느낌이다.
“세상을 읽는 나만의 시각이다. 건축가의 본능 중에 ‘갓 콤플렉스’가 있다. 자신을 신으로 착각하는 콤플렉스다. 일종의 망상이다(웃음). 어쨌든 빈 땅에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의 삶과 움직임의 규칙을 관찰하다 보면, 새롭게 발견하는 것들이 많다.”

마지막으로 ‘똑똑한 도시’가 되기 위해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
“주요 이슈는 다양성, 소셜믹스다. 낯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섞여야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다. 요즘 사람들은 온라인에서도 끼리끼리 모인다. 정치적 이슈가 생기면 SNS에서 좌우로 갈라져 거리를 두거나 친구를 끊는다. 점점 끼리끼리 모이면 통합을 위한 사회적 비용을 크게 치러야 한다. 재건축 아파트에 임대주택 30% 넣는 게 소셜믹스인가? 아니다. 그보다 도서관, 수영장, 공원, 거리에 더 많은 벤치를 만들어 개방하는 게 낫다. 자연과 도심,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두루 섞일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성수동, 경의선숲길 같은 곳이 많이 생겨야 경쟁력 있는 도시가 된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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