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인정 욕구'를 연구해 온 일본의 조직 경영학자 오타 하지메. 인정 욕구의 빛과 그림자를 담은 책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썼다. 사진 오타 하지메
20년간 ‘인정 욕구'를 연구해 온 일본의 조직 경영학자 오타 하지메. 인정 욕구의 빛과 그림자를 담은 책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썼다. 사진 오타 하지메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현대인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 크고 작은 ‘인정 강박’의 감옥을 경험한다. 인정받기 위해 과로하다 ‘번아웃’에 빠지며, 인정받기 위해 학업에 매달리고, 인정받으려 애쓰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인정받지 못해 가출하거나 자살하기도 한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삶 자체가 끝없는 인정 투쟁이다.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어서.” 때로는 이 말처럼 애처롭고 서글프게 느껴지는 말도 없다. 우리는 왜 타인의 기대에 인생을 ‘몰방’하는가. 기대를 받고 기대를 이뤄가는 것은 분명 삶의 건강한 엔진이지만, 기대의 노예가 되어 허덕이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교토대 경제학 박사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라는 책을 쓴 오타 하지메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인정 강박의 실체를 인지된 기대와 자기 효능감의 격차로 풀어낸 심리 공식을 발표했다. 20년 동안 그가 인정 욕구를 연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놀랍게도 인간은 자아실현 욕구보다 인정 욕구가 더 강하다는 것.


인정 욕구란 무엇인가.
“타인에게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다. 인정 욕구가 있기에 인간은 노력하고 건전한 성장을 이뤄간다.”

선생은 인정 욕구로부터 자유로운가.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인정 욕구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삶의 보람이나 동기부여로 이어가려 한다. ‘독’이 아니라 ‘약’으로 쓰려는 것이다.”

인정 욕구는 언제 독이 되나.
“배후에 숨어 있는 강박감이 커질 때다. 대학에서 한 대학원생을 지도할 때였다. 높게 평가하고 기대를 거는 순간, 갑자기 자퇴했다. 그런 일은 의외로 많았다. 한 대기업은 신입사원 시절 마음을 무겁게 한 상사의 말로 ‘앞으로 더 기대하고 있겠네’를 3위로 뽑았다. 사람들은 인정받을수록 거기에 구속된다.”

하지만 기대하고 기대받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실제로 기대를 받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그 기대에 얼마나 부담을 느끼는가다. 인지된 기대, 즉 스스로 느끼는 부담감이 인정 강박의 실체다. 일례로 대학 입시에서 낙방한 학생들은 떨어졌다는 사실보다 주위 사람에게 ‘실망을 안겼다’는 사실에 더 괴로워한다. 사람들이 기대를 거두자 부담에서 벗어나 비로소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도 한다.”

실제 기대와 인지된 기대 사이의 부조화가 심각하군!
“대다수는 실제 기대보다 기대를 더 무겁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기대하는 쪽보다 기대를 받는 쪽이 나이가 젊고 인생 경험이 적어서다. 또 기대하는 쪽은 ‘다른 사람 일’이지만, 기대를 받는 쪽은 ‘바로 나의 일’, 즉 자신의 평가와 자존심이 걸려 있다.”

오타 하지메의 설명에 따르면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기 불구화 전략’을 취한다. 큰 시험을 앞두고 어딘가 아프거나 컨디션이 나빠지는 사람, 경기를 앞두고 ‘부상했으니 이기기 어렵겠다’고 엄살을 떠는 선수가 그 예다.

‘자기 불구화 전략’이 매우 인상적이다. 일종의 방어 기제라고 할 수 있나.
“그렇다. 표창장을 받고 사직하는 사람, 기대에 눌린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는 것도 일종의 ‘자기 불구화 전략’이다. 주위 사람에게 ‘기대하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거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있기 전날, 일부러 숙취 상태를 만드는 사람도 있다. 주위를 낙담시켜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심하면 일부러 반항적인 행동을 하거나 무능을 가장해 자기 가치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기대를 저버리면 안 된다는 의식은 일본인이 특히 더 강한 것 같은데, 그건 왜 그런가.
“일본 사회에서는 ‘표면적인 인정’보다 ‘이면의 인정’이 더 중요하다. 성과를 보이는 것보다 조화를 해치지 않는 것, 실수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왜냐? 사회나 조직이 모두 ‘제로섬’ 게임을 벌여서다. 한정된 자원(돈이나 직책 등)을 구성원들끼리 빼앗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무엇을 해야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돼’라는 태도가 나온다. 수동적이다.”

때때로 사회적으로 큰 성취를 이룬 부모의 자식들이 인정 욕구의 희생양이 된다. 흙수저, 금수저 이분법을 들추면 강한 부모 밑에서 ‘존재감’을 잃어버린 ‘투명수저’들도 많다. 삶 전체가 인정 투쟁이 된다.
“부모가 너무 대단하면 아이는 부모와 쉽게 비교당한다. 웬만큼 노력해도 칭찬을 못 받는다. 견디기 힘든 것은 가정에서 존재감이 낮다는 거다. 아이들은 사춘기 무렵부터 인정을 두고 부모와 갈등을 일으킨다. 평범한 부모와 힘겨루기도 버거운데, 위대한 부모라면 그 존재감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성장기 청소년에게 자신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것만큼 불안한 일은 없다. 노력해도 인정을 못 받으면 나쁜 짓을 해서라도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한다. 혼나는 게 무시당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너무 커진 기대를 스스로 조절해 자기 능력에 맞는 기준으로 떨어뜨려야 한다.
너무 커진 기대를 스스로 조절해 자기 능력에 맞는 기준으로 떨어뜨려야 한다.

가정이 인정 투쟁의 장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는 부모의 인정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지한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은 여전히 학력 사회라 성적이 곧 자녀의 정체성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는 것 같다. 가정이 ‘우수함’을 다투는 장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과를 통해 입증되는 존재가 아니라, 커갈수록 자율적인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는 경험을 만들어 주도록 하라.”

기질적으로 인정 욕구의 강박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 있나.
“책임감이 과도하게 강한 사람이다. 자기 기준이 높은 사람. 이런 유형은 타인의 기대가 고스란히 스트레스가 돼서 자신을 궁지로 몰고 간다. 모범생들이야말로 인정 욕구 강박의 최대 희생자다.”

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인정 욕구의 감옥에 갇힌다는 게 아이러니다.
“인정에 민감할수록 조종되기 쉽다. 엘리트들은 아이 때부터 기대에 부응했고 인정 경험을 쌓아왔다. 주어지는 과제에만 대응하고 평가를 받아서 공부도 일도 수동태다. 그들 사전에 ‘할 수 없어요’ ‘무리입니다’라는 단어는 없다. 그 말에 수치심을 느낀다. 최근 직장이나 학교에서 혼나는 일이 줄어든 것도 문제다. ‘과대평가’가 지속하면, 자기 객관화가 불가능해진다.”

왜 자신을 망치면서까지 좋은 평판을 이어가고 싶어 할까.
“원치 않았다 해도 한 번 인정받으면 내려놓기 어렵다. ‘넛지’를 쓴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는 이를 보유 효과라고 불렀다. 같은 것이라도 얻을 때의 가치보다 잃을 때의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진다. 게다가 평판을 잃는 건 공동체에서 거부당하는 느낌을 준다.”

오타 하지메는 좋은 대학을 나오고 대기업에 취직한 엘리트들이 세가지 불행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는 주위의 기대 자체가 크고, 둘째는 그에 비해 학력과 업무 능력의 상관관계가 줄었으며, 셋째는 그런데도 그들이 자신의 기대치를 낮추지 못하기에 오는 불행이다.

해법은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의 행동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것. 그는 인정 욕구가 주는 부담감의 크기를 측정하는 방법을 하나의 공식으로 제시했다.


(인지된 기대-자기 효능감)×상황의 중요성=부담감의 크기

관건은 부담감의 크기인가.
“그렇다. 인지된 기대와 자기 효능감의 격차가 크면 부담감이 커진다. 평판에 비해 실력이 모자란데 도망칠 수도 없다면, 머리가 아득해지겠지. 반대로 격차가 커도 그 상황이 자신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면 부담감은 적다.”

부담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기대에 적당히 부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너무 커진 기대를 스스로 조절해 자기 능력에 맞는 기준으로 떨어뜨려야 한다. 첫 번째 열쇠는 인지된 기대 수준을 적정 수준까지 낮추는 것이고, 두 번째 열쇠는 자기 효능감을 높이는 거다. 세 번째 열쇠는 상황의 중요성을 낮추는 것. ‘이것 말고도 소중한 게 많아’ ‘도망쳐도 괜찮아’라고 생각하면 부담감이 줄어든다.”

사려 깊은 사장의 “이 상은 과거에 대한 포상이니 부담 가질 필요 없다”는 말이나 노련한 학원 강사의 “이 문제는 까다로워서 풀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같은 말이 강박을 완화해주는 보험 같은 역할을 한다고.
“요컨대 윗사람은 인정을 잃어 자존감을 다칠 거라는 공포를 제거해주면 좋다. 스스로 보험을 들 수도 있다. 종종 자신의 약점을 노출해서 기대 수준을 낮춰놓으면 실패해도 이해받을 수 있다. 역설적으로 약점을 보여주면 강한 멘털을 가질 수 있다.”

여러 스테이지에서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갖고 사는 것도 강박을 낮추는 효과가 있나.
“능력을 발휘하는 장소, 평가받는 그룹이 많을수록 평가에 덜 심각해진다. 한군데서 인정받으려고 올인하지 않는다. 정체성을 분산시켜 다원화하면 ‘이게 아니면 다음’이라는 대안이 생긴다. 반드시 본업 이외에 부업이나 취미를 갖기를 권한다. 일본은 남성보다 여성이 인정 욕구 강박에 덜 빠졌는데 육아, 동호회, 자원봉사 등 여러 개의 스테이지에 자기를 세우기 때문이었다.”

직장인은 회사에서 임금이 오른 만큼만 부담을 느끼라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이 ‘화폐의 철학’에서 지적했다. 돈을 매개로 인간은 인격적 종속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돈은 구체적이고 정량적이다. 돈을 매개로 하면 여분의 심리적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된다. 그러니 사원을 인정할 때도 칭찬에 해당하는 액수의 돈으로 보상하는 게 좋다.”

‘적정한 인정 시스템’을 학교나 기업 등에서 만들 수 있을까.
“다원화와 오픈화가 관건이다. 공부하는 목적, 일하는 방식에 선택지를 여러 루트로 만들고 개인이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것. 핵심은 다양성이다. 성별, 인종, 취업 형태 등 다양한 사람이 섞여 있어야 능률이 높아진다. 출세, 전문성, 워라밸 등 다양한 자기 목표를 가진 사람으로 팀을 구성하면, 제로섬 부담 없이 서로를 인정할 수 있다. 이때 리더는 시의적절한 피드백으로 존재감을 확인시켜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