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이발소. 사진 공유마당
서울역 이발소. 사진 공유마당

어느새 60대가 된 두 남성 개그맨의 스타일을 비교한 한 TV 예능 프로그램이 화제가 됐다. 세대는 비슷하지만 한 사람은 매우 세련된 스타일을 추구하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트렌드에 상관없는 옛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스타일이 세련된 개그맨은 ‘바버숍(barbershop)’을 다니고, 구식 스타일을 고집하는 개그맨은 사우나 이발소에서 머리 손질을 한다는 것이다.

사실 한글과 영문의 차이가 있을 뿐 이발소와 바버숍은 같은 말이다. 모발 손질과 면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미장원과 헤어숍도 마찬가지로 같은 듯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어느새 이발소와 미장원은 구세대에 멈춘 구식 스타일을, 바버숍과 헤어숍은 현대적이거나 세련된 스타일을 상징하는 하나의 명사이자 이미지가 됐다.

놀라운 건 국내 바버숍이 지난 몇 년 사이 폭발적인 붐을 일으키며 빠르게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점이다. 오랫동안 바버숍 문화가 자리 잡은 유럽보다 더 쉽게 곳곳에서 바버숍 간판을 발견할 수 있다. 처음 서울 압구정동에 바버숍이 오픈했을 때만 해도 패션이나 크리에이티브한 직업을 지닌 특정 젊은 남성만의 문화였는데, 이젠 보편적인 남성 뷰티 문화가 되어 가고 있다. 연령대도 20~30대 젊은 남성 중심에서 40~60대 멋쟁이 중년 남성에게까지 폭넓게 확대되고 있다.

바버숍의 인기는 ‘뉴트로(New+Retro)’ 문화의 부흥과 맞물려 있다. 다양한 파마와 스타일링 등 현대적 헤어 스타일의 유행과 동시에 복고적인 젠틀맨 헤어 스타일링이 함께 유행하고 있다. 완벽한 영국식 젠틀맨 스타일로 화제가 된 영화 ‘킹스맨’의 성공도 기폭제가 됐다. 빈틈없는 영국식 슈트 스타일링과 한 올의 흘러내림이나 흐트러짐 없이 포마드로 스타일링한 헤어 스타일이 젊은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금은 남성들이 여성들 사이에서 머리 파마를 하고 네일 케어를 하며 눈썹 문신을 하고 보정 메이크업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된 시대다. 뷰티와 패션 전반에 걸쳐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모호한 ‘젠더리스(genderless)’가 유행하고 있다. 반면에 많은 젊은 남성이 클래식한 정통 남성 뷰티 문화를 향한 새로운 로망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바버숍의 부흥은 한국 이발소의 기원과 변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시작은 일본의 강압으로 단발령이 내려진 1895년으로 거슬러 간다. 단발령이 내려진 지 6년 후인 1901년 인사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이발소 ‘동흥이발소’가 개업한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이발소를 처음 개업한 사람은 유양호로 알려져 있다. 후에 종로 2가 청년회관 근처에 유양호가 중앙이발관을 개업하고, 건너편에 친척인 유강호가 태성이발관을 개업했다고 한다.

1903년만 해도 서울에 단 네 개의 이발소만 있었다고 한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이발소는 전국적으로 급증해 1975년에는 2만9713개나 있었다. 골목마다 이발소가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장발이 유행하면서 이발소를 찾는 남성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발소는 1980년대 ‘퇴폐 이발소 파동’으로 급속히 쇠퇴하게 된다. 이발소가 성상품화와 퇴폐의 온상이 되면서, 정상적인 이발소까지 타격받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발소의 삼색등까지 좋지 않은 이미지로 왜곡됐다. 그렇게 이발소의 타락과 쇠퇴의 스토리는 씁쓸하고 쓸쓸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발소의 기억이 없는 20~30대가 ‘모던 이발소’를 부활시켰다. 유럽의 ‘바버숍’을 국내에 맞는 뉴트로 문화로 재창조해 다시 눈부신 전성기를 누리게 하고 있다. 바버숍의 바버(barber)들이나 젊은 고객들은 한결같이 유럽을 여행할 때 길에서 부딪힌 ‘바버숍’ 문화가 신선한 체험이자 신세계였다고 말한다. 수세대를 이어온 장인의 손길로 다듬어지는 헤어 스타일과 면도 그리고 바버숍을 가득 채운 이발 도구들과 포마드와 헤어 오일 등의 남성 전용 헤어 제품들이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유년 시절부터 엄마와 아빠 손을 잡고 미용실에서 헤어 커트를 하며 자라온 그들에게 오히려 바버숍 문화가 ‘새로움’과 ‘신선함’으로 다가간 것이다. 또한 그들은 유럽의 바버들에게서 남성의 머리와 수염을 손질하는 스타일리스트나 디자이너 이상의 장인정신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특히 수염 손질이 바버숍을 더욱 매력적이게 한다. 남성이라면 누구나 멋진 수염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바버들은 각자의 얼굴형과 직업에 맞는 수염 모양을 제안해주고, 멋지게 다듬어 완성해준다. 이발과 정통 습식 면도(뜨거운 수건을 5~10분간 감싼 뒤 면도하는 방식), 눈썹과 구레나룻 등을 관리해주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받고 나면, 미용실보다는 바버숍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미용실에서 부탁하기 힘든 코털 정리까지 깔끔하게 해주고, 바버숍만의 다양한 그루밍(grooming·몸을 치장하는 일) 비법을 전해주기도 한다. 고급 바버숍들은 위스키와 시가 바를 함께 운영하며 구두에 광택을 내주기도 한다.


뉴트로 이발소 콘셉트의 단골이발관. 사진 뉴트로바버샵
뉴트로 이발소 콘셉트의 단골이발관. 사진 뉴트로바버샵
한남동의 바버숍 헤아. 사진 헤아
한남동의 바버숍 헤아. 사진 헤아

바버숍만의 문화 체험하며 단골 돼

사실 바버숍은 이발과 면도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남성들만의 살롱이자 아지트 공간이기도 하다. 멋쟁이 신사들 간의 만남이 이뤄지고 대화와 정보가 오가며, 서로의 취향과 취미를 공유한다. 또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젠틀맨십’을 가르치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수염이 나며 면도를 시작하게 된 10대 아들을 동행해 바버숍을 찾는 중년이 늘어나고 있다. 제대로 된 면도법을 가르쳐주는 동시에, 모발과 수염 손질을 통해 남자답고 단정하게 몸 손질을 하는 문화를 자기 아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다.    

아들을 데리고 바버숍을 찾는 중년 중엔 어린 시절 이발소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뜨거운 타올을 얼굴에 얹은 후 면도를 받는 아버지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머리 커트를 했던 그때는 아버지와 아들만의 시간이었다. 지금처럼 고급화한 프리미엄 서비스는 아니었지만, 이발소의 모든 풍경이 인상 깊은 추억으로 남았다.

또한 바버숍의 유행은 현재의 중년이 유년 시절에 경험했던 1960~70년대 이발소 문화까지 부활시키고 있다. 복고 이발소 감성을 ‘뉴트로’로 재해석한 ‘단골이발관’은 고급스러운 유럽 바버숍 스타일과 다른 동네 이발소 이미지의 복고 무드와 합리적인 가격으로 바버숍을 대중화시키고 있다. 바버숍을 찾는 중년들의 워너비 스타일로 손꼽히는 홍정욱 전 의원의 바버로 잘 알려진 정철수 원장은 ‘찰스바버숍’을 오픈해 다양한 연령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55년 경력의 마스터 장인으로 가장 클래식한 바버숍 헤어 ‘사이드 파트 커트(여러 비율의 가르마를 내어 포마드로 단정하게 연출하는 바버숍의 대표적인 커트)’의 정석을 보여준다.

바버숍의 유행은 이발소를 외면하고 헤어숍으로 모여들었던 젊은 세대를 다시 현대화된 이발소로 모여들게 한다. 동시에 유년 시절 이발소의 추억을 지닌 중년들도 바버숍에 점점 몰려들고 있다. 때로는 아들, 아버지, 할아버지까지 3대가 함께 바버숍에서 모발과 면도 손질을 받는 풍경도 보게 된다. 그들은 바버숍을 찾는 이유가 단지 스타일 때문만이 아니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바버숍만의 문화를 체험하는 즐거움에 단골이 되게 된다고 한다. 거리 곳곳에서 감각 있게 변형된 삼색등을 발견하는 건 뜻밖의 기쁨과 반가움을 전한다. 모던 이발소 ‘바버숍’ 문화가 국내에서 어떻게 계속 진화할지 기대된다.


▒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케이 노트(K_note)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