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포자’ 대표 메뉴인 천진가정만두. 사진 진포자
‘천진포자’ 대표 메뉴인 천진가정만두. 사진 진포자

서울 반포동 센트럴시티 파미에스테이션에는 묘한 음식점이 하나 있다. 왕릉에서 볼 법한 석상(石像)이 출입구 양옆을 지키고 있고, 매장에 들어서면 벽에는 수묵 채색화, 붓글씨, 오래된 나뭇 조각 등이 걸려있다. 중국 만두의 일종인 바오쯔(包子)를 전문으로 하는 천진포자(天津包子)가 식당인지 골동품점인지 헛갈리게 된 데는 이 집 주인 정진호씨의 독특한 이력이 있다.

정진호씨는 본래 골동품상이다. 한국과 중국 고미술품 전문 화랑 ‘유심재(游心齋)’ 대표다. 반닫이를 많이 다뤄 인사동 일대에서는 ‘반닫이 정’으로 통하기도 한다. 그는 중국 톈진(天津)에 있는 명문 난카이대학(南開大學)에서 당(唐)·송(宋) 문학을, 베이징 중앙미술학원(中央美術學院)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10여 년 중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유심재를 차린 정씨는 톈진의 만두, 더 정확하게는 바오쯔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톈진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바오쯔의 도시. 청나라 서태후가 애정했으며 지난 2018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고속철을 타고 찾아가 먹었다는 중국 최고의 바오쯔 명점(名店)인 ‘거우부리(狗不理)’가 있는 도시다.

톈진에서 사귄 ‘따거(大兄)’가 정씨에게 “바오쯔 전문가를 소개할 테니 서울에 바오쯔 가게를 직접 차려보라”고 제안했다. 미식가인 정씨는 제안을 받아들여 지난 2007년 ‘천진포자’를 인사동과 삼청동을 잇는 소격동 선재아트센터 곁에 냈다. 천진포자는 바오쯔를 제대로 소개한 곳으로는 최초이다시피 했고, 성공을 거뒀다. 소격동 매장은 이제 없지만, 파미에스테이션과 부암동 두 곳에서 성업 중이다.

바오쯔는 만두라고 할 수도 있지만 보다 정확히 이해하려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만두(饅頭)로 통칭하지만, 중국에서는 바오쯔와 만터우(饅頭), 자오쯔(餃子·교자)로 크게 구분한다. 자오쯔는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서 만든 피에 소를 넣고 싼다. 만터우는 밀가루 반죽을 사용하되 소를 넣지 않는다. 국내 중식당에서 고추잡채 같은 요리에 딸려 나오는 꽃빵을 생각하면 된다. 바오쯔는 자오쯔와 만터우를 합친 형태다. 발효된 밀가루 반죽을 사용하는 점은 만터우와 같지만, 소를 채워 빚는 건 자오쯔와 같다. 왕만두와 비슷하달 수 있지만, 피가 훨씬 얇다.


직접 뽑은 생면을 볶아 만드는 차오면. 사진 천진포자
직접 뽑은 생면을 볶아 만드는 차오면. 사진 천진포자
차오면 국수를 찌는 모습. 사진 천진포자
차오면 국수를 찌는 모습. 사진 천진포자

전문점다운 본토의 맛

전문점답게 바오쯔가 8가지나 된다. 대표 메뉴는 ‘천진가정만두’. 곱게 다진 돼지고기·채소·해산물 등을 섞어 만든 소를 넣고 빚어 찐다. 톈진 일반 가정에서 흔히 만들어 먹는 식이다. 얇으면서도 폭신한 만두피를 씹으면 감칠맛과 육즙이 뜨거운 김과 함께 터져 나와 입안을 적신다. 다진 돼지고기만 들어가는 ‘고기만두’는 고기 맛이 더욱 진하고, 다진 돼지고기·새우·목이버섯으로 채운 ‘삼선새우만두’는 버섯 향이 기분 좋게 코로 올라오는 가운데 입에서는 돼지고기와 새우가 감칠맛 다툼을 한다.

채식주의자라면 다진 부추와 달걀볶음을 넣어 담백한 ‘부추야채만두’를, 고기를 덜 좋아하면 최근 새로 추가된 ‘셀러리만두’와 ‘양배추고기만두’를 권한다. 매운맛을 즐긴다면 고춧가루를 더한 다진 돼지고기에 새우 살을 박은 소를 사용하는 ‘매운새우고기만두’가 있다. 달콤한 팥소로 채운 ‘단팥포자’는 별다른 후식이 없는 이 집에서 식사 마무리로 맞춤하다.

만두류는 바오쯔 외에 지짐만두(鍋貼)와 물만두(水餃子), 훈툰(餛飩)도 있다. 다진 돼지고기와 채소를 발효하지 않은 만두피 복판에 놓고 양 끝이 완전히 밀봉되지 않게 가운데만 붙인 만두를 뜨거운 철판에 기름 넉넉히 두르고 바삭하게 굽는다. 특히 신메뉴 ‘셀러리지짐만두’는 풋풋한 셀러리 향이 기분 좋았다. 물만두는 국내 중식당 물만두와 달리 중국 가정에서 식사로 먹는 물만두처럼 피가 두툼하다. 훈툰은 광둥식 발음 ‘완탕’으로 더 알려진 피가 하들하들 얇고 작은 만두로, 이곳에서는 한국의 떡국과 비슷한 걸쭉하고 진한 맛의 국물에 끓여 낸다.

만두 외에도 중국 서민 음식을 두루 잘한다. ‘차오면’이 특히 좋았다. 직접 뽑아서 찌고 말린 생면을 돼지고기·숙주 등과 함께 볶아내는데, 특유의 건조한 듯 하늘거리는 면발이 국내에서 쉽게 맛보기 힘들다. 호떡처럼 생겼지만 부추·달걀볶음·당면을 넣고 바삭하게 구운 ‘씨얼빙’은 중국에서 아침 식사로 많이 먹는 전병. 밑반찬으로 많이 먹는 살짝 얼얼한 마라맛과 매운맛이 감도는 ‘건두부 무침’과 칼로 자르지 않고 방망이 따위로 두드려 깨진 단면의 식감이 재미난 생오이를 매콤한 겨자 기름에 무친 ‘파이황(拍黃瓜)’도 반갑다. 해외로 쉽게 나갈 수 없는 요즘, 중국 음식에 대한 향수를 달래고 싶다면 주저 말고 이 집을 찾아갈 일이다.


부추, 달걀볶음, 당면을 넣어 구운 씨얼빙. 사진 천진포자
부추, 달걀볶음, 당면을 넣어 구운 씨얼빙. 사진 천진포자

천진포자(天津包子) 파미에스테이션점

분위기 골동품 가게인가 싶은 외관이지만 통유리 안쪽으로 열심히 만두를 빚는 여성들이 보인다.

서비스 중국 보통 사람들이 출출할 때 찾는 동네 만둣집처럼 친근하고 편안하다.

추천 메뉴 천진가정만두·고기만두·매운새우고기만두·부추야채만두 9500원(6개), 단팥포자 6000원(3개), 지짐만두·셀러리지짐만두 9500원(6개), 수교자 9500원(10개), 차오면 9500원, 씨얼빙 9500원(4개), 훈툰탕 9500원(10개, 계란새우볶음밥+훈툰탕 세트 1만2000원, 파이황 5000원, 건두부무침 7000원.

음료 대중음식점답게 술은 중국 칭다오맥주(6000원)만 있다.

영업시간 점심 오전 11시~오후 3시, 저녁 오후 4시 30분~9시. 주문은 오후 8시 30분까지 받는다. 주말에는 브레이크타임 없다. 연중무휴

예약 권장

주차 이용 가능

휠체어 접근성 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