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파·어노니머스 프로젝트의 ‘데자뷔(Déjà View)’ 표지. 사진 김진영
마틴 파·어노니머스 프로젝트의 ‘데자뷔(Déjà View)’ 표지. 사진 김진영

 

사진을 찍다 보면, 정말 잘 찍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이제 사진술이 너무나 발달해, 대강 찍어도 기술적으로 잘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스마트폰에는 렌즈가 기능별로 여러 개 장착돼 있어 손쉽게 멋진 사진을 생성해준다. 그러자 다른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잘 찍긴 했는데, 좋은 사진인가? 좋은 사진이란 뭘까?

마틴 파(Martin Parr)와 어노니머스 프로젝트(The Anonymous Project)가 함께한 프로젝트를 담은 ‘데자뷔(Déjà View, 2021)’는 유명한 작가와 수많은 익명의 사진가들의 사진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좋은 사진에 대한 하나의 힌트를 던져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두 명이다. 우선 마틴 파는 영국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그가 관심을 둔 것은 슈퍼마켓, 바닷가, 관광지, 축제 등 매일의 일상이다. 그는 일상에서 찾아낼 수 있는 사람들의 재미있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을 대체로 근접한 거리에서 플래시를 사용하여 찍는다. 그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의 솔직한 그대로의 모습에 깊은 애정을 갖는 작가다.

또 다른 저자인 어노니머스 프로젝트는 리 슐만(Lee Shulman)이 2017년 설립한 비영리 단체다. 어노니머스 프로젝트의 시작은 리 슐만이 이베이에서 오래된 코닥크롬 슬라이드 필름 수백 개가 든 상자를 구입한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누가 찍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많은 익명의 사진가가 찍은 필름의 아름다운 색채 속에 포착된 일상의 모습에 그는 크게 매료됐다. 그때부터 계속해서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진 컬러 슬라이드 필름을 수집했고, 193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찍은 80여만 장의 필름을 보유하게 됐다.

수집한 필름을 가지고 그가 하는 일은 사진을 들여다보고 분류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일이다. 사진을 들여다보고 선별하는 과정을 계속해야만, 누가 찍었는지 알 수 없는 수많은 필름 더미 속에서 새로운 내러티브의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다.

어느 날 리 슐만은 자신의 사진 아카이브를 들여다보다, 어떤 사진들이 너무나 유명한 사진가이자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가인 마틴 파의 사진을 연상시킨다는 점을 발견한다. 사진계의 아이콘인 마틴 파의 사진과 이름 모를 사진가가 남긴 사진이 서로 닮았다니! 리 슐만은 이 닮음을 책으로 만들어보자고 마틴 파에게 제안했다. 마틴 파는 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흔쾌히 수락했고, 닮은 사진을 고르는 작업을 오롯이 리 슐만에게 맡겼다. 리 슐만은 200여 쌍의 조합을 만들어냈고, 최종적으로 64쌍을 선택해 책에 수록했다.

책에는 재미있는 유사점이 있는 사진이 나란히 실려 있다. 비슷한 차량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휴가객, 나란히 앉아 있는 세 명의 할머니, 생일 케이크 촛불을 온 힘을 다해 부는 아이, 꽃무늬 벽지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여성, 사람 몸에 앉은 새들, 인파가 가득한 수영장, 친구를 물에 빠뜨리는 장난을 치는 사람들, 바닷가에서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입에 묻혀가며 먹는 아이 등 모두 일상에서 포착된 재미난 장면들이다.

그런데 두 사진 중 하나는 유명한 사진가의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무명 사진가의 사진이다. 사진의 출처를 정확히 맞출 확률은 2분의 1이다. 책에는 총 64쌍의 사진이 실려 있으므로, 모두 정확히 맞출 확률은 수학적으로 매우 희박하다. 사진적으로는 어떨까. 단언컨대 사전 정보가 없다면 소재, 구성, 색감 등이 서로 닮은 이 사진들의 출처를 정확히 맞추기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사진을 뒤섞는 대신, 책의 왼쪽 페이지에는 마틴 파의 사진을, 오른쪽 페이지에는 어노니머스 프로젝트의 사진을 싣는 일관된 규칙에 따라 사진을 수록했다. 이들에게 이 책의 목적은 작가의 사진과 아마추어 스냅사진 사이에 혼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는 일상 속에서 순간적으로 포착된 웃음과 즐거움을 전하는 데 초점을 뒀다. 그래서인지, 규칙에 따라 사진을 수록했음에도 책은 이내 그러한 구분을 잊게 하고, 독자로 하여금 사진 속의 즐거운 장면들을 바라보게 한다.

저자는 책의 왼쪽 페이지에 마틴 파의 사진을, 오른쪽 페이지에 어노니머스 프로젝트의 사진을 실었다. 모두 일상에서 포착된 재미난 장면들로 소재, 구성, 색감 등이 서로 닮았다. 사진 김진영
저자는 책의 왼쪽 페이지에 마틴 파의 사진을, 오른쪽 페이지에 어노니머스 프로젝트의 사진을 실었다. 모두 일상에서 포착된 재미난 장면들로 소재, 구성, 색감 등이 서로 닮았다. 사진 김진영

 

그렇다면 좋은 사진이란 뭘까? 마틴 파의 사진과 익명의 사진가의 사진이 비슷하게 좋게 느껴졌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마틴 파는 의식적으로 완벽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진가로도 알려져 있다. 이를테면 수직과 수평과 같이 대체로 맞춰야 한다고 여겨지는 구도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과감한 접사를 하기도 하며, 피사체가 무작위로 배열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마틴 파는 사진을 정갈하게 다듬어서 사진에 담긴 에너지가 줄어드는 방향이 아니라, 사진의 즉흥성과 순간의 순수함이 최대한 드러나는 방향으로 작업한다. 좋은 사진은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마틴 파는 기술적인 부분은 건너뛰고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좋은 사진은 이야기를 전하고, 에너지가 있으며, 관객을 사로잡는 사진이다.”

그런데 이러한 마틴 파의 미학은 아마추어 스냅사진의 속성과도 닮아 있다. 누가 봐도 빼어날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고려하고 셔터를 누르기보다는 가족이나 친구 등 친밀한 이들을 가까이에서 솔직하고 빠르게 찍는 사진들 말이다.

마틴 파라는 작가가 평생을 바쳐 찍어온 사진들을 우리는 새롭다고 보아왔지만, 사실 이미지 면에서 그의 사진은 우리가 ‘이미 본 것(Déjà View)’일지 모른다. 달리 말해 이미 세상에 존재했던 것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헝가리 예술가 ‘라슬로 모호이너지(László Moholy-Nagy)’가 ‘아마추어 사진은 새로운 이미지의 생산을 위한 실험실과 같다’고 본 관점과도 공명한다. 수많은 익명의 사진가들, 수많은 마틴 파들이 1930년대에도 1950년대에도 바닷가에서, 상점에서, 거리에서 가족과 친구를 매일매일 찍었다. 그렇게 생산된 사진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양이며, 리 슐만은 그 가운데 일부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사진가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유사한 미학을 공유하고 있음을 이렇게 우리가 확인했음에도 왜 마틴 파는 사진가이고 다른 이들은 익명으로 남았는가. 이러한 질문은 누군가는 성공했고 누군가는 실패했다는 차원의 질문이 아니다. 모두가 사진가로 이름을 알리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다만 이 책은 사진을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 사진가의 과업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것은 수많은 사진 가운데 어떤 사진을 선택하고 보여줄 것인지를 결정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사진가가 사진을 찍는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라면 우리는 모두 사진가이다. 하지만 사진을 선택하고 편집하는 행위에는 기술을 넘어서 세상을 보는 관점, 사진에 대한 이해가 수반된다. 마틴 파는 그 일을 계속해 왔고, 익명의 사진가들은 찍는 데서 멈췄다.

그리하여 이 책은 이루기 어려운 지점에 성공적으로 도달한다. 수많은 아마추어 사진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동시에 작가성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둘의 공존은 표면적으로 모순 같아 보이지만, 이 책은 미학을 공유하는 두 사진을 나란히 제시함으로써 그 모순을 해결해낸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