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신문 위에 놓인 식빵. 신문 위에 음식을 올려둬 입체감이 극대화됐다. 2 노르웨이를 소개한 페이지. 빈곤선으로 설정된 소득이 얼마인지, 어떤 방식으로 빈곤선을 설정하는지, 빈곤율은 얼마인지 등의 관련 데이터도 수록했다. 3 비교가 용이하도록 동일한 형식으로 촬영된 사진들. 사진 김진영
1 한국 신문 위에 놓인 식빵. 신문 위에 음식을 올려둬 입체감이 극대화됐다.
2 노르웨이를 소개한 페이지. 빈곤선으로 설정된 소득이 얼마인지, 어떤 방식으로 빈곤선을 설정하는지, 빈곤율은 얼마인지 등의 관련 데이터도 수록했다.
3 비교가 용이하도록 동일한 형식으로 촬영된 사진들. 사진 김진영

가난 혹은 빈곤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용어다. 경우에 따라 절대적 개념으로도 상대적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그 가운데 빈곤 계층을 정의하기 위해 사용되는 개념인 빈곤선은 해당 국가에서 적절한 생활 수준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최소 소득 수준을 의미한다. 이 기준을 활용한다면,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의 물질적인 자원이 없는 경우, 즉 소득이 빈곤선 아래일 경우 빈곤 상태에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나의 소득이 빈곤선 근처에 있다면, 나는 하루에 어느 정도 되는 양의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을 각 나라의 사람들에게 한다면, 그 나라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는 식품을 제각각 머리에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되는 양을 살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충분한 것일까. 

초우 앤드 린의 ‘빈곤선’ 표지. 사진 김진영
초우 앤드 린의 ‘빈곤선’ 표지. 사진 김진영

베이징에 기반을 둔 초우 앤드 린(Chow and Lin)은 사진가 스테픈 초우(Stefen Chow)와 경제학자 후이 린(Huiyi Lin)으로 구성된 아티스트 듀오다. 스테픈 초우는 자신이 미국 뉴욕에서 본 노숙자와 인도 콜카타에서 본 노숙자를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뉴욕에서 가난한 것과 콜카타에서 가난한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심도 깊은 조사가 필요했다.

작업의 시작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우 앤드 린은 빈곤의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빈곤선이라는 개념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를 시각화할 수 있는 소재로 음식을 택했다. 어느 나라에 살더라도 어떤 언어를 쓰더라도 대체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선 베이징의 시장에서 빈곤선(당시 3.28위안, 약 0.49달러)으로 구매할 수 있는 빵 6 조각, 야채 한 묶음, 닭 가슴살 1개, 바나나 3개 등을 사서 촬영한 후 자신들의 계정에 올렸다. 예상보다 많은 반응이 있는 가운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러시아 사람들의 흥미로운 반응이 많았다. ‘이렇게 신선한 빵과 야채를 살 수 있다고?’ ‘러시아의 빈곤이 어떤지 상상도 못 할 것이다’라는 이들의 반응을 보며, 초우 앤드 린은 빈곤의 의미가 나라마다 매우 다른 양상일 수 있다는 점을 체감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전 세계의 다양한 빈곤 수준을 보여주기 위해 전 지구적인 프로젝트에 돌입하여 10여 년간 6개 대륙의 36개국에서 작업을 이어갔으며, 그 결과를 ‘빈곤선(The Poverty Line·2021)’에 담았다. 

우선 경제학자인 린은 국가에서 제공하는 연례 보고서를 기반으로 빈곤선에 사는 사람의 일일 지출에 근거하여 해당 금액으로 구입할 수 있는 일일 식량 예산을 계산했다. 사진가인 초우는 예산에 따라 지역의 슈퍼마켓이나 시장에서 식료품을 구입했다. 바나나, 달걀과 같이 전 세계에 거의 보편적으로 있는 음식부터, 프랑스의 바게트나 한국의 김치와 같이 지역성이 있는 음식도 선별했다. 식료품을 구입한 날과 동일한 날에 발행된 신문도 구입하여 호텔 방으로 돌아와 촬영을 진행했다. 어느 나라에서든 지면과 카메라 간에 동일한 거리가 되도록 그리고 조명을 비슷한 조건으로 세팅했다. 국가마다 1~2주가량 소요되는 작업이었다. 

그 결과, 한 장의 사진에는 한 장의 지역 신문을 배경으로 한 사람이 하루에 융통 가능한 한 가지 종류의 음식이 단순화된 양식으로 담겼다. 비슷한 촬영 조건을 유지한 결과 음식의 양을 즉각 알아볼 수 있으며, 이미지 간 비교도 용이해졌다. 에티오피아에서는 0.67달러(2019년 기준)로 4개의 달걀 혹은 4개의 바나나를 살 수 있고, 한국에서는 2.15달러(2012년 기준)로 20개의 달걀 혹은 4개의 바나나를 살 수 있으며, 노르웨이에서는 12.26달러(2014년 기준)로 36개의 달걀 혹은 15개의 바나나를 살 수 있다. 나라마다 빈곤선으로 설정된 소득이 얼마인지, 어떤 방식으로 빈곤선을 설정하는지, 빈곤율은 얼마인지 등의 관련 데이터도 수록했으며, 책의 후반부에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구할 수 있는 달걀, 사과, 옥수수, 인스턴트 누들, 바나나, 토마토, 오레오, 가금류, 돼지고기 9종류의 식품에 대해 생산과 유통의 변화, 가격과 소비의 변동을 분석한다.

음식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신문은 사진마다 지역적 맥락을 부여해준다. 언어적 접근성 문제로 모든 기사의 내용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신문마다 담겨 있는 발행 날짜, 글, 광고, 보도 사진 등 수많은 정보를 독자는 부분적으로 마주하고 해독한다. 그 결과 특정 지면과 음식이 만나 예상치 못한 상호작용을 한다. 미국 신문 지면에 실린 휴가용 저택에 대한 기사 위에 말린 핀토콩 더미가 놓여 있고, 한국 신문 지면에 실린 싸이의 글로벌 성공 위에 김치가 놓여 있으며, 일본의 성인 신문 위에는 술안주용 과자가 놓여 있다. 

이러한 신문과 음식의 결합은 독특한 인상을 준다. 이차원으로 인쇄된 신문 위에 삼차원의 실제 음식을 두고 촬영함으로써, 세계는 오히려 신문지면 속에 납작하게 전시되고 음식은 입체적인 형태로 생생하게 담겨 있다. 또한 총 432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신문 지면을 연상케 하는 얇은 비코팅 종이를 사용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매일 발행되는 신문 속에서 세계는 무심히 흘러가고 해결되지 않는 빈곤의 문제는 계속된다는 인상을 남긴다. 

초우 앤드 린은 말한다. “우리는 보는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 흥미로운 장면을 만들어냈고, 이때 가장 중요한 핵심은 글로벌 빈곤을 시각화해내는 것이었다. 이것이 사진과 예술이 가진 힘이다. 복잡하고 심지어 우울한 전망을 하게 할 수도 있지만, 이 작업은 우리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대화의 장으로 독자를 이끌 것이다.” 

‘빈곤선’은 예술과 경제학이 만나 어떤 형태의 작업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경제적 데이터를 다루는 경제학자와 시각적 표현에 능통한 사진가가 만나, 현실에 기반한 초국가적 비교로 독자를 이끈다. 독자는 풍부하게 야채를 구입할 수 있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 빈곤선이 높게 책정되어 많은 음식을 융통할 수 있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 등을 비교하게 되며,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매우 다르다는 사실 그리고 일부 국가에서 설정한 빈곤선은 살기 힘든 수준임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는 데이터와 텍스트로만 제시되었을 때에는 가능하지 않았을 많은 관객을 빈곤에 관련된 담론의 장으로 초대한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