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윌 스미스(오른쪽)가 3월 27일(현지시각) 미국 LA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우 겸 코미디언크리스 록의 뺨을 때리고 있다. 사진 AP연합
배우 윌 스미스(오른쪽)가 3월 27일(현지시각) 미국 LA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우 겸 코미디언크리스 록의 뺨을 때리고 있다. 사진 AP연합

음치에 박치인 나는 가수 뺨치는 가창력을 가진 친구들을 보면 무척 부럽다. 멋진 목소리로 마이크를 들고 좌중을 압도하는 모습은 음치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알다시피 ‘뺨치다’라는 말은 어떤 재주나 능력이 남을 능가하거나 압도적일 때 하는 말이다. 

뺨을 치는 문제가 이런 추상적인 묘사가 아니라, 일상에서 물리적으로 행사된다면 어떻게 될까. 얼마 전 미국 LA에서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어떤 배우가 시상자의 뺨을 치는 일이 일어났다. 주인공은 당일 남우주연상을 받은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 윌 스미스. 그는 시상식 도중 시상자로 나온 코미디언 크리스 록의 농담에 격분한 나머지 단상으로 올라가 크리스 록의 따귀를 날렸다.

크리스 록은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의 삭발을 비꼬았다. “제이다! 나는 ‘GI 제인 2’를 기대하고 있어요!” 

영화 ‘GI 제인’은 미 해군 최고의 특수부대인 네이비 실 양성 과정에 여군이 입교한다는 내용을 다룬 전쟁 드라마다. 여기서 주인공 조던 오닐 대위로 나온 데미 무어는 극 중에서 고된 훈련을 받는 중에 삭발까지 감행한다. 크리스 록은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스미스의 삭발한 모습을 영화 속 데미 무어의 모습에 견주면서, 그 영화의 2탄 개봉을 기대한다는 농담을 한 것이다. 

문제는 제이다 스미스의 머리가 스타일링 차원에서 한 것이 아니라는 것. 제이다는 모종의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고 그 바람에 탈모증이 생겨 부득이 삭발을 한 상태였다. 윌 스미스의 친구이기도 한 크리스 록이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코미디언으로서 뭔가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선을 넘게 했을 것이다. 

제이다 스미스는 크리스 록의 말을 듣자마자 낯빛이 확 변했고 어이없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저 일과성 농담으로 웃고 넘어가려던 윌 스미스는 이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는 곧장 단상으로 올라가 크리스 록의 뺨을 후려갈겼다. 불륜을 다룬 한국의 TV 아침 드라마에서 자주 보이는 막장 드라마 같은 모습이 전 세계에 생방송 된 것이다. 

영장류학자이자 동물행동학 전문가인 데스먼드 모리스에 의하면 ‘뺨 때리기(cheek slap)’는 이중의 전통이 있다. 원래 뺨 때리기는 어떤 남성이 다른 남성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고전적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반갑지 않은 남성이 관심을 보일 때 보이는 숙녀의 전형적 행동이다. 

남성이 결투를 신청하면서 다른 남성의 뺨을 때리거나, 여성이 스토커를 거절하는 의미로 남성의 뺨을 때리는 것은 모두 가벼운 폭력에 해당한다. 뺨 때리기는 소리는 요란할지 몰라도 실제로 입는 신체적인 상해는 그리 심하지 않다. 우리 몸에서 가장 부드러운 피부에 속하는 뺨은 한 대 맞고 나면 얼얼해지면서 발갛게 부어오를 뿐이다. 

뺨 때리기는 맞은 사람의 즉각적인 반격을 유발하지 않는 가벼운 공격에 속한다. 인류학자들은 이를 ‘과시용 타격(display-blow)’이라 부른다. ‘보여주기용 한 방’이라는 말이다. 이런 과시형 타격은 ‘성경’에도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복음 5장39절).”

융 심리학자인 안셀름 그륀에 의하면 유대인에게 ‘뺨 때리기’는 폭력의 표시가 아니라, 명예의 훼손을 뜻한다. 그륀은 말한다.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거나 가해자에게 폭력으로 보복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륀의 말을 뒤집어보면, 많은 사람이 자기의 권리 혹은 훼손된 명예를 지키기 위해 가해자에게 폭력으로 보복하는 경우가 잦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성경에서도 그러한 보복성 행동을 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 아니겠는가. 

크리스 록의 도발적인 조롱과 이에 격분한 윌 스미스의 뺨 때리기 행동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끼리 으레 있을 수 있는 수준이겠거니 했는데, 미국 현지 반응을 살펴보면, 한국인의 반응과는 상당한 차이가 느껴진다. 

미국의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윌 스미스의 뺨 때리기 행동이 적절했다(17%)는 의견보다 부적절한 폭력 행사였다는 여론(83%)이 압도적이다. 반면 크리스 록의 조롱에 대해서는 도를 넘었다는 의견(38%)에 비해 용인할 만한 수준이었다는 의견(62%)이 훨씬 많다. 아카데미상 주최 측에서도 “어떠한 형태의 폭력도 용인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냈다. LA 경찰 당국도 크리스 록의 동의만 있다면, 즉각 윌 스미스를 체포할 용의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미국처럼 설문 조사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소셜미디어(SNS)상의 반응을 종합해보면, 대체로 ‘크리스 록의 발언이 도를 넘었다’ ‘왜 아픈 사람을 걸고 넘어가나’ ‘자신의 아내가 공개석상에서 모욕을 당하는데 남편이 가만있어야 하나?’ 등의 의견이 많은 것 같다. 


심각한 언어폭력 문제 

나도 필시 전형적인 한국인인 모양이다. 격노한 윌 스미스의 행동이 결코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옹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윌 스미스가 크리스 록을 마구잡이로 폭행했다거나 흉기를 들고 난자한 것도 아니다. 명예훼손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보여주기용 한 방’을 선보인 것을 두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윌 스미스만을 매도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크리스 록은 강렬한 언어폭력으로 한 가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힌 가해자다. 윌 스미스의 뺨 때리기에는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크리스 록의 언어폭력에 대해서는 코미디언이 그 정도도 말 못 하냐는 식으로 어벌쩡 넘어가는 모습은 공평한 판단이 아니다. 게다가 크리스 록은 남을 헐뜯거나 시비를 거는 식의 말로 설화(舌禍)를 일으킨 전력이 꽤 있는 일종의 ‘전과자’이기도 하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심각한 언어폭력’으로 입는 상처와 폐해가 ‘가벼운 물리적 폭력’으로 입는 그것보다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다. 한 발짝 양보하더라도 이것은 명백한 쌍방 폭력이고 일종의 정당방위인데, 마치 일방적인 폭행인 양 얼버무리며 몰아가는 것도 부조리하다.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에 의하면 공격적인 행동에는 타인의 공격에 대한 방어를 위한 공격도 포함된다. 또한 다른 잠재적인 공격자를 억제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가만히 앉아 속수무책으로 당할 때 입을 명예손상을 막아주기도 한다. 

통상 자신의 지위가 위협을 받으면 공격성을 관장하는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높아지면서 공격적인 반응을 촉진한다. 아닌 말로 아내가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조롱을 당하는데도 남편이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그 또한 정상적인 행동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이번 사건으로 크리스 록처럼 공개석상에서 남의 아픈 상처를 가지고 함부로 입을 놀리다가, 나중에 농담이라고 우기는 일은 없어질 것 같다. 윌 스미스 역시 이번 사건에 대해 깊이 뉘우치고 사과했으니 나름대로 새로운 인격 성숙의 계기가 될 것 같다. 

그날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시상식 현장에 있던 배우 덴젤 워싱턴이 후배 윌 스미스에게 했다는 말이 인상 깊다.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공인이자 월드 스타인 윌 스미스가 대선배의 충고를 각별히 새겨듣기를 바랄 뿐이다. “네가 가장 높이 있는 그 순간을 조심해! 그때 악마가 찾아오니까 말이야.”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