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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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 대한 소설이라면 일찍이 김애란의 ‘나는 편의점에 간다’가 있었다. 김애란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집 ‘달려라, 아비’에 수록된 이 단편소설은 2003년의 서울을 배경으로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상기하는 도시의 익명성을 침착하게 묘사하는 작품이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 많게는 하루에 몇 번 적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편의점에 간다. 그러므로 그사이 내겐 반드시 무언가 필요해진다.” 

필요한 게 있어서 편의점에 간다기보다는 편의점에 가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생긴다는 말처럼 들린다. 편의점은 나보다 앞서 ‘나’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곳이지만 ‘나’는 그저 수많은 소비자 중 한 명일 뿐. 편의점은 ‘나’를 모른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자신을 알 거라는 생각이 혼자만의 착각임을 알게 됐을 때 ‘나’의 겸연쩍음과 수치심은 절정에 달한다. 김애란은 편의점을 가리켜 “기원을 알 수 없는 전설처럼” “시치미를 떼고 앉은 누군가의 정부처럼, 혹은 통조림 속 봉인된 시간처럼” 왔다고 쓴다. 편의점은 부지불식간에 도시의 주인이 되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신에게 종속시킨다.

이후에 한 편의 인상적인 ‘편의점물’이 더 있었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편의점 인간’이라는 중편소설이다. 일본 문학잡지 ‘문학계’ 2016년 6월호에 처음으로 실린 이 작품은 같은 해 7월에 일본 분게이슌주에서 출간됐고 한국에서는 같은 해 11월에 출간됐다. 그만큼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던 소설로, 그럴 만한 요소들이 많기도 했다. 작가인 무라타 사야카가 소설의 내용처럼 18년 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력이 있었을 뿐 아니라 소설 속 인물들이 추구하는 삶이 편의점 진열대처럼 무표정했기 때문이다. 연애에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편의점에서 매뉴얼대로 일하듯이 인생도 그렇게 매뉴얼대로 진열되기를 바라는 무생물적인 특징들. 김애란의 편의점이 도시의 익명성을 드러내는 공간이었다면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은 체화된 익명성, 즉 인격화된 편의점을 드러냈다. 편의점 같은 인간 말이다. 

대한민국은 편의점 공화국이다. 사회학자 전상인 교수의 ‘편의점 사회학’에 따르면 한국은 편의점의 최초 발상지인 미국은 물론이고 편의점의 최대 발흥지인 일본과 대만을 제치고 인구 대비 편의점 수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는 용도로서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세탁과 택배 업무 등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의 범위도 늘어나고 있는 편의점은 한국 사회의 새로운 축도이자 도시 생활의 단면으로 간주된다. 

축도이자 단면으로서 기능하는 편의점의 다양한 ‘편의’들에 대해 저자는 질문한다. 사람들을 소비주의 사회에 길들이는 데 편리하고,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편입시키는 데 편리하며, 사회 양극화 심화를 가리는 데 편리하다면, 이는 과연 누구를 위한 편의이고 무엇을 위한 편리인가? 

그래서 등장한 편의점이 ‘불편한 편의점’이다. 2021년부터 지금까지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은 서울 청파동 주택가에 자리한 작은 편의점이다. 그간의 편의점 서사가 편의점과 ‘나’라는 일대일 관계에 좀 더 집중했다면 편의점을 둘러싼 다양한 관계들을 옴니버스처럼 보여 주는 이 소설은 계약 관계, 노동, 양극화 등 여러 사회 문제를 새하얀 조명 아래 펼쳐 놓는다.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은 다양한 사람들이 꾸려가는 생계의 수단이다.

그중 한 에피소드인 ‘밤의 편의점’에 등장하는 근배는 한때 이곳의 야간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서울 소재 대학의 지방 캠퍼스에 추가 합격해 간신히 대학생이 된 근배는 등록금 이외 생활을 직접 꾸려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생활비도 떨어지고 에어컨 없는 옥탑방의 여름이 두렵기도 했던 근배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선택한다. 주휴수당을 주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점장의 말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수락한다.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낮에는 꿈을 이루기 위해 탐색한다. 근배의 꿈은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배우가 되고 싶은 근배에게 ‘직원 겸 배우’라는 일자리가 주어진다. 월급은 80만원이고 휴일은 따로 없으며 공연을 준비하며 온갖 일을 다 처리하는 일이다. 어쩐지 익숙하다. 야간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도 들었던 말이 아닌가. 주휴수당은 주기 어려울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겠냐고. 

편의점에서 함께 일하던 근배의 선배는 편의점을 백화점과 비교한다. 백화점이 백 개의 상품을 파는 곳이라면 편의점은 만 개의 상품을 파는 만화점이라고. 백화점 직원은 자신이 맡은 상품만 팔면 되지만 편의점은 그 모든 물건을 한 사람이 다 팔아야 한다고. ‘밤의 편의점’은 근배와 함께 숨 쉬는 밤의 편의점을 비추며 끝난다. 편의점은 한밤중에도 숨을 쉰다. 그런데 그 편의점의 호흡을 위해 누군가는 부족한 호흡을 참고 있지 않을까. 

나는 이 마지막 장면에서 근배의 숨쉬기를 걱정한다. 편의점의 불편함에 대해 생각해 본다.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평론 당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젊은 평론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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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

김호연. 사진 연합뉴스
김호연. 사진 연합뉴스

2013년 ‘망원동 브라더스’로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망원동 브라더스’를 비롯해 ‘연적’ ‘고스트라이터즈’ ‘파우스터’ ‘불편한 편의점’이 있고 산문집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가 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웃의 삶에서 현대 사회의 속성과 관계를 통찰하는 ‘불편한 편의점’은 2021년 예스24 올해의 책, 밀리 독서 대상 올해의 오디오북에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