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는 영국의 정치사상가 토머스 모어가 그의 라틴어 저작 ‘유토피아(1516년)’에서 처음 사용했다. 사진 영국국립도서관
유토피아는 영국의 정치사상가 토머스 모어가 그의 라틴어 저작 ‘유토피아(1516년)’에서 처음 사용했다. 사진 영국국립도서관

내 고향 경남 하동에는 청학동(靑鶴洞)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지리산 해발 800m 고지에 자리한 까닭에 사람들은 이 마을을 ‘지리산 청학동’이라 부른다. 신흥종교인 ‘갱정유도(更定儒道)’의 교인들인 도인들이 모여 산다고 해서 ‘도인촌(道人村)’이라고도 한다. 6·25전쟁이 났을 때 이들이 집단으로 피란을 오면서 생겨난 마을이라고 한다. 하동 읍내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일반인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심심산골의 요새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도연명의 문학작품 속에 나오는 전설 같은 곳이긴 하지만, 동양적인 유토피아(Utopia)의 대명사인 무릉도원(武陵桃源)도 사실은 이렇게 전쟁을 피해서 찾아간 피난처에서 유래한 것이다.

유토피아는 영국의 정치사상가 토머스 모어가 그의 라틴어 저작 ‘유토피아’에서 처음 사용했다. 유토피아는 라틴어로 ‘없다’는 뜻의 ‘ou’와, 장소를 뜻하는 ‘topos’가 합쳐진 말이다. 혹은 ‘좋다’는 뜻의 ‘eu’와 ‘topos’의 합성어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좋은 장소’다. 서양에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파라다이스(paradise)라고 하는데 유토피아도 비슷한 말이다. 유토피아의 반대말은 디스토피아(dystopia)다. 

우리 인류는 아주 먼 옛날부터 파라다이스를 꿈꾸어 왔다. 유토피아를 다룬 이야기는 동서고금에 수두룩하다. 황금시대, 에덴동산, 무릉도원은 물론이고,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에 나오는 ‘율도국(栗島國)’도 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톰마소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 프랜시스 베이컨이 창안한 ‘새로운 아틀란티스’를 비롯해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년’ 역시 모두 유토피아의 범주에 든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유토피아를 찾아 헤매는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민초들에게 삶은 늘 고단했고 현실은 언제나 신산(辛酸)했다. 그들에게 세상은 원래 고통스러운 디스토피아일 뿐이었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맘껏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현대인은 모른다. 일부 지배계층을 빼고 민초들에게 인생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고달픈 여정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루마니아 출신 철학자 에밀 시오랑은 말한다. “에덴의 기억이나 예감이 없다면, 숨을 쉬는 것도 형벌이다.” 에밀 시오랑은 먼 옛날 천지가 창조되고 인류가 처음 생겨나 복락을 누리던 에덴동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속의 소망조차 없다면, 사람들은 가혹한 현실을 더욱 견디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대국 러시아와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종전의 꿈이라도 없다면 그들에게는 지금 그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그 땅이 바로 지옥일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모든 것의 종말이 오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으리라!” 디스토피아의 민초들은 그래서 가혹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고 절규하게 된다. 그들은 차라리 이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한다. 세상의 종말이 오고 그리하여 새로운 하늘과 땅이 열렸으면 하는 강한 꿈을 꾸는 것이다.

양순한 농민들이 무슨 까닭에 폭도가 돼 일어나는 것일까.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농민들의 삶은 나날이 피폐해졌다. 가뭄과 기근 등으로 농업 생산이 줄어들면서 정부 재정도 궁핍해진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타개할 어떤 방안도 강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의 재정을 세금의 확충으로만 메우려 들었다.

조세 부담이 가중되는 가운데, 국가의 기강이 무너졌다. 만연해진 관리들의 부정부패는 징세 과정에서의 중간 수탈로 이어져 농민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19세기 말 조선 땅 각지에서 민란(民亂)이 일어난 배경이다. 그 자리에 있다가 굶어 죽으나, 싸우다가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일 때 민란은 일어난다. 

조선 말의 동학 농민 운동봉기만 그런 게 아니다. 춘추전국시대의 분열을 수습하고 최초로 대륙을 통일한 진시황이 죽자, 다음 해 진승과 오광의 반란이 일어났다. 제국의 가혹한 탄압에 저항하는 반란이었다. 한 고조 유방이 세운 한나라 조정도 말기에 들어서자 파탄이 났다. 외척과 환관이 발호했다. 농민들은 각종 세금과 부역에 시달린다. 정부 관료들의 노골적인 매관매직은 지방 호족들의 토지 수탈로 이어진다. 서기 184년 황건적(黃巾賊)의 난이 일어난 배경이다.

사자에게 쫓기다 사지에 몰린 하이에나는 사자에게 달려든다. 철창 안에 갇혀 죽게 생긴 쥐는 뱀을 문다. 동학 농민 운동이나 황건적의 난이나 본질은 매한가지다. 이 참담한 디스토피아를 견디느니, 목숨을 걸고 현실 속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싶은 것이다. 민초들은 끊임없이 유토피아의 꿈속에서 산다. 에밀 시오랑의 말처럼 그런 꿈조차 없다면 이 세상에서는 ‘숨을 쉬는 것도 형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민초들의 꿈을 대변해 주는 지식인들이 유토피아를 배경으로 하는 책을 쓴다. 도대체 어떤 성향의 사람들이 유토피아론을 설파하는 것일까. 토머스 모어는 귀족 출신이다. 그는 옥스퍼드대에서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를 전공하고, 법률가를 꿈꾸며 법률을 공부했다. 그러다 종교에 심취하여 10년간 수도사 생활을 한다. 나중에 다시 세상으로 나와 런던시 사정장관보, 대법관 등을 지낸다.

주경철 서울대 교수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이렇게 말한다. “현실 정치가로서 현실 문제에 직면한 지식인의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부유한 귀족의 아들이 현실 정치에 뛰어들기 전에 10년간이나 종교에 심취했다가 환속(還俗)했다는 사실에 나는 주목한다. 그는 말하자면 파계승(破戒僧)이다. 현실 정치에 뛰어든 파계승‚ 이채롭지 않은가. 

또 다른 유토피아인 ‘태양의 나라’를 고안한 캄파넬라는 가난한 구두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는데, 나중에 점성술에 심취한다. 특히 에스파냐의 지배하에 있던 자기 고향(이탈리아 남부)의 독립을 위한 봉기에 직접 참여한다. 그러다가 반역과 이단죄로 체포돼 27년간이나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의 ‘태양의 나라’도 감옥에서 만들어졌다. 독립운동을 하다 감옥에까지 갇힌 캄파넬라에게 현실은 이중의 디스토피아였을 것이다. 감옥 속에서 ‘태양의 나라’라는 꿈이라도 꾸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 문신 허균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의병장이 되어 분연히 떨쳐 일어났다. 그는 엄격한 유교 사회였던 조선에서는 보기 드물게 자유분방하고 파격적이어서 ‘조선 천지의 괴물’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는 광해군 시절 인목대비의 암살을 기도하다가 역적으로 몰려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진다. 이런 과격할 정도로 자유로웠던 그의 성정이 탐관오리가 없고, 적서차별이 없는 율도국이라는 이상향을 꿈꾸게 하지 않았을까.

유토피아는 사회제도를 통해 인간의 본능을 통제해 실현하려는 이상사회를 말한다. 토머스 모어는 사유재산과 화폐를 폐지하고, 공동체 전체가 하나의 대가족처럼 절제하고 통제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캄파넬라도 이렇게 말한다. “모든 소유 관념은 인간이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자기 처와 자식을 가지는 데서 발생한다. 바로 이것이 이기주의의 원천이다.” 말하자면 유토피아는 본능을 추구하는 이상향이 아니라, 본능을 억제하는 이상향인 것이다. 

나는 여기서 심리학자로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과연 유토피아는 실현 가능한가. 인간의 본성을 통제하는 것이 옳은 것이며 가능한 것인가. 사람들이 자신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려는 본능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살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그런데 이런 본능을 근본적으로 부인하고, ‘개인적인 절제’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통제’를 강제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게 가능하다손 치더라도 그 부작용은 또 어찌할 것인가. 동서고금에 유토피아론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쓰여지면서도 그들이나 그들의 상상력이 부단히 불온(不穩)하게 취급을 받는 까닭이 여기 있을 것이다.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