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갈 2023년의 세상은 어떻게 펼쳐질까? 지난해 ①취약한 항상성 ②재촉된 혁신 ③각성된 자아를 키워드로 제시했던 빅데이터 분석 회사 바이브컴퍼니 부사장 송길영은 올해 우리가 특별히 기억해야 할 키워드로 다음 세 가지를 꼽았다.
①유리한 다양성 ②관계의 돌봄 ③건강한 긴장. 2022년의 우리가 유튜브 스승과 인공지능(AI) 비서를 둔 ‘각성된 개인’이었다면, 각성을 마친 2023년의 우리는 더 진화했다. 다른 종, 다른 문화와 주도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네트워크 그 자체’로서의 ‘나’다. 모든 것은 ‘관계’에서 출발해서 ‘태도’로 수렴한다.
올해부터 사라지고 벗겨지는 것은 ‘한국 나이’와 ‘마스크’가 아니라 나이 그 자체와 위계적 매너가 될 것이다. 닫힌 시장을 여는 창조의 꼭짓점은 바로 약점들! 시장의 소중한 파트너인 장애인과 소수자를 연구하고 고구마 줄기처럼 들려 나오는 배려의 기술을 캐내야 한다.
중요한 엔진은 ‘환대’다. ‘잠시 같이 있을 뿐!’ 서로를 손님으로 생각하는 공동체 문화에서 조직은 딱딱한 구조물이 아니라 점점 더 낯선 물류와 문화가 오가는 ‘환승장’일 뿐. 관계의 유닛과 질서가 계속 바뀌고 재조립되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은 ‘역지사지’보다 출렁이는 ‘갑을의 역동성’ 안에 있게 된다.
‘선을 행하되, 선은 지켜야 하는’ 극한 배려 사회가 왔다. 우리는 갈등의 맥락을 재배치하는 더 나은 언어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인가. 20년 이상 디지털 발자취(동영상과 이미지, 소셜미디어(SNS) 뉴스 피드와 커뮤니티 댓글까지)를 추적해 온 사려 깊은 마인즈 마이너(Minds miner) 송길영을 만났다. 그는 ‘경제 한파에 위축되지 말고, 몸을 낮춰 업의 유동성이 주는 기회를 기다리라’고 조언한다.
본격적으로 올해를 관통하는 세 가지 키워드를 뽑아 달라.
“첫째 유리한 다양성, 둘째 관계의 돌봄, 셋째 건강한 긴장이다.”
다양성과 포용성은 최근 몇 년간 지속적인 화두였다.
“올해 그 효율이 극대화할 거다. 풀이 풍성하려면 재료를 충분히 수용해야 한다. 오와 열을 맞추던 폭력적 강박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구성원이 다양하냐? 소수자 배려 문화가 있느냐?’ 이 질문이 시혜 강요나 사회적 책무가 아니다. 장애인이나 남녀 비율로 조직의 형질을 변화시키는 게 생존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가령 ‘조직에 외국인 인사 룰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우린 외국인이 없어서 괜찮다’고 하면 심각한 상황이다. 디폴트가 균질이니, 새로운 유입이 막힌 거다.”
주변에 다른 인종, 종교, 성, 연령이 안 보이면 문제를 인식해야 하나.
“Seeing is believing(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소비자가 분화되면 사려 깊은 풍요가 요구된다. 그 솔루션은 다양성에서 온다.”
저성장 시대에도 소비는 멈춤 없이 계속될까.
“물론. 검색할수록 섬세한 풍요의 세계가 펼쳐진다. ‘짠테크’로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고 섬세한 풍요에 집중한다. 그럼 기업은 어떻게 가야 할까. 이본 쉬나드(파타고니아 창업자)는 부자에 링크되는 걸 경계했다. 소비자의 선한 의지로 모인 돈을 선하게 돌려줬다. 돈이 목표면 오래 못 간다. 소비 세계는 더 깊어질 거다. 소비자도 기업가도 서로를 숭고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올해 목표는 5조원 달성!’, 이러면 서로의 누추함에 실망한다.”
확실히 찐빵 하나를 팔아도 거리의 체온을 덥힌다는 마음이 필요한 듯하다. 안타깝지만 실물 경기는 2023년에 극한 굶주림이 올 거라고들 예상하는데.
“대세는 어렵다. 조직은 더 어렵다. 경기는 늘 업 앤드 다운(Up and Down)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경쟁력이 있다. 역사는 확장과 수렴을 반복해 왔다. 수렴의 시대엔 견고한 모드로 한번 더 생각하고 본원 경쟁력을 가다듬어야 한다. 우리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도, 2008년 외환 위기도 잘 건너왔다. 가상 자산도 ‘영끌’의 아픔도 다 지나간다. 게다가 닥쳐보면 걱정만큼 굶주리지 않는다. 돌봄에 더 신경 쓰면 함께 버틸 수 있다.
여기서 두 번째 키워드인 ‘관계의 돌봄’으로 들어가야 한다. ‘서로가 소중한 손님’이라는 태도가 몸에 배야 한다. SF 영화 보면, 중간 기착지에 가면 온갖 생명체가 오가잖나. 항구에 가면 다양한 복식이 보이는 게 좋다. 회사도 항구처럼 ‘잠시 같이 있는 환승장’이 될 거다. 위도 아래도 ‘척을 지면’ 안 된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이제 시간이 되었어요!’ 점점 쿨한 안녕이 많아진다. 있을 땐 위계 없이, 떠날 땐 원한 없이. 회자정리 거자필반. 만나고 헤어지고, 떠났다 돌아온다.”
그야말로 갑을의 역동성이로군.
“결국 예의가 표준이다. 처음부터 위아래 구분 안 하는 게 실수가 없다. 예의 바르고 싹싹하면 어디서든 도움 받는다. 한국 사회는 난폭한 시절을 지나왔다. 지금도 식당 가면 후배들이 수저 놓고 주문받잖나. 짬밥 순서대로 앉아 있고, 누워 있는 군대 내무반처럼. 이제 그만 하시라! 제발 몇 살인지 묻지 마시라!”
그럼 뭘 묻나.
“관찰하라. 상대가 어떤 걸 좋아할지.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 같은 오지랖 충고는 ‘수요 없는 공급’이다. 마음속으로 나이를 지우고, 존대하라. MBTI도 ‘나 이런 사람이니 살펴 달라’는 신호잖나. 함께 일하는 건 정말 소중한 인연이니, 상처를 안 입히는 게 최선이다.”
대기업 조직은 이런 변화에 잘 대처하나.
“조용히 탐문 중이다. 입사 1년 6개월 안에 절반이 나가는 상황이다. 빨리 대처해서 더 나은 조직 문화를 만들면 성공이고 아니면 속수무책으로 인재를 잃는 거다. 이런 흐름은 모두 건강한 자기 결정권으로 귀속된다.”
이제 각성된 자아는 도구로 쓸 수 없다.
“여기서 세 번째로 대두되는 것이 건강한 긴장이다. 서로 안 맞으면 자유의지를 기반으로 분자처럼 떠나간다. 상대는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주말 골프 불러내고 술잔 강권하는 김 부장은 안색 어두운 김 대리에게 ‘집에 무슨 일 있냐’고 자상한 척 묻지 마시라. ‘너 때문이다(웃음).’ 사표를 품고 다녀도 대안 없으면 못 꺼낸다. 유동성이 큰 시기니 N잡 모색으로 뗏목을 만들어놔야 김 부장이 술잔 돌리면 나갈 수 있다.
치앙마이 가서 1인 신문사를 차릴 수도 있는 시대다. 코로나19 이후 네이버는 출근 이슈가 나와서 전체 찬반 투표를 했다. 재택 결정 후에도 어떤 사람은 매일 나왔다. 단지 ‘커피가 맛있어서.’ 하지만 출근이 룰이 되는 건 ‘NO!’다. 규칙 강요는 싫다는 거다. 9시에 나와서 6시에 가라고 강요하면 열정 없는 ‘조용한 파업’을 한다. 못 믿는 조직은 규칙을 정하고, 믿는 조직은 역할을 준다. 모든 게 체인 리액션이다. 진심을 다하고 성과를 존중하면 같이 갈 수 있다. 프리라이더(무임승차자) 못 거르고, 보상 제대로 안 하면 ‘네가 행복한 게 싫어’라는 신호다.”
이젠 모두가 온라인에 글을 쓰는 작가이자 마케터로 도약하는 분위기다. 브랜딩을 위한 개인의 도전은 계속될까.
“점점 더 조예가 깊은 사람, 깊게 판 사람이 브랜드가 되고 미디어로 성장한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조예가 다르다. 지금 같은 추세면 매스 미디어는 더 힘을 잃는다. 중학교 2학년을 대중의 표준으로 삼는 것, 그 자체가 구시대적이다.”
매스 미디어의 파워는 점점 더 미미해지겠군.
“매스는 의미가 없다. 전 국민이 보던 지상파 3사는 이제 힘을 잃었다. 예전엔 신문 1면에 나오면 빅뉴스라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이젠 아니잖나.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도 디지털에서 깊이를 만들었기에 장수 코너가 된 것 아닌가. 대중에게 다 주려고 하지 말고, 처음부터 깊은 걸 쓰고 관계와 믿음으로 확장해야 한다. 시장이 이런 상황이 되면, 먼저 한 사람이 유리하다. 진정성이 있으니까. 겉으론 다 비슷해 보이는 장충동 족발 골목에 가도 사람들은 ‘since’를 본다. 원조와 역사를 파악하는 거다. 그래서 나도 중요한 어젠다를 발견하면 기고부터 먼저 한다. 내가 처음으로 했구나, 이정표를 찍어두는 거다.”
경제 한파가 몰아칠수록 문화적으로 성숙해지는 모습이 놀랍다.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를 비롯해서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했던 경계인의 서사, 마이너리티 디자인이 뜨고 있다. 오랜 설움 속에서 ‘돌봄의 천연자원’이 깊게 발효된 것 같다.
“좋은 표현이다! 게다가 경계인은 양쪽 문화를 다 들여다보며 통역자 역할을 할 수 있잖나. 파이프라인이 될 수 있으니 역할이 점점 커질 거다.”
소셜미디어, 정치, 언론 등 갈등 산업은 어떤 형태로 변화할까.
“최근에 개봉한 ‘양자경의 더 모든 날 모든 순간’이라는 영화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할 수 있는 한 항상 친절해야 돼.’ 그동안 분열과 갈등으로 파이를 키워온 ‘소셜 산업’은 이제부터라도 그 자극의 고리를 끊고, 소통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치와 미디어는 앞으로 상호 이해를 위한 맥락 산업으로 발전해야 답이 있다. 가령 ‘부장이 힘들게 해도’, 그가 군사 문화와 가부장제 아래 상처받은 사람이라는 스토리가 파악되면 이해의 틈이 열리잖나. 이유를 알면 유연하게 풀어갈 수 있다.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타자화’다. 관찰해서 더 포용적인 어휘를 만들어내는 집단이 미디어의 주도권을 잡을 거다.”
언어를 다루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라면 특별히 오해의 거리를 줄이는 사려 깊은 은유, 타인을 향한 손잡이가 달린 어휘를 훈련해야 할 듯싶었다.
저커버그의 메타버스와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는 어떻게 될까.
“그들은 자신의 이상향에 다가가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다할 거다. 함께 믿으면 미래고, 그 사람만 믿으면 시도다. 그 시도의 합이 공감이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들은 본인의 소명을 다할 거다.”
모두 어떤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면 될까.
“그 누구도 타인의 생살여탈권을 함부로 쥘 수 없다는 마음! 엄청난 유동성의 시기다. ‘다른 사람이 움직이면 곧 내게도 기회가 오겠구나’, 이 정도 희망의 마음으로 준비하라.”
마지막으로 2023년을 위한 단 하나의 생존 키워드를 제시해 달라.
“배려다. 배려 없는 인간은 자동 배제될 거다. 행동하기 전부터, 말하기 전부터, 준비하고 타인의 기색을 살피라. 구독경제, AI도 타인의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한다. 욕망이 커진 만큼 배려도 지능화하고 있다. 관계도 기계와 경쟁하는 거다. 결국 섬세한 조직, 세심한 자가 살아남는다.”
▒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전 보그코리아 피치디렉터,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