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대공황과 1970년대 오일쇼크 등 대규모 금융위기를 몇십 년에 한 번꼴로 겪으면서도 우리는 왜 매번 경제위기를 되풀이하는 걸까. 사진 셔터스톡
1929년 대공황과 1970년대 오일쇼크 등 대규모 금융위기를 몇십 년에 한 번꼴로 겪으면서도 우리는 왜 매번 경제위기를 되풀이하는 걸까. 사진 셔터스톡

조선일보 2016년 3월 11일 자 신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도쿄 특파원이 쓴 동일본대지진 5주년 현지 탐방 기사가 실렸다.

“도쿄에서 태평양 해안을 따라 승용차를 타고 북쪽으로 230㎞ 달리면 후쿠시마 제1 원전이 나오고, 거기서 300㎞ 북쪽으로 더 가면 일본 이와테현 오후나토(大船渡)에 있는 요시하마(吉浜) 마을이 나온다. 전복으로 유명한 조용한 이 어촌 마을은 태평양에 면해 있다. 평소엔 바다 덕분에 전복도 키우고 고기도 잡지만, 대지진이 일어나면 바다 때문에 죽는다. 대지진의 여파로 바닷물이 일어나 해안을 강타하기 때문이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당시 9~17m 높이의 쓰나미가 이 지역을 덮쳐 인구 4만 명이 채 안 되는 오후나토에서 417명이 죽고 79명이 실종됐다. 하지만 요시하마 마을에서는 주민 1400여 명 중 단 한 명만 숨지고 나머지는 무사히 대피했다. 주위 다른 마을은 건물이 수십 채씩 부서졌지만, 이 마을은 집 두 채 부서진 게 전부였다.

요시하마가 기적의 마을이 된 비결은 1933년 이 마을 촌장이던 가시와자키 우시타로(柏崎丑太郞)가 마을 전체를 고지대로 이전한 덕분이었다. 왜 그랬을까. 이 마을은 1896년 메이지산리쿠(明治三陸) 대지진 때 주민의 20%인 200여 명이 죽었고, 1933년 쇼와산리쿠(昭和三陸) 대지진 때는 쓰나미에 휩쓸려 17명이 숨졌다. 

마을 이전 당시 고기 잡아서 먹고사는 주민들이 “바다까지 너무 멀다” “무리한 이전이다”라고 반대했지만, 촌장은 마을 어귀에 ‘이보다 낮은 곳에는 집을 짓지 말라’고 쓴 비석을 세우고 밀어붙였다. 1896년과 1933년 대지진 이후 고지대로 이전했던 마을은 요시하마 말고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그들 대부분이 세월이 흐르자 재해를 잊고 원래 살던 저지대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그런 마을들은 동일본 대지진 때 또다시 큰 피해를 봤다. 요시하마 마을은 그런 피해를 면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아무리 방파제를 높이 쌓아도 자연은 못 이긴다. 대대로 그렇게 배웠다”고 했다.

‘블랙 스완’의 저자나심 탈레브. 사진 유튜브
‘블랙 스완’의 저자나심 탈레브. 사진 유튜브

 1960년 레바논에서 태어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행운에 속지 마라(Fooled by Randomness)’ ‘블랙 스완(Black Swan)’ ‘안티프래질(Antifragile)’ 등 대표작을 통해 ‘불확실한 세상에서 생존하는 법’을 설파한 인물이다. 월가의 파생상품 트레이더를 지낸 그는 ‘블랙 스완’을 발간할 무렵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파국이 앞으로 월가를 덮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경고 후 1년여가 지난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미국의 금융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하면서 그는 ‘월가의 현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책 제목 ‘블랙 스완’은 서구인들이 18세기에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처음 검은 백조를 발견한 사건에서 가져온 은유적 표현이다. 검은 백조의 발견은 백조는 곧 흰색이라는 서구인들의 수천 년 경험 법칙을 한 번에 무너뜨렸다.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 판단이 행동의 준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주장을 블랙 스완이 함축한다. 

탈레브에 따르면 세계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평범의 왕국’은 일상적이고 작은 사건이 지배할 뿐 충격적인 큰 사건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 곳으로, 여기에서는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 판단이 곧 법칙을 구성한다. 

하지만 ‘극단의 왕국’은 희귀하고 비일상적인 사건이 느닷없이 발생함으로써 전체를 바꿔버리는 곳이다. 극단의 왕국은 개별 사건의 종합만으로 전체를 설명할 수 없는 ‘복잡계’로서 정규 분포에 입각한 통계학적 예측이 통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극히 작은 변수 하나의 변화가 엄청난 폭풍을 몰고 오는 나비 효과가 발휘된다. 이곳에서는 현재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존하지 말아야 하며, 미지의 지식, 반(反)지식의 중요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람들은 평범의 왕국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예상치 못한 충격이 찾아오면 극단의 왕국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칠면조가 한 마리 있다. 주인이 매일 먹이를 가져다준다. 먹이를 줄 때마다 친구인 인간이라는 종이 순전히 나를 위해서 먹이를 가져다주는 것이 인생의 보편적 규칙이라는 칠면조의 믿음은 확고해진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을 앞둔 어느 수요일 오후, 예기치 않은 일이 이 칠면조에게 닥친다. 칠면조가 맛있는 먹이를 먹으면서 안온한 삶을 산 1000일간의 경험은 그가 맞닥뜨리게 되는 1001일째의 운명을 전혀 가르쳐주지 않았다. 

탈레브가 ‘블랙 스완’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것은 투자은행에서 일하던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에 일어난 ‘블랙 먼데이’ 사건이라고 한다. 이날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하루에 508포인트(22.61%)가 하락했다. 이는 1929년 대공황 시기에도 찾아볼 수 없었던 월스트리트에서 하루 동안 일어난 가장 큰 규모의 폭락이었다.

1980년대 미국은 레이거노믹스 아래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1987년 역시 8월까지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전년 폐장가에 비해 44%가 늘어날 정도로 금융시장은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10월 초에도 상승이 있었고 주가가 하루 만에 대폭락할 것이라는 의심은 시장 어디에도 없었다. 

블랙 먼데이의 원인을 놓고 당시 도입된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매매가 주가 하락을 가속한 원흉으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월가 전문가와 일반 투자자들은 단 하루 만에 바닥으로 추락한 주가의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설마설마하던 일이 벌어진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1929년 대공황과 1970년대 초반의 오일쇼크 같은 대규모 금융위기를 몇십 년에 한 번꼴로 겪으면서도 인간은 왜 1987년 블랙 먼데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대비하지 못하는 것일까. 위에서 이야기한 쓰나미와 같은 망각이 되풀이되는 것은 아닐까.

탈레브는 우리가 선조들로부터 틀린 것들까지 배웠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나는 우리가 아마도 인류를 탄생시킨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 지역에서 생존에 적합한 본능을 물려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본능은 오늘날 같은 문자 발명 이후의 시대, 즉 정보 집약적이고 통계적으로 복잡한 환경에는 필시 부적합하다. (중략) 오늘날 검은 백조가 출현하는 영역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원시의 환경에서는 처음 보는 야생동물, 새로운 적, 기상 이변 정도에 그쳤다. 이런 사건들은 우리 인간이 그것들에 대한 선천적인 두려움을 확립할 만큼 충분히 반복적이었다. 그래서 재빠른 추론을 하게 만드는 본능, ‘땅굴 파기(소수 불확실성의 원천, 또는 이미 알려진 검은 백조의 원인에만 몰두하는 것)’를 하게 만드는 본능이 여전히 우리 안에 뿌리내리고 있다. 이 본능이 우리의 질곡이다.”

그럼 우리는 불확실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일까. 

박성진 이언투자자문 대표는 말한다. “성공의 본질은 이익을 얻는 게 아니라 실패를 피하는 데 있다. 최고의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무리하는 것보다 최악의 실패를 피하기 위해 리스크 매니지먼트에 신경을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블랙 스완의 세상에서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미국 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처럼 언제든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항상 일어난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워런 버핏은 ‘중요한 것은 홍수 예측이 아니라 방주 건조이며, 버크셔 해서웨이는 항상 1000년 만의 홍수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