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이글스턴 사진집 ‘이글스턴의 가이드’. 사진 김진영
윌리엄 이글스턴 사진집 ‘이글스턴의 가이드’. 사진 김진영

거리에 그 어느 때보다 원색이 눈에 띈다. 선거 운동 시즌이 되면 선명한 컬러의 옷을 입고 선거 운동을 벌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평상시에 파랗고 빨갛고 노란 옷으로 무장하고 다니기란 쉽지 않지만 선거철이면 상황이 달라진다. 유권자의 눈에 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원색을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채로운 컬러가 가지는 흡입력에 익숙하다. 시각 미디어의 발전에 따라 사진, 영화, 뮤직비디오 등 이미지를 다루는 모든 장르에서 다양한 컬러는 핵심적인 표현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 예술에서 본래부터 컬러를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여겼던 것은 아니다. 컬러사진술이 개발된 후에도 오랜 기간 컬러사진은 광고사진이나 보도사진 그리고 일반인들이 가정에서 찍는 사진 정도로 여겨졌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나 로버트 프랭크와 같이 20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사진가들은 흑백사진만이 최고의 예술성을 지닐 수 있다는 생각을 고수했다. 이들은 대상의 질감과 무게감을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데 색은 부차적인 요소이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여겼다.

미국 사진가 워커 에반스는 1969년 다음과 같이 못 박았다. “색은 사진을 타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컬러필름이 파란 하늘, 초록 나뭇잎, 립스틱의 붉은 색, 어린 아이의 옷을 표현하는 방식을 생각해보라. 컬러사진은 천박하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 상황이 달라진다. 컬러사진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은 컬러사진에 몰입한 일련의 사진가들에 의해 도전받게 된다. 컬러를 예술사진의 표현 수단으로 적극 사용한 당시 사진들을 일컬어 ‘뉴컬러 포토그래피’라 부른다. 이 중 대표적인 사진가가 바로 윌리엄 이글스턴이다. 

‘이글스턴의 가이드(Eggleston’s Guide)’는 현대 예술사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해오던 뉴욕 현대미술관이 1976년 동명의 사진전과 함께 출간한 책이다. 이 책의 서문에는 컬러를 부차적인 요소로 취급하던 관념에 저항이라도 하듯 “파란색과 하늘은 하나다”라고 적혀 있다.

이 책은 흑백사진만을 고수해오던 뉴욕 현대미술관이 최초로 자신의 전시 공간을 컬러사진에 할애하면서 그 사진들을 모아낸 사진집이라는 점에서 사진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미술관이라는 예술계의 핵심적인 권력이자 제도가 컬러사진을 예술로 승인했다는 점에서 이 사진집은 컬러 예술사진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이 전시가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당시에만 해도 평단이나 대중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이글스턴의 사진에 대한 의문점들이 쏟아졌다. 그중 한 가지 반응은 이글스턴의 사진이 조형적 완성도는 떨어지고 색에만 집중한 심미주의적인 사진이라는 것이다. 그의 사진은 누가 보더라도 멋진 장관이 펼쳐진다거나 어떻게 이 장면을 포착했을까 경탄을 자아낸다거나 하는 요소가 없다. 평범한 구도와 평범한 순간 속에서 컬러를 보여줄 뿐이라는 것이다. 

이글스턴의 사진에 대한 당시의 또 다른 의문은 명확한 주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의 사진 속 소재는 일상적인 사물이나 풍경들이다. 길 위에 놓인 세발자전거, 꽃 장식이 걸려 있는 현관문, 벽에 걸려 있는 외투 등 특별할 것 없는, 어쩌면 우리 삶 속에서 지루하게 반복되는 장면들이다. 뉴욕타임스가 당시에 이 전시를 두고 “올해 최악의 전시”라고 평가했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당시 논란의 중심이 된 이글스턴은 왜 제목을 ‘이글스턴의 가이드’로 결정했던 것일까? 가이드는 지침서 혹은 안내서, 그러니까 따라야 할 것 혹은 주장하고 싶은 바를 담고 있을 때 쓰는 표현이다. 도대체 무엇을 따르라는 것일까? 

이 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이글스턴의 다른 사진집 제목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글스턴은 ‘이글스턴의 가이드’를 출간한 이후 1989년에 ‘데모크라틱 포레스트(Democratic Forest)’라는 사진집을 출간했다. 제목을 직역하면 ‘민주적인 숲’ 혹은 ‘평등한 숲’일 텐데 이것 역시 중립적인 제목이라기보다는 어떤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인 문제를 다룬 사진집도 아닌데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데모크라틱 포레스트’는 ‘이글스턴의 가이드’와 마찬가지로 미시시피, 켄터키, 테네시 등 미국에서의 일상적 풍경이 담겨 있다. 레스토랑에 놓여 있는 양념통처럼 어쩌면 하찮고 평범한 것들 말이다. 이 사진 작업에 대해 찾아보다가 이글스턴이 남긴 말을 볼 수 있었는데, 거기에서 사진집의 제목이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사랑한 사진가

이글스턴은 어떤 대상을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만드는 위계질서 자체에 반대했다. 그는 “그 어떤 것도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사진 세계에서만큼은 세상의 위계질서를 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가 사진집 제목을 민주적인 숲이라고 붙인 이유 아닐까. 숲에서는 더 중요한 나무도 덜 중요한 나무도 없으니까 말이다.

윌리엄 이글스턴의 사진집 ‘이글스턴의 가이드’. 사진 김진영
윌리엄 이글스턴의 사진집 ‘이글스턴의 가이드’. 사진 김진영

1970년대에 ‘최악의 전시’라는 혹평을 받은 이 사진가는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사진가 중 한 명이 됐다. 이글스턴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일상의 아무리 사소하고 허름한 대상이더라도 적절한 빛과 컬러로 표현될 때, 아름다운 사진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이 아름다움은 회색조의 하늘이 보여 주던 관념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파란 하늘을 더 닮아 있다.

우리는 이제 스마트폰으로 주변의 사소한 것들을 손쉽게 찍을 수 있다. 우리가 찍은 것들은 아름다운 색을 가지고 있고, 스마트폰은 그 색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 이렇게 우리 주변의 사물이 가진 아름다운 색을 찍는 행동의 기원을 쫓아 거슬러 가다 보면 우리는 양복 입길 좋아하는 이글스턴을 만날 수 있다. 35㎜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고향 멤피스 거리를 거닐다 발견한 사소하지만 놀라운 일상의 풍경들을 촬영하는 이글스턴의 뒷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글스턴은 수십 년 전에 이미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남겼다. “가장 볼 것도 없고 지저분한 장소가 한순간에 뒤집히는 마술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이글스턴이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