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CB1100RS는 입문자나 숙련된 라이더에게 모두 어울리는 바이크다. 사진 혼다
혼다 CB1100RS는 입문자나 숙련된 라이더에게 모두 어울리는 바이크다. 사진 혼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떤 물건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기 마련이다. 자동차라면 4개의 바퀴와 4개의 문이 달린 3박스 형태의 세단을, 자전거라면 바퀴가 얇고 핸들바가 굽어 있는 로드용 사이클이거나 두꺼운 바퀴와 일직선으로 뻗은 핸들바인 MTB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대체로 이런 기억은 어린 시절 그 물건을 처음 보았을 때나 강렬한 인상을 받은 특별한 순간이 각인됐을 때 생긴다. 이는 나중에 관련된 제품을 구입하려 할 때, 무의식 중에 선택을 이끄는 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모터사이클이라면 어떨까. 개인에 따라 울퉁불퉁한 타이어를 끼우고 얇고 높은 차체의 오프로드 바이크, 혹은 바람을 가를 듯 날렵하고 작은 차체를 플라스틱 카울(차체 앞쪽 윗부분)로 모두 가리고 강렬한 컬러로 칠해진 레이서 레플리카(레이싱 머신과 비슷하게 만든 바이크)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터사이클에서 표준이라고 말할 수 있는 형태는 반짝이는 와이어로 이어진 휠, 둥근 헤드라이트와 두 개의 계기판, 엔진이 드러난 차체와 두 명이 탈 수 있는 시트 등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 1970년 최초로 생산됐던 대형 ‘오토바이’는 기아기연(현 기아자동차의 자회사)이 일본 혼다와 제휴해 만든 CB250이었다. 1970~80년대의 기억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퉁퉁거리며 달려가던 이 바이크를 모터사이클의 원형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번에 혼다 CB1100RS를 시승하면서 든 생각도 같다. 2015년에 먼저 국내 판매를 시작한 형제 바이크 CB1100EX가 레트로(복고풍) 바이크 시장에서 혼다의 전통을 그대로 되살린 오리지널 클래식 스타일이라면, 2017년에 나온 CB1100RS는 이를 좀 더 스포티하게 다듬고 주행성능을 높인 카페 레이서(오토바이 마니아) 스타일이다. 말 그대로 1960년대 이후 제작사가 내놓은 기본형을 좀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핸들바를 낮추는 등 개조를 하고, 도심 외곽 지역의 카페에 모여 멀리 떨어진 곳까지 경주하듯 달리곤 했던 전통을 그대로 잇고 있다.

기본이 되는 CB1100은 이름 그대로 1100cc 90마력 4기통 엔진을 얹는다. 길이 2180㎜의 콤팩트한 크기 때문에 가운데 곧추 서있는 엔진이 더욱 당당하게 보인다. 달리면서 공기의 흐름과 오일을 순환시켜 엔진을 식히는 공유냉 방식이어서 엔진 헤드에 달린 냉각핀이 멋지다. 연료 탱크의 모양이나 동그란 헤드라이트는 보기에 고전적이지만, 용접 부위 없이 말끔한 탱크는 물론 헤드라이트조차 LED를 이용해 주간주행등까지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첨단 기술+레트로’ 스타일의 조화가 무엇인지 대번에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현대적인 레트로라는 모순적인 단어에 해당하는 부위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두 개의 둥근 아날로그 속도계와 회전계 사이에는 전자식 액정이 달려 다양한 정보를 보여주고, 연료 공급 장치는 혼다가 여러 바이크에 사용해 충분한 출력은 물론 높은 연비와 적은 배출가스를 내는 시스템으로 구성됐다. 앞바퀴와 차체를 잇는 황금색 포크에는 눌리거나 늘어날 때 각각 다른 밸브를 통해 오일이 움직여 빠르게 반응하는 타입이다. 브레이크에는 당연히 ABS가 기본으로 장착돼 있다.


보기보다 크고 무거워

든든한 마음으로 바이크에 오르면 795㎜의 낮은 시트 높이 덕에 키 170㎝ 정도만 돼도 양발이 넉넉하게 닿는다. 하지만 기울어진 바이크를 일으켜 세우다 보면, CB1100RS가 리터급 바이크이고 공차중량이 250㎏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절대적인 수치도 그렇지만 다른 바이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게 보여 만만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시동을 걸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무게는 적당한 안정감만을 남기고 사라진다. 넉넉한 배기량에서 나오는 저속 토크 덕에 슬쩍 클러치 레버를 놓는 것만으로도 부드럽게 출발할 수 있다. 도리어 무게가 느껴지는 것은 언덕이다. 브레이크에서 오른발 혹은 오른손을 떼는 순간 중력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바이크를 양발만으로 버티기가 어려울 정도니까.

그럼에도 일단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경쾌하다고 말하긴 힘들어도 다루기가 쉽다. 형제 바이크이자 클래식한 EX 모델과 비교할 때 차이점은 네 가지다. EX가 1580만원인 데 비해 RS는 1630만원으로 50만원 차이가 난다. 우선 앞바퀴가 차체 고정부위에서 앞으로 얼마나 나갔는지를 표시하는 캐스터각이 1도 줄어든 26도여서 좀 더 빨리, 쉽게 앞바퀴가 좌우로 움직이고 그에 따라 차체가 기울어지는 동작도 빠르다. 여기에 46㎝에서 43㎝로 한 사이즈 작아진 휠 대신 넓어진 타이어를 더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살짝 낮아진 핸들바 때문에 바이크에 앉는 자세도 좀 더 앞으로 기울어졌다. 고속에서 몸을 숙여 바람을 피하는 것은 물론 무릎으로 탱크를 꽉 조이면 절로 속도를 높여 코너를 달리게 된다.

CB1100RS를 타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기본에 충실하면서 재미있는 바이크’라는 점이다. 바이크 라이딩 교재에 나오는, 발끝을 안쪽으로 모으고 발목과 무릎을 이용해 하체를 바이크에 고정하고, 등을 살짝 굽혀 충격을 흡수하는 것은 물론 핸들바에 얹은 손과 어깨에는 힘을 뺀 채로 달리면 엄청나게 즐겁다.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넉넉한 힘으로 가속하고 속도를 낮출 때도 편안하지만 재미있다. 하지만 하나라도 어긋나는 자세나 행동을 취한다면 바이크도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낸다. 마치 정석에 입각한 교관처럼 라이더를 가르친다. 그렇기에 입문자에게도, 숙련된 라이더에게도 잘 어울리는 바이크가 아닐까 싶다.


 

Plus Point

수퍼바이크의 정의를 만든 혼다 CB750

뛰어난 성능으로 전 세계인을 사로잡은 세계 최초의 수퍼바이크는 1969년에 나온 혼다 CB750이다. 67마력을 내는 4기통 736cc 엔진을 가로로 얹고 5단 기어를 달았다. 앞바퀴에 디스크 브레이크를 쓰는 등 당시로서는 첨단 장비를 아낌없이 투입했다. 뛰어난 성능을 발휘한 것은 물론 타기 쉽다는 점 때문에 누구나 탈 수 있는 고성능 바이크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모터사이클협회(AMA)가 ‘명예의 전당’에 올리는 등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모터사이클로 손꼽힌다. 지금의 CB1100EX와 CB1100RS의 원조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