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소설가 얀 마텔과 ‘포르투갈의 높은산’ 표지.
캐나다 소설가 얀 마텔과 ‘포르투갈의 높은산’ 표지.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1만4000원 | 416쪽

캐나다 소설가 얀 마텔은 2002년 맨 부커상을 받은 소설 ‘파이 이야기’로 세계적 명성을 누려왔다. 이 소설은 50개국에서 출간돼 지금껏 1300만 부나 팔렸다고 한다. 난파선에서 탈출한 소년이 구명보트에 호랑이를 태우고 태평양을 표류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의 환상적 이야기는 영화 ‘라이프 오프 파이’로 제작돼 놀라운 영상의 마법으로 재현되기도 했다. ‘파이 이야기’는 해양 모험 소설로 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론 신(神)의 존재를 탐구한 스토리텔링을 기발하게 전개한 소설이다.

최근 우리말로 번역된 얀 마텔의 새 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기본적으로 ‘파이 이야기’와 맞물려 있다. 소설에 동물을 등장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는 이번엔 침팬지를 출연시킨 가운데 역시 믿음(Faith)과 성스러움(The Divine)의 의미를 다뤘다. 그러나 소설의 플롯은 한층 더 복잡해졌고, 스토리는 더욱더 상징에 의존했기 때문에 독자를 해석의 미로(迷路)에 빠뜨린다. 독자에게 적극적 해석을 요구하는 종교적 우화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세 편의 중편으로 구성돼 있다. 각기 다른 이야기지만 똑같이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약 100년간에 걸친 시간 속에서 인간과 종교의 관계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 뒤 한 편의 이야기로 통합한다. 세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두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겪고 나서 그 상실감을 치유하기 위해 애를 쓴다.


세 편의 중편으로 구성

첫 번째 이야기는 20세기 초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아내와 아들을 잃은 사내가 당시로서는 최첨단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를 몰고서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다. 그는 가족을 잃은 슬픔 때문에 신을 저주하고 신앙을 조롱하는 방법을 찾는다. 그는 17세기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포교 활동을 펼친 어느 포르투갈 신부의 일기를 입수한다. 그 신부는 흑인 노예 제도의 참상을 체험한 뒤 신앙을 조롱하는 차원에서 침팬지의 십자가상을 제작했다는 것. 주인공은 그 십자가상을 찾아 포르투갈 산악 지대의 성당과 수도원을 뒤지고 다닌다. 다윈 진화론의 관점에서 종교를 부정하려는 현대인의 사고 방식을 대변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1930년대 포르투갈에서 일어난다. 아내가 의문의 익사를 당한 뒤 슬픔에 젖은 병리학자가 어느 날 밤 낯선 여인의 의뢰로 그 남편의 시신을 부검하는 과정을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으로 그린다. 남편의 시신에서 침팬지와 곰 인형을 꺼낸 뒤 그 여인을 시신 속에 넣고 봉합하는 기괴한 과정이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게다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기독교의 비밀스러운 암시로 해석하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신의 존재를 믿되 회의하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이 깔려 있다.

세 번째 이야기의 배경은 1970년대다. 캐나다 상원의원인 주인공이 아내의 죽음에 충격받아 공직을 포기한다. 포르투갈 출신의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이주한 그는 침팬지를 입양해 고향인 포르투갈로 떠난다. 그는 고향에서 침팬지와 함께 정착한 뒤 위안을 얻는다. 침팬지가 한낱 동물이 아닌, 성스러운 존재를 깨닫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신앙에 귀의해서 얻는 평화를 암시한다.

얀 마텔은 ‘파이 이야기’를 통해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를 모두 관통하는 종교의 기본 정신을 강조한 바 있다. 그렇다고 애매모호한 신비주의를 설파하는 게 아니라 세속적 작가의 입장에서 인간의 삶을 고양시킬 이야기의 힘을 독자들에게 각인시킨다. 인간은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쓰는 작가이기 때문에 더 좋은 이야기를 스스로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소설은 초월적 존재를 향한 믿음을 가지면 독자가 더 좋은 이야기를 통해 더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