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루
영업 시간 11:00~20:00
대표 메뉴 직접 뽑은 면에 갓 볶아낸 짜장을 올린 간짜장, ‘중깐’

유달콩물
영업 시간 07:00~20:30, 명절 휴무
대표 메뉴 커피처럼 테이크아웃도 가능한, 고소한 콩물

덕인집
영업 시간 15:00~22:00, 매주 월요일, 구정·추석연휴 휴무
대표 메뉴 코를 톡 쏘는 흑산도산 홍어


일상을 걷어차고, 목포에 왔다. 목포는 아무도 모르게 겨울을 지내고 몰래 든 봄처럼 따뜻하다. 바다 기슭을 전전하다 커다란 창이 달린 작은 방을 빌린다. 창문 너머로 목포 바다가 보인다. 바다는 푸른 주단이 바람에 흐늘거리듯 반짝이며 조용히 일렁인다. ‘꼬록꼬록’. 평화로운 적막함을 깨고 배꼽시계가 밥 때를 알린다. 항구를 등지고 유달산을 향한다.


통통한 프라이가 올라가 있는 중화루의 간짜장, ‘중깐’. 사진 김하늘
통통한 프라이가 올라가 있는 중화루의 간짜장, ‘중깐’. 사진 김하늘

슬로우 짜장면, 중화루 ‘중깐’

중화루는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이다. 핵심 메뉴는 ‘중깐’이다. 중화루의 옛이름인 ‘중화식당 간짜장’의 줄임말이다. 이 집은 느리다. 노쇠해서 그런 게 아니라, 미리 만들어 놓지 않고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조리한다. 주문 후 최소 15분은 기다려야 하지만, 그 인내의 열매는 달디 달다.

중깐의 매력은 면과 짜장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면을 위한 짜장이며, 짜장을 위한 면이다. 희고 깊은 멜라민 그릇에 칼국수 면처럼 널찍하고 얇은 면타래, 청량한 수분을 머금은 오이채, 뜨거운 기름을 끼얹어 익힌 통통한 프라이가 말쑥하게 담긴다. 방금 볶아낸 짜장에서 짙은 양파의 향이 피어난다. 갓 뽑아 익힌 면 위로 갓 볶아낸 짜장을 왕창 쏟아붓는다. 잘게 다진 양파와 간 돼지고기가 풍성하게 들어간 짜장 소스가 낭창거리는 면을 흠뻑 감싼다.

흐느적거리는 국수 가락 면면에 짜장이 골고루 범벅되도록 정성스럽게 비빈다. 검은 윤기가 흐르는 면을 입에 밀어 넣는다. 부드럽게 씹힌다. 걸리적 거리는 것 하나 없이 후루룩 넘어간다. 채소와 고기 등 재료를 뭉툭하게 썰어내지 않아 그 어떤 재료도 그릇 아래로 소외되지 않는다. 고소함과 달큰함 사이로 신선한 생강의 향이 기름막을 미세하게 뚫고 나온다. 젓가락 끝으로 프라이 중심을 쿡 찌르니, 녹진한 계란 노른자가 꿀처럼 솟아 흐른다.

남은 짜장면을 한 젓가락 양으로 등분하고, 그 수만큼 계란을 찢어 야무지게 짜장 한 그릇을 몽땅 비운다. 순식간에 한 그릇을 끝냈는데, 단무지나 생양파 따위로 느끼함을 버텨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담백하니 속도 편하고, 씻겨 내려가지 않는 잔여감도 없다. 진작에 곱빼기로 시킬 걸 후회만 남을 뿐.


‘아메리카노 같은 콩물’ 유달콩물

식간에 커피 한 잔이 필요하다면, 아메리카노 대신 콩물을 권한다. 유달콩물에서는 무더운 여름에만 맛볼 수 있는 콩물을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커피처럼 뜨거운 콩물과 차가운 콩물, 백태 콩물과 서리태 콩물 등 옵션도 다양하며 테이크아웃도 가능하다.

일흔이 다된 사장님이 매일 아침 맷돌을 돌린 지 올해로 43년째다. 두부, 땅콩, 깨 따위로 묘수를 부리지 않는다. 오직 콩, 소금, 물로만 승부를 본다. 두유처럼 가볍고 ‘밀키(milky)’해서 목넘김이 수월하고, 고소함의 농도는 진하디 진하다. 백태는 고소하고, 서리태는 ‘꼬소’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볶은 천일염과 황설탕을 더해도 좋다. 커피처럼 말이다.


삭힘의 정도가 탁월한 덕인집의 흑산도산 홍어. 사진 김하늘
삭힘의 정도가 탁월한 덕인집의 흑산도산 홍어. 사진 김하늘

‘목포는 홍어다’ 덕인집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등반한 탐험가 에드먼드 힐러리는 왜 산에 오르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거기 산이 있기 때문이라고. 누군가 왜 하필 목포냐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거기 홍어가 있기 때문이라고.

삭힌 홍어라면 사족을 못쓴다. 삭힌 홍어엔 철이 없다. 한 달에 두 번은 족히 먹는다. 흑산도산 삭힌 홍어의 첫 경험은 덕인집 홍어였다. 건너건너 아는 지인의 건너건너의 친척이 그 집 사장님이라며, 목포에서 서울로 홍어를 올려다 나눠 먹은 게 처음이었다. 그때를 기억한다. 홍어의 찰진 살점을 깨무는 순간, 색채 진한 느와르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여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이 집 홍어를 열망하고 흠모해온 게.

가게 한 구석엔 흑산도산 홍어임을 증명하는 바코드태그가 한 가득 쌓여있다. 흑산도산 홍어는 출생을 보증하기 위해 코에 바코드가 달려 유통된다. 흑산도 홍어는 목포항 수산시장에서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덕인집으로 몰리는 이유는 그 삭힘이 탁월하고 합을 맞추는 묵은지와 수육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인가. 목포에 온 목적이자 목표다. 직접 쑨 우무묵부터 십 년 묵은 고추장과 된장을 섞어 만든 쌈장, 검붉게 삭은 묵은지, 탱글탱글 탄력 넘치는 수육이 차례대로 깔린다. 직접 담근 ‘구기자인삼막걸리’는 또 어떠한가. 붉은 구기자가 꽃잎처럼 뽀얀 막걸리 위를 노닌다. 그 놀음을 한 대접 퍼 마시면 흥에 못 이겨 어깨 끝이 너울거린다. 드디어 접시 한가득 펼쳐진 홍어가 오른다. 보랏빛 홍어가 접시 위에 활짝 피었다. 화려하고도 기품 있는 살점이 장미꽃송이라면, 까실하게 돌기가 솟은 코는 가시 돋친 줄기일까. 꽃이 뿜는 냄새는 향기다. 홍어도 그렇다. 홍어 냄새가 아니라 ‘홍어 향기’가 맞다. 묵은지, 수육, 홍어를 켜켜이 쌓아 올린다. 그 자태는 조각 케이크보다 아름답고, 그 맛은 더없이 짜릿하다.

되돌아 본다. 내가 서울에서 먹은 홍어는 시든 홍어였다. 만개했다가 넋을 잃고 시든 홍어. 덕인집 한가운데에서 맛보는 홍어가 절정이다. 홍어코를 씹으면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질긴 코를 오독오독 씹으면 입안에서 마치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난다. 상상해본다. 홍어코로 만든 껌이 나오면 어떨까. 스피아민트보다 상쾌하고 자일리톨보다 유익한 홍어껌 말이다.

살점과 코, 다음은 애다. 젓가락 끝으로 융단처럼 보드라운 홍어애 한 점을 집어 입안에 가둔다. 그것은 우유푸딩처럼 사르르 녹아 혀 밑으로 자취를 감춰버린다. 그 홀연함에 애가 탈 무렵, 홍어애국 한 대접이 상 위에 슬그머니 오른다. 신선한 애와 보리싹을 넣어 끓인 홍어애국은 홍어 정복 코스의 화려한 피날레다. 어느새 막걸리 두 되도 다 비웠다.

목포의 밤이 저문다. 보랏빛 장미를 한 아름 안고 항구로 향한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