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블로거 앨런(주드 로)은 정부가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법을 알면서도 제약 회사들과 공모해 병의 확산을 방조하고 진실을 은폐한다는 등의 거짓 정보를 퍼뜨린다. 대중은 해결법을 재빨리 내놓지 못하는 전문가의 의견보다 소셜네트워크에서 조장하는 공포를 더 신뢰한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섭게 파고드는 인간 속성의 단면을 잘 드러낸다. 사진 IMDB
유명 블로거 앨런(주드 로)은 정부가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법을 알면서도 제약 회사들과 공모해 병의 확산을 방조하고 진실을 은폐한다는 등의 거짓 정보를 퍼뜨린다. 대중은 해결법을 재빨리 내놓지 못하는 전문가의 의견보다 소셜네트워크에서 조장하는 공포를 더 신뢰한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섭게 파고드는 인간 속성의 단면을 잘 드러낸다. 사진 IMDB

최근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가 있다. ‘월드워Z’ ‘28일’ ‘레지던트 이블’은 전염된 바이러스가 인간을 좀비로 만든다. ‘아웃브레이크’와 ‘컨테이젼’은 좀비가 나오지 않아서 더욱더 현실적이다. 특히 ‘컨테이젼’은 코로나19의 전파 상황과 너무나 닮았다.

미치의 아내 베쓰는 홍콩 출장을 다녀온 뒤 감기를 앓는 것 같더니 발작을 일으킨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사망. 슬퍼하거나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어린 아들까지 같은 증세로 죽는다. 병원에서는 원인도 모르고 병명도 모른다. 그런데 삽시간에 홍콩과 중국 본토는 물론 영국, 일본, 미국 할 것 없이 세계적으로 같은 증상의 환자들이 속출한다. 감염 속도는 빠르고 치사율은 높고 치료법은 없다.

미국 질병관리본부의 치버 박사는 바이러스 근원지로 의심되는 홍콩으로 미어스 박사를 급파한다. 세계보건기구에서 파견된 오랑테스 박사도 병원균의 발생 경로를 추적해간다. 이들은 ‘돼지와 박쥐에게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이된 것 아닌가’라고 의심하며 백신을 찾기 위한 연구에 매진한다.

사람들은 1분에 3번에서 5번, 하루에 3000번 이상 얼굴을 만진다고 한다. 따라서 기침은 물론 사람 간 접촉이나 승강기 버튼과 같은 일상적인 매개체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병원균에 노출될 수 있다. 지지율과 사회 안정을 동시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정부 관리자들은 어떻게 발표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한다.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는 의견과 원인도 치료법도 모른다고 발표해서 국민의 불신과 불안을 키울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으로 나뉜다. 폭탄 테러 대신 바이러스를 이용한 생화학 테러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놓을 수 없다. 결국 그들은 ‘늑장 대응으로 국민이 죽기보단 과잉 대응으로 비난받는’ 길을 택하고 만다.

학교는 폐쇄되고 마트와 공공장소도 문을 닫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갑자기 달려들어 목을 조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대중의 불안은 점점 증폭된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끼고도 다른 사람과 접촉이 두려워 집에서 자발적 감금 상태에 들어간다.

생필품을 구하러 나와 보면 거리는 아수라장이다. 생존이 위협받을 때 인간의 양심과 윤리, 도덕과 질서는 아주 쉽게 내동댕이쳐진다. 치안은 무너지고 세계 곳곳의 도시는 폭동과 죽음이 만연한 유령도시가 돼 가는 상황이다.

이런 세상에서도 모두가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타인의 위기는 나의 기회, 너의 불운은 나의 행운인 사람이 있다. 유명 블로거 앨런은 정부가 치료법을 알면서도 제약 회사와 공모해 병의 확산을 방조하고 진실을 은폐한다는 등의 거짓 정보를 바이러스처럼 퍼뜨린다. 그렇지 않아도 겁먹은 사람들을 분노의 상태로 몰아간다. 대중은 해결법을 재빨리 내놓지 못하는 전문가의 의견보다 소셜네트워크에서 조장하는 공포를 더 신뢰한다. 세상에 믿을 건 오직 자신뿐이라는 걸 주입하는 데 성공한 앨런은 가짜 약을 만들어 떼돈을 번다.

전염병으로 폐쇄된 도시에 갇힌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린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코타르 같은 인물이다. 그는 페스트 사태가 끝나길 바라지 않는다. 좀도둑인 그에겐 페스트가 큰 기회다. 치안이 부실한 덕에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도시의 모자란 물품을 암거래해 큰 이익을 얻는다. 그래도 소설 속 코타르는 연민해야 할 나약한 인간일 뿐 악인으로까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앨런은 바이러스보다 더 무섭게 파고드는 인간 속성의 단면을 잘 드러낸다.

많은 사람의 바람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신속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원인이 밝혀지고 백신이 개발된다 해도 세계 곳곳에 충분히 보급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과연 인류는 또 한번 바이러스와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코로나19 사태 예견한 2011년 작품

실컷 재미있게 보고 나서는 천재적 두뇌를 가진 미남미녀의 도둑질을 미화한 건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던 ‘오션스’ 시리즈를 만든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작품이다.

그런데 2011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다른 의미에서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세계보건기구와 질병관리본부의 조언을 받아 실제 코로나 바이러스를 모델로 했으며 전염병 전문가들에게 철저하게 검증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완성한 시나리오라고 한다.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 이 영화를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2020년에 와서 세상을 돌아본 뒤 그 시절로 돌아가 만든 것 같다는 착각마저 일으킨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경고 아니면 예고?

맷 데이먼, 마리옹 꼬띠아르, 기네스 팰트로, 케이트 윈슬렛, 로렌스 피시번 등, 누가 주인공이라고 할 것도 없이 화려한 출연진이 장면마다 관객을 몰입시킨다. 제목 ‘컨테이젼(CONTAGION)’은 접촉에 의한 전염병을 뜻한다. 졸지에 아내와 아들을 잃은 미치는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 하나 남은 혈육인 사춘기 딸이 남자 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전전긍긍한다.

그러고 보면 살아있다는 건 끊임없이 누군가와 접촉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악수하고 마주 앉아 대화하고 키스하고 사랑을 나누는 동안, 감염의 위험성에 노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의 유행이 더욱더 무서운 건 상대방을 의심하게 하고 두려워하게 하고, 그 결과 사람과 사람이 가까이 접촉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역사는 전쟁과 사고와 질병에 기인한 수많은 죽음으로 채워져 왔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살아남아 번식하고 번영하며 인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도 사실이다. 끝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죽음과 탄생.

소설 ‘페스트’에서 살아남은 노인은 우리에게 말한다. “페스트가 대체 뭐겠어요? 그건 그냥 인생일 뿐이에요.”

과거 역사에만 있는 줄 알았던 세계적인 우환이 우리 앞에 닥쳐온 것일까.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가 세상의 안전과 생존을 위협할 때, 그것이 나를 잡으러 왔다는 증거도 없지만 나만 피해간다는 보장도 없다. 너무 큰 불안도 너무 허술한 방심도 위험하다. 사태가 진정되길 주시하며 마스크를 쓰고 손을 깨끗이 씻고, 그렇게 작고 사소한 데서부터 우리의 하루를 지켜내야 한다.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