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는 맹수에게 쫓기다가 나비족인 아름다운 네이티리를 만나 도움을 받게 된다. 제이크 안에 깃든 순수함을 알아본 나비족은 네이티리가 그를 전사로 훈련할 것을 허락한다. 사진 IMDB
제이크는 맹수에게 쫓기다가 나비족인 아름다운 네이티리를 만나 도움을 받게 된다. 제이크 안에 깃든 순수함을 알아본 나비족은 네이티리가 그를 전사로 훈련할 것을 허락한다. 사진 IMDB

해병대원이던 제이크는 하반신 장애를 얻어 퇴역한 후 휠체어에 의지해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수술하면 다시 걸을 수 있다지만 군인 연금으로는 하늘의 별 따기. 희망이라고는 한 조각도 찾을 수 없던 제이크에게 과학자였던 쌍둥이 형의 죽음이 전해진다. 그리고 형이 연구했던 프로그램에 참여해보지 않겠느냐는 뜻밖의 제의를 받는다.

수면 상태로 6년 가까이 우주를 날아 도착한 곳은 지구의 에너지 고갈을 해결할 광물 자원이 다량 매장되어 있는 판도라 행성. 민간기업이 기지를 건설하고 과학자와 용병을 불러들여 광물을 채굴하고 있지만, 인간에겐 독성물질이나 다름없는 그곳의 공기와 나비족이라 불리는 원주민의 반대로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

현지인과 평화적으로 교류도 하고 낯선 환경에 쉽게 적응도 할 방법을 모색하던 과학자들이 연구해온 것이 나비족의 몸과 인간의 정신을 결합한 아바타. 그런데 3년간 함께 연구하고 훈련해온 제이크의 형이 사고로 죽자 그의 DNA를 합성한 아바타를 계속 사용하기 위해 쌍둥이 동생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바타란 사이버 가상현실에서 사용자를 대신하는 프로그램일 뿐이지만 영화에서는 현실의 몸을 기계에 눕혀 둔 채 옷을 갈아입듯 정신만 다른 몸, 즉 나비족 모습을 한 외형 속으로 들어가서 실제 느끼고 말하고 활동하는 생명체를 말한다. 인간보다 두 배 이상 큰 체격에 푸른빛 문신을 한 것 같은 나비족의 몸으로 깨어난 제이크는 꿈에서나 가능했던 일, 다시 건강한 두 다리로 일어서서 걷고 달릴 수 있게 된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뾰족귀와 긴 꼬리에 적응할 여유도 없이 팀원들과 숲속 탐험을 나선 제이크는 생전 처음 보는 맹수에게 쫓기다가 나비족인 아름다운 네이티리를 만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녀는 제이크가 자신과 같은 모습을 했을 뿐, 지구인이라는 걸 알지만 대지의 여신이 그를 반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종족에게 데려간다. 나비족의 대표이자 그녀의 부모도 제이크 안에 깃든 순수함을 알아보았던 것일까. 부족과 동화될 수 있도록 네이티리가 그를 전사로 훈련할 것을 허락한다. 

사실 제이크에겐 임무가 있었다. 한때 나비족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던 아바타 연구소장 그레이스 박사는 과거의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제이크가 만들어주길 바란다. 반면 용병을 총괄하는 대령은 더 이상의 시간과 물량 투자는 무의미하다고 판단, 본격적인 채굴을 위해 나비족을 3개월 안에 멀리 이주시키라고 명령한다. 일을 성사시키면 지구에 돌아갔을 때 다리 수술을 보장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오랫동안 과학에 종사해온 박사나 기업의 입장에서 효율과 규칙만을 따져온 대령의 바람과 달리 제이크를 강렬히 사로잡은 것은 절망만을 안겨준 장애에서 벗어난다는 해방감이었을 것이다. 그는 나비족으로 깨어날 때마다 되살아나는 다리의 감각, 발바닥에 느껴지는 흙의 감촉, 지구인에게는 독이지만 나비족에게는 너무나 상쾌한 대기 그리고 원하면 어디로든 달려갈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한다. 무엇보다 나비족 전사가 갖추어야 할 것들을 하나씩 배워가는 즐거움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주는 네이티리와 시간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다.

“저 바깥이 진짜 세상이고 여기가 꿈속 같아. 이젠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 제이크는 인간의 몸으로 돌아올 때마다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그렇게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기한이 다가오자 대령은 제이크에게 걸었던 기대를 접고 군대와 불도저를 이끌고 숲으로 들어간다. 나비족이 신성하게 여기는 거목을 쓰러뜨리고 그들의 삶의 터전을 불바다로 만든다.

인간의 기억과 나비족의 몸을 한 제이크는 지구인일까, 판도라인일까? 더는 선택을 주저할 수 없게 된 제이크는 본능적으로 대령과 맞선다. 나비족 편에서 싸우는 제이크가 괘씸한 대령은 그에게 묻는다. “진짜 원주민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인데 네가 누구인지 잊어버린 건가?”


이모션 캡처 도입한 제임스 카메론의 걸작

2009년에 개봉해서 전 세계 영화 관객의 찬사를 받은 ‘아바타’는 ‘터미네이터’와 ‘타이타닉’ 등으로 뛰어난 재능을 증명해온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걸작이다. 개봉한 지 10년도 넘었으니 그사이 더 발전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보여준 영화가 많이 나왔겠지만, 이모션 캡처(emotion capture)로 몸의 움직임만이 아니라 나비족의 얼굴과 눈빛의 섬세한 감정까지 표현해낸 것이나 익룡의 후손인 듯 색색의 아름다운 이크란을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 공중에 떠 있는 산봉우리들과 도시의 야경보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숲의 장관 등은 우리가 상상했던 모든 판타지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가 세월이 흘러도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우주가 우리 자신과 연결돼 있으며 모든 존재는 삶과 죽음을 통해 끝없이 순환한다는 불변의 진실을 생생하게 영상화했다는 데 있다. 이러한 명제는 약 140억 년 전에 벌어진 우주 대폭발 이후, 모든 존재는 근본적으로 하나이며 동일한 구성 요소를 갖고 있다는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다.

마치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처럼, 서로 다른 삶을 살았지만 유전자가 똑같아서 형의 아바타를 동생이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동물과 나비족이 히드라처럼 생긴 신경 물질을 연결해서 교감하는 것처럼, 한 그루의 나무가 행성의 수많은 생명과 빛으로 이어져 있고 너무나 다른 모습의 지구인이 나비족이 되고 결국은 두 종족의 남녀가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이런 관점에서 생각할 때 제이크가 나비족 편에서 판도라를 구하는 것은 지구를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괴된 지구를 되살리는 일이 된다. 그리고 나비족인 네이티리와 인간의 모습을 한 제이크가 서로를 마주 보며 “아이 시 유(I see you).”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눈에 보이는 다름을 넘어선 이해와 사랑과 합일이라는 주제가 완성된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 프록시마 센타우리 주위에 판도라처럼 생명체가 살 가능성이 있는 행성이 발견됐다지만, 겨우 4광년 떨어진 그곳에 가려면 현재의 기술로 수천·수만 년이 걸린다고 한다. 우주 관광이 곧 실현될 거라고들 말하지만 태양계를 넘어 이주한다거나 직장을 구하러 간다거나 불도저나 탱크를 싣고 가서 자원을 가져오는 일은 아직 먼 미래의 일일 뿐이다.

그러나 보려고만 한다면 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으므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하나이므로, 우리는 별을 바라볼 수 있고 그곳의 생명을 느낄 수 있고 종소리처럼 맑은 우주의 속삭임을 언제든 들을 수 있다. ‘내가 보여요? 난 당신이 보여요. 아이 시 유!’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