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역사 최초로 디지털 컬렉션으로 공개된 2020-2021시즌 샤넬 크루즈 컬렉션. 사진 샤넬
샤넬 역사 최초로 디지털 컬렉션으로 공개된 2020-2021시즌 샤넬 크루즈 컬렉션. 사진 샤넬

2020-2021시즌 샤넬 크루즈 컬렉션을 입은 모델들이 석양이 지는 지중해 해변에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흡사 패션쇼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경 간 봉쇄령이 내려진 시기에 샤넬이 어떻게 패션쇼를 열 수 있었을까? 모델들은 프랑스 파리의 한 실내 스튜디오에서 프랑스 리비에라 해변을 담은 배경 영상 앞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그렇게 샤넬 역사 최초의 디지털 컬렉션이 기획되고 오픈됐다.

샤넬의 2020-2021시즌 컬렉션은 5월 이탈리아 카프리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고(故) 칼 라거펠트에 이어 샤넬 디자인을 총괄하는 버지니 비아르는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디지털 컬렉션에 맞춰 모든 것이 조정돼야만 했다고 말한다. 그는 “이미 있었던 소재를 사용하는 등 변화가 있었고 2020년 봄·여름 컬렉션 재고를 재활용해서 크루즈 컬렉션과 함께 판매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비록 영상을 통해서지만 2020-2021시즌 컬렉션은 멋지게 샤넬을 차려입고 지중해 해변을 산책하는 듯한 판타지를 전한다(아름다운 휴양지 리비에라의 낭만적인 향취를 담은 이번 샤넬 2020-2021 크루즈 컬렉션은 CHANEL.COM에서 감상할 수 있다).

매 시즌 감각적인 구찌의 광고 캠페인을 지휘했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처음으로 구찌 광고 캠페인 디렉팅 역할을 내려놓았다. 그 대신 미켈레는 구찌의 이미지를 잘 표현해줄 모델들에게 컬렉션 룩을 보내, 직접 광고 캠페인 이미지를 창작하게 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모델들 스스로가 사진작가, 스타일리스트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어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담은 ‘리추얼(ritual)’ 프로젝트는 모델들만의 ‘집콕’ 생활을 자연스럽게 담아 인기를 끌었다. 자신의 일상을 소셜 미디어에 화보처럼 담아내는 밀레니얼 세대의 감성에 맞는 광고 캠페인 프로젝트인 셈이었다.

스페인의 패스트 패션 브랜드 자라 역시 신상품을 모델 말고시아 벨라와 카라 테일러의 집으로 보내 집에서 직접 사진을 촬영하도록 했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패션 브랜드 ‘피어 오브 갓(Fear of God)’의 창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제리 로렌조와 함께 ‘누아르’ 화보 원격 촬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제리 로렌조의 미국 로스앤젤레스 집에서 아들 제리 로렌조 마누엘 3세가 나이키 ‘누아르’ 제품을 착용하고 운동하는 모습을 화상 회의 프로그램인 줌(Zoom)으로 담아낸 화보다.

이러한 톱 모델의 셀프 촬영은 세계적인 유명 패션지의 화보 촬영에서도 이어졌다. 지금 가장 영향력 높은 패션모델로 손꼽히는 지지 하디드는 ‘보그 이탈리아’를 위해 직접 메이크업 아티스트, 헤어 스타일리스트, 패션 스타일리스트, 사진작가, 에디터가 돼서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모델 린제이 왓슨도 ‘보그’ 패션 화보를 위해 혼자 헤어와 메이크업, 스타일링을 했다.

지지 하디드의 동생으로 역시 톱 모델인 벨라 하디드는 ‘보그 이탈리아’와 영상 통화 패션 화보 촬영이란 특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진작가 브리아나 카포치, 스타일리스트 헤일리 울렌스는 각각 벨라 하디드와 영상 통화로 접속했고, 실제 촬영에서처럼 테스트 촬영을 했다. ‘보그’ 측은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가 많이 사용하는 ‘링 조명’을 미리 벨라 하디드에게 보냈다. 직접 헤어와 메이크업을 한 벨라 하디드는 영상 통화를 통해서 실제 못지않은 근사한 패션 화보를 완성했다. 영국의 패션 잡지 ‘아이디(i-D)’도 ‘Safe+Sound’라는 영상 화보 프로젝트로 화제가 됐다. 사진작가 윌리 반데페르는 19명의 모델과 영상 통화를 통해 포즈를 취한 모델들을 촬영했다.

사실 컬렉션과 패션 광고, 화보 촬영은 사회적 거리 두기 규칙을 지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 모델과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수많은 스태프가 매우 밀접하게 컬렉션과 촬영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시즌 제품의 홍보와 판매를 위해 컬렉션과 광고 촬영을 모두 지연하거나 포기할 수 없다. 패션 화보 없이 매달 패션지를 발간하는 것 또한 한계가 있다. 그래서 온라인 컬렉션과 모델들의 셀프 촬영이란 방법이 기획될 수밖에 없었다.


모델들이 직접 스타일링하고 촬영한 구찌의 2020시즌 가을·겨울 광고 캠페인. 사진 구찌
모델들이 직접 스타일링하고 촬영한 구찌의 2020시즌 가을·겨울 광고 캠페인. 사진 구찌
톱 모델 지지 하디드가 자신의 집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는 장면을 직접 연출해 촬영한 ‘보그 이탈리아’ 화보. 사진 보그 이탈리아
톱 모델 지지 하디드가 자신의 집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는 장면을 직접 연출해 촬영한 ‘보그 이탈리아’ 화보. 사진 보그 이탈리아

포스트 코로나 시대, ‘언택트’ 패션 화보 지속할 것

주목할 점은 이러한 셀프 촬영과 영상 통화 촬영법이 환경 보호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보그 이탈리아’의 편집장 에마누엘 파네티가 한 권의 잡지가 발행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이 낭비되는지 밝힌 바 있다. 60번 정도의 국제 운송, 최소 10시간 이상 켜놓아야 하는 조명, 모델과 스태프의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와 비닐, 플라스틱 등, 그는 한 번의 화보 촬영을 위해 낭비되는 자원을 줄이고, 이로 인해 얻는 차익을 이탈리아 국민을 위해 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부터 패션과 뷰티계에 퍼져나간 ‘지속 가능성’ 캠페인이 패션 화보와 광고 캠페인 촬영에까지 확산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패션계의 변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새로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전통 깊은 패션 브랜드나 패션지도 언제든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영국 패션 전문 매체 비오에프(BOF)와 컨설팅 그룹 맥킨지가 공동 발표한 ‘2020 패션 현황-코로나 업데이트’ 보고서는 코로나19 위기 이후 12~18개월 동안 많은 글로벌 패션 기업이 파산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뿐 아니라 패션 업계의 매출이 27~30% 감소되며, 럭셔리 브랜드의 매출 역시 35~39%가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그 미국’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 역시 패션계는 코로나19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며, 패션계를 윤리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나 장기화할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지만, 언젠가는 코로나19의 확산도 더뎌질 것이고 백신도 개발될 것이다. 그러나 팬데믹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지난 몇 달 사이 보인 디지털 컬렉션, ‘언택트’ 패션 화보와 광고 촬영 그리고 오프라인 매장을 통한 ‘언택트’ 쇼핑 등은 사회적 거리 두기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김의향
패션 스타일 칼럼니스트, 케이 노트(K_note)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