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작동 원리가 충돌이라고 하면, 얼마만큼 맞고 얼마만큼 틀린 말일까. 나라와 나라가 충돌하고 여당과 야당이 충돌하고 세대와 세대가 충돌하고 남성과 여성이 충돌하고 흑인과 백인이 충돌하고 이미지와 텍스트가 충돌하고 이미지와 영상이 충돌하고…. 충돌이 가져오는 잦은 피로감 가운데, 그러니까 이 모든 크고 작은 충돌 가운데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서 발생하는 충돌이다. 대체로 새로운 것을 옹호하고 기존의 것을 비판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오래된 것을 수호하고 낯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 발견한다. 요즘은 그런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해 나와 나 사이에 적잖은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뭐가 더 좋은 건지 판단하지 못한 채 대중이라는 허상에 기대어 타인의 판단을 내 판단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가 바로 선택하지 않은 쪽을 절대 악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실은 그럴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언뜻 아무 느낌도 주지 않는 건조한 엔딩은 작중 인물인 치안판사가 집필하려는 책의 제목으로 낙점해 놓은 문장이다. “니제르 강 하류 원시 종족의 평정”이라는 제목의 책이라니,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바, 이 책은 니제르 강 하류에서 살아가는 부족을 대상으로 한 인류학 보고서쯤 되겠다. 역시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바, 나이지리아 동부의 이보족 마을에서 태어난 작가 치누아 아체베가 스물여덟 살에 쓴,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이 소설은 서구 세력에 의해 아프리카 부족의 전통이 붕괴해 가는 과정을 다루는 작품이다. 중요한 문제이지만 흔한 대립 구도와 ‘당연한’ 문제의식은 우리를 별로 자극하지 못한다. 이렇게만 설명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면 굳이 엔딩까지 기억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책 속의 책에서 빠져나와 이 책, 그러니까 지금 내가 두 손에 든 치누아 아체베가 쓴 책의 제목을 들여다본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속의 제목과 동일한 것 같지만 조금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평정은 제압하는 자의 시선이 반영된 말이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평정했다는 말을 쓸 일이 거의 없다. 적을 공격해 굴복시킬 때, 반기를 드는 사람을 논리로든 힘으로든 밀어붙여 더 이상의 반기가 지속하지 않도록 할 때, 공격하고 밀어붙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나 ‘평정’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제압당하는 자의 시선이 짙게 깔린 말이거나, 적어도 제압하는 사람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중립적인 진술이다. ‘니제르 강 하류 원시 종족의 평정’에 패색이 완연하다면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한 발 떨어져 부서짐 자체만을 드러내고 있다. 왜 부서졌는지, 누가 망가뜨렸는지가 배제된 객관적 진술은 이 소설이 흔한 대립 구도와 ‘당연한’ 문제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핵심이다.

부족민의 존경을 받는 오콩코라는 남자가 있다. 하지만 명예와 자존심 때문에 친아들처럼 아끼던 소년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가 하면 실수로 마을 아이를 죽이는 일까지 생기면서 오콩코는 마을에서 쫓겨나고 만다. 그 무렵 백인들이 찾아와 기독교 교리를 전파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거부당했지만 이내 백인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마을에서의 영향력을 키워 간다. 무엇보다 이들이 틈입한 곳은 부족의 약한 부분이었다. 전통과 관습의 이름으로 버려졌거나 소외당했던 이들, 가부장적 제도에 억압받고 목소리는커녕 숨소리조차 못 내고 살았던 여성들이 교회로 돌아선 것이다. 세를 확장한 백인들은 학교를 지어 부족 아이들을 서구식으로 교육하고 법원을 세워 부족민들을 그들의 법으로 다스린다.

“우리의 세계는 왜 이토록 무력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나?” 산산이 부서지는 일은 외부의 공격만으로 벌어지지 않는다. 내부의 몰락이 함께할 때 부서짐은 더 산산이 흩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7년 만에 마을로 돌아온 오콩코는 부족민에게 백인에 맞서 싸워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선뜻 나서지 못한다. 오콩코가 그리워하는 ‘그 좋은 옛날’은 지배하고 군림하던 어떤 권력자들에게만 좋은 옛날이었기 때문이다.

전통을 파괴하는 제국주의와 파괴당할 만한 악습을 내면화한 부족의 충돌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다루는 이 소설은 흑인과 백인의 갈등이나 남성과 여성의 갈등을 넘어 서로 다른 두 문화가 부딪치는 순간 생겨나는 파편을 세밀하게 관찰한다. 파괴하는 쪽이 가하는 힘의 폭력성과 부서지는 쪽의 나약함.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이 충돌할 때 충돌하는 지점을 미세하게 살펴보면, 한쪽을 맹렬하게 지지하거나 반대할 수 없는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세상은 회색이다. 흑도 품고 있고 백도 품은 경계의 회색이야말로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색이겠다. 아무런 느낌도 주지 않는 건조한 엔딩이 진실의 회색을 띠는 이유다.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젊은평론가상


Plus Point

치누아 아체베(Chinua Achebe)

1930년 나이지리아 동부 이보족 마을인 오기디에서 태어났다. 오기디는 일찍이 영국 성공회 선교사가 진출한 곳으로, 아체베의 가족 또한 기독교도였다. 미션스쿨을 졸업하고 이바단대학교에서 문학과 사학을 전공한 아체베는 이후 라고스의 나이지리아 방송국에서 근무했으며 나이지리아와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1996년에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이지리아 최고 문화훈장인 국가공로상, 독일 출판협회 평화상을 받았으며 2007년에는 부커상을 받았다. 1990년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의 중상을 입었으며 나이지리아대학교 명예교수이자 뉴욕주(州) 바드대학의 언어문학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1958년 스물여덟 살의 나이에 발표한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학의 고전으로 가장 사랑받는 아프리카 소설 중 하나이자 전 세계에 1000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다. 한국에서는 2008년 번역됐다. 그 외에도 ‘평안과의 이별’ ‘신의 화살’ ‘민중의 사람’ ‘사바나의 중심가’ 등을 출간했다. 2008년 82세를 일기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