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수도 헬싱키에 있는 핀란디아홀. 핀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 알토가 설계했다. <사진 : 핀란드관광청>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 있는 핀란디아홀. 핀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 알토가 설계했다. <사진 : 핀란드관광청>

올해 핀란드 독립 100주년을 맞아 개최된 한국·핀란드 친선 음악회에 초청받아 핀란드 헬싱키에 다녀왔다. 핀란드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던지라 그곳 관객과의 호흡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무척 궁금했다. 핀란드는 북유럽의 선진 복지 시스템과 더불어 호수와 숲의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들의 음악, 문화, 삶, 역사는 많이 접해 볼 기회가 없었기에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헬싱키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던 기억이 난다.

비행기가 헬싱키에 다다르면서 짙게 드리운 구름 밑으로 끝없이 펼쳐진 숲과 호수가 조용히 나를 반겨주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러시아에 대한 저항 의지 담은 ‘핀란디아’

그리고 문득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로 알려진 장 시벨리우스를 생각하면서 그의 열정적이고 뜨거운 음악이 어떻게 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땅에서 탄생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음 날 연주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객석을 가득 메운 핀란드 사람들이 얼마만큼 음악을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음악회를 주관한 관계자는 앙코르곡으로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Op.26’을 연주해 달라고 요청했다. 핀란디아가 시벨리우스의 대표곡 중 한 곡이라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대표곡을 그의 고향에서, 그것도 앙코르로 연주한다는 것이 적지 않은 부담이 됐다.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위한 원곡과는 달리 이번 연주를 함께 했던 성악, 첼로 그리고 피아노를 위해 편곡된 곡으로 연주를 했다. 연주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핀란드 사람들에게 이 곡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했지만, 연주 도중 옆으로 보이는 많은 관객이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며 필자도 마음 한구석에서 솟구쳐오르는, 어떤 말 할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을 느꼈다.

올해는 핀란드 독립 100주년 되는 해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스웨덴에 의해 지배되고 억압되었던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Op. 26은 러시아 니콜라이 2세에 의해 핀란드 자치권이 위협받고 언론마저 탄압받던 1899년 탄생했다. 당시 러시아의 검열에 저항하는 언론사를 돕기 위해 열린 자선 행사에서 연주됐다.

이 곡에 담겨있는 민족적 자긍심, 독립을 향한 갈망은 많은 사람의 박수갈채를 받았고 곧 시벨리우스는 이 곡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대편성 오케스트라 형식으로 발전시켜 1900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박람회에서 연주했다. 이 연주는 핀란드인의 자주독립을 향한 의지를 전 유럽에 알린 역사적 사건으로 전해진다. 애국적 메시지가 담긴 이 곡의 연주를 당시 핀란드를 지배하던 러시아 제국이 용인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핀란디아는 러시아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핀란드의 봄을 깨우는 즐거운 기분’ ‘스칸디나비안 합창’ 등의 어처구니없는 가명으로 연주됐다는 가슴 아픈 사연도 있다.

앙코르 도중 눈물을 훔치는 관객을 보며 우리도 탄압과 억압의 역사를 겪었기에 어쩌면 머리로 사실을 이해하기 전에 이미 음악으로 그들과 같은 마음이 됐다고 생각한다.

핀란디아의 총연주시간은 7~9분으로 그리 길지 않지만, 이 곡에는 그들이 당시 처했던 암울한 현실과 그들이 갈망하는 조국을 향한 염원이 간절하게 녹아있는 듯했다. 우리도 그 험난했던 과정, 독립의 찬란함을 알기에 이 음악 그리고 마지막 합창 부분의 가사도 더 절절히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헬싱키 시내에 있는 장 시벨리우스 두상. <사진 : 위키피디아>
헬싱키 시내에 있는 장 시벨리우스 두상. <사진 : 위키피디아>

치열한 역사, 음악으로 승화시킨 핀란드

핀란디아 합창 가사는 이런 내용이다.

“아, 핀란드여, 보라. 이제 밤의 위협은 저 멀리 물러났다./찬란한 아침에 종달새는 다시 영광의 노래를 부르고, 천국의 대기가 충만하였다./어둠의 힘은 사라지고 아침 햇살은 지금 승리하였으니, 너의 날이 다가왔다, 오 조국이여./아, 일어나라, 핀란드여. 높이 들어 올려라.

너의 과거는 자랑스럽게 등극하였다./아, 일어나라, 핀란드여, 노예의 흔적을 몰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어라./억압에 굴복하지 않았으니, 자랑스러운 아침이 시작되리라, 조국이여.”

이 곡이 파리에서 연주되고 17년이 지난 1917년 핀란드는 마침내 러시아로부터 독립했다. 핀란드는 더 이상 탄압받던 땅이 아닌 조용한 숲과 호수의 나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들의 치열했던 역사는 고스란히 음악에 담겨 러시아 치하에서 사용됐던 제목이 아닌 핀란디아라는 당당한 이름을 가지고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헬싱키와 어울리는 음반

장 시벨리우스
핀란디아 Op. 26

지휘ㅣ레이프 세게르스탐
오케스트라ㅣ헬싱키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핀란드의 비공식 애국가라고 불리는 이 곡은 핀란드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곡이다. 핀란드 출신의 지휘자 레이프 세게르스탐과 헬싱키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사운드가 웅장하다.


장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조 Op. 47

지휘ㅣ유진 오르만디
오케스트라ㅣ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바이올린ㅣ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시벨리우스의 후기 낭만주의 스타일과 스칸디나비아의 미학이 담긴 명작이다. 드라마틱한 화성 전개가 인상적인 1악장, 로맨틱한 멜로디의 2악장 그리고 강렬하고 치열하게 연주되는 폴로네이즈풍의 3악장으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