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에 있는 폴란드의 관문 프레데릭 쇼팽 국제 공항. 폴란드에서 태어난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사진 : 위키피디아>
바르샤바에 있는 폴란드의 관문 프레데릭 쇼팽 국제 공항. 폴란드에서 태어난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사진 : 위키피디아>

몇 년 전 폴란드 바르샤바에 연주 여행을 갔을 때 폴란드 동료와 함께 도심을 거닐며 프레데릭 쇼팽의 음악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었다. 우리의 주된 주제는 쇼팽 음악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표현함에 있어서의 까다로움이었다. 슬픔과 기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 타는 듯한 그의 모호함은 듣는 이에게 아름다운 노스탤지어(향수)를 선사해 주지만 그 순간을 포착해서 전달해야 하는 연주자 입장에선 그 음악의 내면을 통찰해 내는 과정이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암울한 역사 음악으로 표현

그 동료가 중간에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의 음악에는 천부적인 재능과 소심하고도 섬세한 성격이 담겨 있지만 늘 주변 강대국의 지배에 시달렸던 폴란드의 암울한 역사도 배경에 자리하고 있다고. 그것은 곧 억압의 역사가 그들이 쉽게 입 밖으로 표현하기 힘들었던 마음속 열망과 뒤섞였고 이러한 모호한 안팎의 갈등이 예술에도 그대로 표출되었다는 것이었다.

쇼팽의 조국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그의 이름을 찾기란 결코 어렵지 않다. 바르샤바 국제 공항의 이름이 바로 프레데릭 쇼팽 국제 공항이고 그의 이름을 딴 쇼팽 보드카가 거리 곳곳에 진열돼 있다.

바르샤바 국립 음대 이름은 프레데릭 쇼팽 콘서바토리다. 또 그가 거주했던 아파트, 그의 기념 조각상, 그의 심장이 보관돼 있는 성당도 구시가지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심지어 그의 음악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세계적 권위의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열리기도 하는 곳이니 음악인의 눈에 바르샤바는 쇼팽을 위한, 쇼팽에 의한 도시처럼 보이는 것이 이상할 리 없다.


쇼팽의 심장이 묻혀 있는 바르샤바 성 십자가 성당. <사진 : 위키피디아>
쇼팽의 심장이 묻혀 있는 바르샤바 성 십자가 성당. <사진 : 위키피디아>

조국의 비통함을 예술로 승화시킨 쇼팽

‘죽거든 내 심장을 꺼내 조국 폴란드에 묻어주세요.’ 1849년 그가 파리에서 임종 전 그의 누이에게 남긴 유언이다. 그는 살아 생전에 대단한 애국자였다. 비록 21세에 파리로 이주할 때 고향의 흙 한 줌을 가지고 간 이후 다시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늘 폴란드를 그리워하고 파리에 망명한 다른 폴란드인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했다고 전해진다. 또 프랑스어보다 폴란드어로 이야기했을 때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이 편안해했다고도 한다.

한편 음악에서 그는 폴란드의 민속 춤곡 마주르카, 폴로네이즈를 예술적 경지로 승화시켜 ‘영웅 폴로네이즈 Op. 53’ ‘폴로네이즈 판타지 Op. 61’ 같은 눈부신 명작을 탄생시켰다. 바르샤바가 러시아군에 함락되었다는 소식에는 그의 절망과 비통함을 담아 ‘혁명’이라 불리는 피아노 연습곡 ‘Op.10 No.12’를 작곡하기도 했다.

이렇듯 평생 조국 폴란드를 향해 뛰던 심장이 멈췄을 때 비로소 그 심장이 쉬어야 하는 곳도 그의 바람대로 바로 그의 고향이 아니었을까.


Plus Point

남녀노소 사로잡는 쇼팽의 선율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쇼팽의 몇몇 선율은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감각적인 선율은 남녀노소 누구든지 사로잡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 공연계에서도 그의 작품은 거의 매일 연주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입지가 대단하다. 여기서 그의 몇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프레데릭 쇼팽
폴로네이즈 판타지 Op. 61

피아노|블라디미르 호로비츠

폴로네이즈는 원래 폴란드 지방의 민속 무곡 중 하나다. 이후 유럽 곳곳에 전해져 여러 궁정 무도회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모차르트, 베토벤 또한 폴로네이즈풍의 곡을 작곡했다. 하지만 폴로네이즈를 하나의 장르로 정착시킨 주인공은 쇼팽이라 할 수 있다. 그 예술적 정점에 있는 곡 중 하나가 바로 이 ‘폴로네이즈 판타지’가 아닐까 싶다. 쇼팽의 말년에 작곡된 곡이고 그의 짧았지만 치열했던 인생 스토리가 마치 폴로네이즈 리듬 위에 나열되어 있는 듯 드라마틱한 내용을 담고 있다. 원숙미가 돋보이는 대위법, 자유로워 보이지만 치밀한 전조, 초인적 기교 등이 압축돼 있는 하나의 환상시라 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 호로비츠의 녹음을 추천해 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어쩌면 지금 우리시대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피아니스트라 할 수 있는 호로비츠의 폴로네이즈 해석은 사람의 마음을 단숨에 훔치는 타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카리스마로 청자에게 환상을 선사한다.


프레데릭 쇼팽
17 Polish songs, Op.74

소프라노|마리아 크나피크
피아노|미셸 브루소

쇼팽이 대중적인 작곡가임에도 그가 성악곡을 작곡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폴란드어 시를 가사로 1829년부터 1847년 사이에 작곡된 곡이다. 주로 피아노에 성악적인 표현을 차용했던 그가 정작 성악곡은 어떻게 작곡했을지 그리고 리드미컬하게 들리는 그의 모국어 폴란드어가 음악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느끼며 들어보는 것은 꽤나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