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에 민감한 볼보는 2012년 세계 최초로 보행자 에어백을 적용했다. 이 에어백은 평소에는 보닛 안쪽에 숨어 있다가 보행자가 차에 부딪혔을 때 부풀어 오르며 튀어나온다. 사진 볼보코리아
안전에 민감한 볼보는 2012년 세계 최초로 보행자 에어백을 적용했다. 이 에어백은 평소에는 보닛 안쪽에 숨어 있다가 보행자가 차에 부딪혔을 때 부풀어 오르며 튀어나온다. 사진 볼보코리아

회사가 서울 강남구에서 종로구로 이사한 지 석 달이 지났다. 종로는 강남과 분위기가 무척 다르다. 골목 안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풍경이 느닷없이 펼쳐진다. 그리고 사람들이 ‘런더너(Londoner·런던 시민)’처럼 길을 아무렇게나 건넌다.

교통신호를 꼬박꼬박 지키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된다. 깜깜한 밤엔 그마저도 절반 아래로 훌쩍 떨어진다. 지키는 사람보다 지키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그래서 밤엔 신경을 곤두세우고, 파란불에도 주변을 살피며 운전해야 한다. 이렇게 해도 갑자기 튀어나오거나 유유히 길을 건너는 사람 때문에 급브레이크를 밟는 일이 허다하다.

생각해보면 종로뿐 아니라 서울 시내 곳곳에서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 복잡한 도심에선 흔하디 흔한 상황이다. 서울만 이럴까. 세계 어느 곳이나 도심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처럼 보행자와 자동차가 뒤섞여 다니는 일이 많아지면서 요즘 자동차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보행자 안전에 신경 쓰고 있다. 보닛을 두툼하고 뭉툭하게 디자인하거나 단단한 철판이 아닌 충격을 흡수하는 소재로 만드는 것도 다 보행자 안전을 위해서다. 보행자 안전을 위한 조치로는 또 뭐가 있을까.

안전에 민감한 볼보는 2012년 V40에 세계 최초로 ‘보행자 에어백’을 적용했다. 보닛 위쪽의 왼쪽 필러에서 앞 유리 아래쪽을 지나 오른쪽 A 필러까지 ‘U’자 모양으로 생긴 이 에어백은 평소에는 안쪽에 숨어 있다가 보행자가 차에 부딪혔을 때 부풀어 오르며 튀어나와 보행자가 크게 다칠 가능성을 줄인다.

부딪힌 대상이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앞 범퍼와 라디에이터 그릴에 달린 7개의 센서다. 차와 부딪힌 대상이 사람으로 판단되면 제어장치로 신호를 전달하는데, 이 신호를 받은 장치가 보닛 위쪽 핀을 풀어 보닛을 10㎝ 들어 올린 다음 보행자 에어백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방식이다.

볼보 말고도 보행자 에어백을 적용한 회사가 또 있다. 랜드로버다. 랜드로버가 2014 파리모터쇼에서 선보인 디스커버리 스포츠에도 보행자 에어백이 달렸다. 앞 범퍼에 달린 센서가 보행자와 충돌을 감지해 충돌했다고 판단하면 보닛에 숨어 있던 에어백이 펴지는 건 볼보와 똑같다.

다만 볼보의 보행자 에어백은 하나로 연결돼 있지만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세 개로 나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에어백을 보다 빨리 부풀어 오르게 하기 위해서다. 랜드로버는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보행자 에어백이 600분의 1초 만에 펴진다고 자랑했다.

물론 보행자와 부딪혔을 때 보행자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행자와 충돌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볼보의 ‘시티세이프티’는 자동차뿐 아니라 보행자와 자전거 탄 사람, 커다란 동물까지 감지한다. 충돌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소리와 신호로 경고한다. 그래도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지 않아 사고가 날 것 같으면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아 멈춘다. XC60에는 보다 진화한 시티세이프티가 얹혔는데, 스스로 멈추는 것은 물론 운전대까지 꺾어 사고를 피하는 ‘기지’도 발휘한다.

메르세데스-벤츠의 프리 ‘세이프브레이크’도 시티세이프티와 비슷하다. 앞 차나 보행자와 충돌할 것 같으면 계기반에 경고등을 띄우고, ‘삐비비빅’ 소리를 울려 운전자에게 경고한다. 그래도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자동차가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인다. 완전히 멈추는 것도 가능하다.


볼보의 시티세이프티는 자동차, 사람, 동물 등을 감지해 충돌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운전자에게 소리와 신호로 경고한다. 사진 볼보코리아
볼보의 시티세이프티는 자동차, 사람, 동물 등을 감지해 충돌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운전자에게 소리와 신호로 경고한다. 사진 볼보코리아
BMW의 나이트 비전은 적외선 열화상 카메라로 열을 방출하는 사물을 인식하고, 패턴을 분석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한다. 사진 BMW코리아
BMW의 나이트 비전은 적외선 열화상 카메라로 열을 방출하는 사물을 인식하고, 패턴을 분석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한다. 사진 BMW코리아
디지털 라이트는 길을 건너려는 보행자에게 횡단보도를 만들어주거나 차가 오는 것을 알리는 경고 문구를 비출 수도 있다. 사진 벤츠코리아
디지털 라이트는 길을 건너려는 보행자에게 횡단보도를 만들어주거나 차가 오는 것을 알리는 경고 문구를 비출 수도 있다. 사진 벤츠코리아

보행자 길에 경고 문구 비추는 헤드램프도

2016년 벤츠는 ‘신박한(새롭고 놀랍다는 뜻의 신조어)’ 헤드램프 기술을 공개했다. ‘디지털 라이트’란 이름의 이 기술은 내비게이션 경로나 경고등 같은 메시지를 도로에 비출 수 있다. 길을 건너려는 보행자에게 횡단보도를 만들어주거나 차가 오는 것을 알리는 경고 문구를 비출 수도 있다. 아직 양산차에 적용되진 않았지만 벤츠는 곧 새로운 모델에 이 기술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마트폰 때문에 바닥만 보고 걷는 보행자에게 특히 요긴한 기능이다.

새롭게 페이스 리프트(face lift)된 캐딜락 CT6도 다양한 보행자 안전 기술을 챙겼다. 깜깜한 밤에 운전자가 보행자나 동물을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나이트 비전’이 ‘열일(열심히 일한다는 뜻)’한다. 보행자나 동물이 감지되면 운전자에게 경고하고, 계기반에 모습을 띄운다.

이 밖에 CT6에는 ‘전후방 보행자 감지 시스템’이 있다. 앞쪽에 보행자가 있는 게 감지되면 볼보의 시티세이프티처럼 운전자에게 경고하고, 위급할 경우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멈춘다. 후방 보행자 감지 시스템은 뒤쪽에 사람이 있을 때 운전자에게 이를 알려준다.

그런데 BMW와 벤츠는 그냥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동물이나 보행자에게 불빛을 쏴 차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BMW의 나이트 비전은 키드니 그릴에 있는 적외선 열화상 카메라로 열을 방출하는 사물을 인식하고 그 패턴을 분석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한다.

만약 나이트 비전이 동물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깜빡이는 불빛을 쏴 동물이 피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동시에 계기반에는 사슴 모양의 경고 표시를 띄운다. ‘삐비비빅’ 하는 경고음도 울린다.

여러 자동차 회사가 보행자나 동물, 자전거 탄 사람과의 충돌을 예방하고 사고가 났을 때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안전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닛산은 전기 콘셉트카에 보행자가 가까이 있으면 프런트 그릴에 달린 스피커로 노래가 흘러나오는 기능을 넣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보행자와 운전자가 주변 상황을 충분히 살피고 안전하게 다니는 것 아닐까.


▒ 서인수
모터트렌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