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출시된 제네시스의 첫 SUV GV80은 능동형 노면 소음 저감(RANC) 기술을 갖추고 있다. 멈춰 있는 차가 아니고서는 노면 소음이 차 안으로 들이칠 수밖에 없는데 이 소음을 줄여준다. 사진 현대차
지난 1월 출시된 제네시스의 첫 SUV GV80은 능동형 노면 소음 저감(RANC) 기술을 갖추고 있다. 멈춰 있는 차가 아니고서는 노면 소음이 차 안으로 들이칠 수밖에 없는데 이 소음을 줄여준다. 사진 현대차

우리 회사는 회장실부터 관리부, 편집부 등 모두 부서가 한 층에 모여 있다. 한 층 높이의 반쯤 되는 파티션이 각 부서를 구분한다. ‘모터트렌드’ 편집부는 가장 안쪽에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더네이버’ 편집부가 있다. 평소엔 기자들이 사무실에 거의 없어 한없이 고요하지만 마감 때면 상황이 다르다. 기자들뿐 아니라 교정사와 편집 디자인 아르바이트까지 모여들어 양쪽 부서가 사람으로 꽉 찬다. 당연히 각종 소리도 몇 배 더 커진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프린터 돌아가는 소리, 여기저기서 고함치는 소리가 파티션을 넘나들며 귀를 자극한다.

몇 주 전 후배가 애플의 새로운 에어팟프로를 샀다며 자랑했다. 애플의 블루투스 헤드셋 가운데 처음으로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갖춘 제품이다. “선배, 이거 정말 예술인데요? 귀에 꽂고만 있어도 바깥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아요.” 후배가 키보드를 두드리다 말고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른 부서에서 고함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마감 때도 집중해 기사를 쓸 수 있겠어요. 음,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부장님이 부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지만요.” 후배가 몸을 돌려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새하얀 에어팟프로를 귀에 꽂은 채.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은 파동의 간섭 현상을 인위적으로 일으켜 소음을 차단하는 기술이다. 소음과 반대되는 파동을 일으켜 소음을 줄여준다. 그런데 이어폰이나 헤드폰에만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술이 적용되는 건 아니다. 지난 1월 국내에 출시된 제네시스의 첫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V80은 능동형 노면 소음 저감(RANC) 기술을 챙겼다. 멈춰 있는 차가 아니고서는 노면 소음이 차 안으로 들이칠 수밖에 없는데 이 소음을 줄여준다는 기술이다.

원리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술과 비슷하다. 서스펜션(충격흡수장치)과 섀시(자동차 뼈대)를 따라 놓인 가속도 센서가 실내로 들이치는 소음을 분석하고 예측한 다음 이 소음과 반대되는 위상의 파동을 스피커로 내보내 소음이 차 안으로 들이치지 않도록 한다. 이 모든 과정이 0.002초 만에 이뤄져 운전자나 탑승객이 기분 나쁜 소음을 들을 일은 없다는 게 현대차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들은 노면 소음을 최대 50%까지 줄일 수 있다며 노면이 고르지 못한 오래된 아스팔트나 덜컹거리는 다리 등을 지날 때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GV80 실내는 한없이 고요했다. 그래서 조금 지루한 느낌이 들 정도다.

바깥 소음을 단속하는 데 적극적인 브랜드는 또 있다. 포드와 링컨은 일찌감치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기술을 자동차에 적용했다. 실내에 달린 세 개의 마이크로폰이 엔진과 변속기 등에서 발생하는 기분 나쁜 소음을 감지하면 오디오 스피커에서 이 소음과 반대되는 파동을 내보내 소음을 상쇄한다. 소음에 해당하는 파동만 줄여주므로 오디오 사운드나 대화하는 목소리가 잦아들 염려는 없다. “오히려 바깥 소음이 들이치지 않아 차 안에서 음악을 풍성한 사운드로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작은 소리로 대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포드 NVH 부서 담당자의 말이다.

지난해 말 국내에 출시된 포드의 신형 익스플로러는 앞 유리와 1열 옆유리에 어쿠스틱 글라스를 달고, 엔진룸과 탑승 공간 사이를 이중 벽체 구조로 만들어 소음을 단속했다. 어쿠스틱 글라스는 유리 가운데 폴리비닐부티랄 소재의 막을 넣은 유리로, 유연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진동과 소음도 줄여준다. 이 밖에 신형 익스플로러는 포드의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능까지 챙겨 익스플로러 역사상 가장 조용한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쉽게도 국내에 출시된 익스플로러에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빠졌지만 링컨 모델에서는 세상 조용한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경험할 수 있다. 하반기 국내에 출시될 MKC 후속 모델 커세어에도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 기능이 달렸다.


포드와 링컨은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술을 적용 중이다. 기분 나쁜 소음을 감지하면 오디오 스피커에서 소음과 반대되는 파동을 내보내 이를 상쇄한다. 사진 링컨
포드와 링컨은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술을 적용 중이다. 기분 나쁜 소음을 감지하면 오디오 스피커에서 소음과 반대되는 파동을 내보내 이를 상쇄한다. 사진 링컨
캐딜락 CT6와 XT5, 에스컬레이드 모두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갖추고 있다. 사진 캐딜락
캐딜락 CT6와 XT5, 에스컬레이드 모두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갖추고 있다. 사진 캐딜락

바깥 소음은 차단하고 엔진 소리는 더 크게

국내에서 파는 캐딜락 모델에도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술이 들어갔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보스오디오가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발휘한다. 포드와 링컨처럼 차 안에 달린 세 개의 마이크로폰이 소음을 감지하고 스피커로 반대 파동을 내보내 소음을 상쇄한다. CT6와 XT5, 에스컬레이드 모두 이 기능을 품었다. 혼다의 10세대 어코드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술을 포함한 다양한 기술로 소음을 잡았다. 휠의 림 가운데에 특수 소재의 흡음재를 채워 넣어 휠과 타이어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공명을 줄이고, 섀시 곳곳에 방음 패키지를 적용해 소음이 들이치는 것을 단속했다. 앞 유리와 1열 옆 유리에는 익스플로러처럼 어쿠스틱 글라스를 달고, 펜더 안쪽에 부직포 소재의 이너 펜더를 적용해 타이어 마찰음이 들이치는 것도 줄였다.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엔진이 깨어나지 않을 땐 타이어 구르는 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는다.

여러 자동차 브랜드가 소음을 단속하는 이유는 운전자나 탑승객이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저주파 소음은 졸음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소음을 줄이면 더 쾌적하고 안전하게 운전을 즐길 수 있다. 물론 소음을 줄이는 데 온 힘을 쏟는 쪽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오히려 엔진 사운드를 키우는 데 애를 쓰기도 한다. BMW는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으로 역동적인 엔진 사운드를 느낄 수 있도록 일부러 소리를 키운다. 그런데 나쁜 소음과 좋은 소리를 가르는 기준이 뭘까. 바퀴 구르는 소리, 바람이 창을 때리는 소리가 무조건 나쁜 소음일까. 화끈한 엔진 소리가 무조건 좋은 소리일까. 소리를 다스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바깥 소음이 들이치지 않는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을 원하지만 부장님 목소리는 꼭 들어야 하는 것처럼.